[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이윤옥 선생님, 교토에서 거행될 시인 윤동주의 추도식 정보 감사합니다. 일본에 살고 있어도, 지나쳐 버리게 됩니다. 일본은 최근 들어 큰 재해가 잇따를 뿐 아니라, 정치적으로도 저질화가 진행되고 있어 눈 뜨고 볼 수 없는 지경입니다. 특히 군마현(群馬県, 도쿄에서 50분)의 다카사키시(高崎市)에서 어처구니없는 일이 있었습니다. 이곳에는 전쟁 중 연행되어 강제노역으로 사망한 조선인들을 위령하는 평화의 추도비가 20여 년 전에 세워졌고, 현지인들에 의해 해마다 위령제가 거행되었습니다. 이를 두고 우익들이 시비를 걸어 군마현에 철거를 요구한 결과 군마현지사(群馬県知事)는 이에 찬성하여 추도비를 철거하기로 했습니다. 현지인들이 재판에 호소했지만, 법원에서도 막아내지 못하고 철거가 결정되었습니다. 이어 1월 29일, 불도저로 조선인 추도비는 철거되고 말았습니다. 이것은 말도 안 되는 폭거입니다. 추도비는 한·일간의 문제일 뿐 아니라 아시아 미래의 평화와 우호를 위해 소중한 징표였는데 이를 없애다니 가슴이 아픕니다. 저희들의 철거 반대 목소리가 부족했습니다. 반성합니다. 하지만 반드시 재건할 것을 모두가 맹세했습니다.”
이는 일본 고려박물관의 하라다 교코(原田京子) 전 이사장이 필자에게 보내온 글의 일부다. 그러면서 하라다 교코 이사장은 이와 관련된 <아사히신문> 기사를 보내왔다. <아사히신문>에는 우익들의 활개로 20여 년 동안 지켜오던 조선인 추도비가 철거되기 직전, 이곳을 찾아와 ‘철거 반대’를 외치는 양심적인 시민들의 사진이 실려 있었다. 그러나 그 모든 노력은 허사였다. 끝내는 무자비하게 조선인 추도비는 불도저로 산산조각이 난 것이다.
조선인 강제 노역으로 희생된 사람들을 추도하는 추도비가 들어설 때만 해도 나는 ‘일본의 양심’을 높이 샀다. 일본은 더 이상 반성을 모르는 뻔뻔한 나라가 아니라고 나는 기회 있을 때마다 ‘그런 양심의 일본인’들을 추켜세웠다. 그런데 지난 20여 년이 지나는 동안 이러한 ‘일본의 희망’은 차츰차츰 그 꼬리를 우익들에게 내주더니 급기야는 추도비마저 부숴버리는 사태에 이르른 것이다.
나는 하라다 교코 이사장의 ‘반성의 글’을 읽고 이렇게 답을 했다. “네, 뉴스를 통해 들었습니다. 너무나 가슴 아픈 일입니다. 일본이 앞으로 어디를 향해갈지 걱정스럽습니다. 하라다 교코 이사장님께서 이렇게 염려해 주셔서 정말 힘이 납니다.” 그러자 하라다 교코 이사장이 다시 답을 해왔다.
“말씀하신 것처럼 일본은 앞으로 어디를 향해 가야하는 것일까요? 우리 시민이 자각하고 힘을 길러 헌법 9조 정신을 실현시켜 나갈 수 있도록 국가에 힘을 가해야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여기서 하라다 교코 이사장이 말한 헌법 9조 정신이란 ‘전쟁을 하지 않는 일본’을 말한다. 헌법 9조를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①일본국민은 정의와 질서를 기초로 하는 국제 평화를 성실히 바라고 추구하며, 국제 분쟁을 해결하는 수단으로써 국권이 발동되는 전쟁과 무력에 의한 위협 또는 무력 행사를 영구히 포기한다. ②전항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육·해·공군, 그 밖의 전력(戰力)을 보유하지 않는다. 국가 교전권은 인정하지 않는다. 라고 못 박고 있다.
그럼에도 일본의 보수 우파 정치세력을 중심으로 헌법 제9조를 개정하려는 움직임을 보여 주변국의 반발을 사고 있으며 일본 내에서도 각계각층의 의견이 엇갈리는 가운데 우익들이 군마현의 추도비를 때려 부수는 사건이 일어난 것이다. 역사의 시계바늘을 거꾸로 돌리고 있는 일부 극단적인 우익의 활보가 매우 우려스럽지만 그렇다고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식민지 지배를 하던 가해자가 제대로 기억하는 게 중요하다. 기억과 반성이 있고 난뒤 우호가 있다는 추도비의 기록을 무시하고 증오의 열풍 속에 추도비를 철거하려는가. 그렇다고 역사를 바꿀 수는 없다.” -타마무라쵸 이시카와 마오 정장(玉村町の石川真男町長)-
“군마현의 양심의 상징이기도 한 추도비가 철거된다니 창자가 끊어지는듯 하다. 훌륭한 비였다고 생각한다.” -추도비를 지키는 모임 대표위원 가와구치 마사아키(追悼碑を守る会, 代表委員 川口正昭-
지난 1월 28일 치, 아사히신문에는 양심있는 일본 시민들의 분노의 목소리가 가득했다. 물론 하라다 교코 같은 분은 대표적인 일본의 양심이요, 지성인이다. 그는 힘주어 말했다.
“추도비는 한·일간의 문제일 뿐 아니라 아시아 미래의 평화와 우호를 위해 소중한 징표였는데 이를 없애다니 가슴이 아픕니다. 저희들의 철거 반대 목소리가 부족했습니다. 반성합니다. 하지만 반드시 재건할 것을 모두가 맹세했습니다.” 라고.
지난 1월 29일, 무자비하게 조선인 추도비를 깨부순 군마현의 정치인과 우익들, 그러나 그들의 역사 지우기가 그렇게 쉽게 진행되지는 않을 것이다. 부서진 추도비를 ‘다시 재건’ 하려는 시민들이 있는 한, 결코 역사는 과거로 회귀 되지 않을 것임을 믿는다. 그런 뜻에서 하라다 교코 전 고려박물관 이사장이야말로 일본의 진정한 희망이요, 미래라고 나는 생각한다.
"《감사와 사죄의 기록, 나와 한국(하라다 교코)》 한국어판 나와" 읽으러 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