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영국의 신경제재단(NEF)에서 2010년에 지구행복지수(HPI, Happy Planet Index)를 조사하여 발표한 결과를 보면 부탄이 1위를 차지하였다. 대한민국은 68위, 미국은 114위로 발표되었다. 이 조사는 경제적 소득보다는 지구에 해를 끼치지 않으면서 얼마나 효율적으로 행복한가를 중요하게 평가하였기 때문에 부탄이 높은 점수를 받을 수 있었다. 2024년의 지구행복지수 조사에서는 한국은 76위, 부탄은 데이터 수집의 한계로 공식 순위에서 제외되었다.
<표1> 우리나라의 국민소득과 지구행복지수 순위 변화

위 표를 보면 우리나라의 국민총생산은 2010년부터 14년 동안 크게 늘었지만, 지구행복지수는 오히려 추락하였다. 우리나라의 행복지수가 하락한 원인으로서는 과도한 경쟁과 외로움, 자살 증가가 지적되었다.
우리나라 국민의 자살율은 1997년 외환위기(IMF) 이후 급증하여 2003년에 OECD 국가 가운데 자살율 제1위를 기록하였다. 자살률 세계 제1위라는 불명예는 현재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2024년 국내총생산(GDP) 기준으로 세계 제13위의 경제 대국인 대한민국이 자살률 1위라는 사실은 너무나도 부끄러운 진실이 아닐 수 없다.
2024년 통계를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보자. 우리나라 전체 사망자 358,569명 가운데 자살 사망자 수는 14,872명으로서 약 4.2%를 차지하였다. 사망자의 연령대별 사망원인을 조사한 결과를 보면 특이하게도 10대, 20대, 30대, 40대에서 모두 자살이 사망원인 1순위를 차지하였다.
<표2> 연령대별 사망원인 1순위와 2순위

행복한 사람이 자살할 리는 없을 것이다. 우리나라의 청년층과 중년층의 사망원인 1순위가 모두 자살이라는 사실은 매우 충격적이다. 특히 40대에서는 통계 작성 이래 처음으로 자살이 암을 제치고 자살 원인 1순위로 나타났다.
2024년 기준 일인당 GDP(국내총생산)을 견주면 한국은 36,000달러, 부탄은 3,900달러다. 소득을 기준으로 견주면 부탄은 매우 가난한 나라임은 분명하다. 2024년 기준 인구 10만 명당 자살 사망자 수는 우리나라가 29.2명 부탄이 4.9명이다. (부탄 정부에서 발표한 통계는 구할 수 없고, 세계은행 자료를 참고하였다.) 우리나라는 경제적으로 부자지만 자살하는 국민이 많다는 문제를 위정자들은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그런데 “가난하지만, 행복한 나라가 부탄”이라는 평가는 어떤 조사에 근거를 두고 있는가? 부탄은 임금 직속의 국민총행복위원회를 두어 국민총행복 증진을 국가 정책의 핵심 기준으로 관리한다. 정부의 모든 주요 정책과 예산은 국민총행복 심사를 통과해야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경제성 평가가 핵심적인 기준이다.) 이 과정에서 행복 증진에 도움이 되지 않는 정책은 선정되지 않거나 수정된다. 부탄에서는 정부의 역할은 “아직 행복하지 않은 국민을 행복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믿고서 행복 정책을 우선적으로 추진한다.
부탄은 3~5년 주기로 국민총행복(GNH) 조사를 한다. 국민행복을 평가하는 국민총행복 지수는 33개 지표로 구성되는데 소득, 건강, 교육, 주거, 환경 등 세부 사항에 대한 만족도를 조사하여 합계를 낸다. 정부는 국민총행복 지수를 지역별, 성별, 연령별, 직업별로 분석하고 아직 행복하지 않은 사람에게 맞추어 정책을 개발하고 추진한다. 부탄 정부 산하 연구소에서 2022년에 실시한 행복도 조사에서 국민의 93.6%가 행복하다고 응답하였다.
부탄 정부에서 역점을 두고 추진하는 행복정책은 전체 국민 무상 교육과 무상 의료다. 부탄에서는 유치원부터 대학까지 공교육이 무료다. 모든 국민은 아프면 무료로 치료를 받을 수 있다. 부탄 정부는 국가 예산의 20%를 교육부문에, 10%를 의료부문에 사용한다.
부탄은 은둔 정책을 고수하면서 오랫동안 관광객을 허용하지 않았다. 1974년에 비로소 관광객을 받아들이기 시작하였는데 관광 비용은 높이고 관광객 수는 낮추는 정책을 채택하였다. 1991년에 정부가 관광산업을 민영화하면서 하루에 65달러의 관광세를 부과하기 시작하였는데, 2022년에 관광세를 65달러에서 200달러로 올렸다. (2024년에 부탄을 방문한 관광객 수는 약 15만 명 정도로 추정되었다.) 관광세는 지속가능개발기금(SDF)으로 들어가 전 국민 무상 의료, 무상 교육, 산림보존 비용 등에 사용된다.
