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는 모두 지옥에 와 있는데

2024.04.26 11:59:13

무심거사의 중편소설 <열번 찍어도> 13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김 교수는 차를 집이 있는 대치동으로 몰았다. 차를 아파트 내 주차장에 주차해 놓고 거리로 나와 택시를 탔다. 김 교수가 다시 보스에 도착하니 8시 30분이었다. 김 교수는 ‘어서 옵쇼!’라고 깍듯이 인사하는 웨이터의 안내를 받아 박 교수 일행이 있는 방으로 안내되었다. 그들도 식사를 마치고 방금 도착했다고 한다. 그날은 ㅇ 교수가 박 교수에게 연구과제와 관련하여 신세 진 일이 있어서 한 잔 산다고 했다. 과일과 양주를 주문하고 아가씨를 불렀다.

 

조금 후에 나타난 미스 최는 김 교수를 보더니 깜짝 놀랐다. 그럴 법도 하지. 삼십 분 전에 헤어진 사람을 룸에서 다시 만나니 놀랄 수밖에. 호텔에서 만났을 때 미스 최는 까만 옷을 입었었는데, 어느새 노란색 옷으로 갈아입고 서 있었다.

 

“웬일이세요, 오빠!”

“너 보고 싶어서 박 교수님 따라왔다. 왜, 싫으니? 싫으면 다른 사람 옆에 앉거라.”

“싫기는요, 저는 오빠 옆에 앉을래요.”


 

 

약간 이상한 느낌을 받았지만 두 사람 사이에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를 눈치채지 못한 박 교수가 미스 최를 바라보며 추궁하듯이 물었다.

 

“미스 최. 자네, 아리랑이라고 아나?”

“그럼요. 조정래 씨가 쓴 대하소설이잖아요. 조정래는 우리 고향 사람이에요.”

“그러면 아리랑 읽어 보았어?”

“아리랑 1권을 며칠 전에 끝냈지요. 김 교수님이 읽어 보라고 권해서 사 보았는데, 정말 재미있어요. 박 교수님도 읽어 보셨어요?”

 

김 교수가 빙긋이 웃으며 말했다. “박 교수님, 점심을 사셔야겠습니다!”

박 교수가 떫은 표정으로 미스 최에게 물었다. “이거 혹시 짜고 치는 고스톱 아니야?”

미스 최가 놀라면서 말했다. “누가 고스톱 쳤어요?”

ㅇ 교수가 의아한 듯이 물었다. “아리랑과 고스톱이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술잔이 부딪치고 시간이 흐르면서 여러 가지 이야기가 오갔다. 책 읽기를 좋아하는 ㅇ 교수가 최근에 읽은 책을 소개했다. 이병호 변호사가 썼다는 책인데, 《변호사는 모두 지옥에 있다》는 무시무시한 제목의 책이었다. 이병호 변호사는 법조계 원로인데, 입담이 구수하고 영어도 잘한다고 한다. 국내보다 외국에서 더 잘 알려진 변호사란다. 그 전에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여 떨어진 경력도 있고, 아무튼 평범한 인물은 아닌가 보다. ㅇ 교수는 그 책에 나오는 이야기라면서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사람이 죽으면 천당 또는 지옥으로 간다. 천당과 지옥에는 경계선이 있고, 그 경계선에는 조그만 문이 하나 있다. 어느 날 그 문의 일부가 파괴되었다. 이들 두고 천당에 있는 베드로와 지옥에 있는 사탄 사이에 시비가 벌어졌다. 베드로는 주장했다. “이 문이 파괴된 것은 지옥의 책임이므로 지옥에서 수리해야 하오.” 그러나 사탄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오. 이 문이 파괴된 책임은 천당에 있으니 천당에서 수리해야 하오.” 양측은 서로 책임 소재를 따지며 싸움을 벌였다. 천당의 베드로가 화가 났다. “정 그렇다면 나는 변호사를 사서 재판을 걸겠소.” 그러자 지옥의 사탄은 껄껄 웃더니 득의양양하게 말했다. “여보시오, 도대체 당신은 어디 가서 변호사를 구하겠단 말이오? 변호사는 모두 지옥에 와 있는데.”

 

화제는 ‘사’자 붙은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로 이어졌다. 흔히 돈 많이 벌고 그만큼 사회에 대한 책임이 많은 직종으로서 변호사, 판사, 검사, 의사 등을 든다. 최근에는 잘나가는 ‘사’ 중에서 의사는 탈락해 가는 세태이다. 과거에는 의사야말로 최고의 직종이었는데, 요새는 개업했다가 망하는 사람도 있단다. 또한 수술한다는 일이 매우 스트레스가 많고 항상 바쁘게 살아가기 때문에 의사들은 술꾼이 많다고 한다. 수입이나 인기로 보더라도 방송인이나 체육인 또는 연예인에 훨씬 못 미치는 것이다.

 

힘든 것을 싫어하는 현상은 의과대학에도 나타났다. 과거에는 의대생들이 외과나 산부인과를 지망하는 사람이 가장 많았는데, 요즘에는 정신과, 안과, 피부과 등 힘들지 않은 분야로 지망하는 사람이 많아졌다고 한다. 최고의 인기는 정신과다. 그저 환자가 쏟아내는, 되는 소리 안 되는 소리를 그냥 들어주고서는 진료비를 청구할 수 있으니, 좋기는 좋은 분야다. 시중에 떠도는 재미있는 말로는 “의사가 좋은 것이 아니라 의사 부인이 좋다”는 것. 따라서 의사는 사위감으로는 여전히 최고의 인기를 누린다고 볼 수 있다.

 

의사 중에서 요즘 말로 뜨는 분야가 한의사다. 급한 환자가 밤중에 문을 두들겨 잠을 깨우는 외과의사와는 달리 한방 환자는 급한 사람이 하나도 없다. 허리가 아프다, 기운이 없다는 둥 별로 급하지 않은 병으로 찾아오면 침을 놓아주거나 식물의 열매, 잎, 줄기, 뿌리 등을 적당히 조합하여 만든 한약을 주고서 돈을 받는다. 무슨 놈의 풀뿌리가 그렇게 비싸기도 한 지! 이른바 허해진 기를 보한다는 보약은 비싸서 부자 아니면 먹기 힘들다.

 

사정이 이렇게 되자 1차로 의과대학에 합격한 학생이 2차에 붙은 한의대로 가는 사태까지 나타났다. 사람들은 꿀단지에 개미들이 모이듯이 돈 잘 벌리는 직종으로 몰리게 되어 있다. 개미들을 탓할 필요는 없다. 돈은 누구에게나 필요하고 또 좋은 것이니까. (필자 주: 이러한 세태도 변하였다. 남성의 성기능을 향상해 주는 비아그라 제품이 나온 이후 보약이 잘 안 팔려서 한의사들도 수입이 많이 줄었다고 한다.)

 

(계속)

 

 

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muusim2222@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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