부탄은 헌법으로 국토의 60% 이상을 산림으로 유지하도록 명시하고 있다. 현재 국토의 약 70%가 숲으로 덮여 있다. 부탄은 화력발전 대신 수력발전으로 모든 에너지를 공급한다. 농촌에는 전기를 무료로 제공해서 화목 연료 사용으로 인한 산림 파괴를 방지한다. 이러한 친환경적인 에너지 정책과 산림정책의 결과 놀랍게도 부탄은 배출하는 탄소보다 흡수하는 탄소가 더 많은 탄소배출 음수(陰數) 국가이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대부분의 선진국은 2050년까지 탄소배출 제로를 목표로 선언하고 탄소배출 억제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부탄에서는 폐기물의 발생을 억제하기 위하여 비닐 사용을 1999년부터 전면 금지하였다.
비닐 대신 면이나 마로 만든 가방과 쇼핑백, 종이봉투, 대나무 바구니 등을 사용한다. 부탄에서는 2030년까지 폐기물제로(zero)를 목표로 재활용, 재사용, 자원화를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부탄은 경제성장 기준으로 보면 발전이 더디고 가난한 나라다. 그렇지만 지구상에서 유일하게 행복을 나라의 목표로 선언하고 행복 정책을 우선해서 추진하는 나라다. 다른 나라들은 경제를 발전시켜 국민소득을 높이는 정책을 우선해서 추진한다. 소득이 높아지면 행복도 증가할 것이라고 가정한다. 고도 경제성장은 다른 나라들에서는 으뜸 목표다. 그러나 부탄은 경제 발전보다는 행복 정책을 우선해서 추구하는 나라다.
부탄의 행복 우선 정책이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은 무엇일까? 최근에 우리 사회에서 논란이 되는 두 가지 문제가 부탄에서 발생했다고 가정하고서 생각해 보자.
첫째는 물류회사 쿠팡의 새벽 배송 문제. 새벽 배송에 종사하는 근로자들은 건강을 해치고 심지어 사망에 이르기도 한다. 한쪽에서는 근로자의 건강과 안전을 위해서 새벽 배송을 제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쪽에서는 소비자들이 원하고 또 고임금을 원하는 근로자가 있기 때문에 새벽 배송을 허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부탄에서 이러한 문제가 제기된다면 어떻게 될까? 새벽 배송은 근로자의 행복을 해치기 때문에 당연히 허용되지 않을 것이다. (참고로 쿠팡에서 2020년부터 2025년 8월까지 근무 중 사망한 근로자는 모두 23명이다. 이 가운데서 22명은 산업재해로 인정받지 못하였다.)
둘째는 다주택자 과세와 대출규제 문제. 2024년 통계에 의하면 전국의 무주택 가구 비율은 43.1%다. (서울의 무주택 가구 비율은 55.9%다.) 온 나라에서 2채 이상 주택을 가진 다주택자는 237만 7천 명으로서 전체 주택 소유자의 14.9%를 차지한다. 부탄에서 주거 통계가 이러하다면 다주택자 규제 문제의 방향은 분명할 것이다. 월세나 전세금을 내지 않고서 자기 집에 사는 사람이 남의 집에 사는 사람보다 더 행복하지 않겠는가? 그렇다면 정책의 방향은 분명하다.
오랫동안 은둔의 나라였던 부탄은 1973년에 라디오가 개통되고 1974년에 처음으로 외국인의 공식 방문을 허용하였다. TV와 인터넷은 1999년에 도입되고, 2003년에 손말틀(휴대전화)이 들어왔다. 그러나 지금은 많은 젊은이들이 최신형 슬기말틀(스마트폰)을 사용하고 한국의 아이돌 그룹을 좋아한다고 한다.
‘가난하지만 행복한 나라’라는 칭찬을 듣고 있지만, 부탄이 낙원 국가는 아니다. 최근에는 농촌에서 도시로 사람이 몰리면서 농촌 공동체가 흔들리고 있다. 국내에서 일자리가 부족하므로 중동이나 동남아 국가로 일자리를 찾아 나라 밖으로 나가는 청년들이 늘고 있다. 경제가 성장하면서 여러 가지 사회 문제가 나타나고 있다.
격변하는 21세기에 히말라야의 작은 나라 부탄은 ‘행복 정책의 실험실’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실험의 결과가 어떻게 나타날지 지켜볼 일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