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그곳에 서면 누구나 시인이 된다
그곳에 서면 누구나 근심걱정을 잊게 된다
그곳에 서면
아득히 먼 역사 저편에서
중국대륙을 호령하던 고구려인의 기상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그곳에 서면 앞으로
내가 어떤 사람으로
우리가 어떤 모습으로
역사를 지켜나가야 할지
코끝이 찡하게 깨닫게 된다.
5박 6일, 길지 않은 기간(7월4일-9일) 동안 '탄운이정근의사기념사업회 백두산 답사단'과 함께 백두산, 집안 고구려 유적지 등을 돌아보는 답사를 하고 돌아왔다. 여성독립운동가들의 발자취를 찾아 기록하고 있는 기자에게 6일 동안의 답사는 아무것도(?) 아니지만 60이 넘어서인지 이번 답사는 조금 힘에 부쳤다. 더구나 계속되는 빗속의 강행군이다 보니 더더욱 힘이 들었던 듯하다.
'다리가 떨릴 때 떠나지 말고 가슴이 떨릴 때 떠나라'라는 말처럼 이번 답사에서는 유독 이 말의 의미가 구구절절 느껴진다. 그저 전세버스에서 내려 답사지를 둘러보고 끼니때마다 잘 차려진 밥을 먹는 여행이라면 다리가 조금 떨려도 다닐 만하겠지만, 이른바 '답사'란 평균 2만 걸음은 각오해야 하는 여행이다. 그런 여행을 무사히 마치고 돌아와 책상 앞에 앉아 찍어온 사진을 정리하다 눈에 띄는 꽃들이 서로서로 아우성이다.
왜, 나는 기사에서 빼냐고?
그럴 리가 있나. 나는 답사지에 가면 나무와, 꽃, 들판, 옥수수밭, 하늘, 구름, 숲 등을 빠짐없이 사진기에 담는 버릇이 있다. 심지어는 바람조차도.
백두산 천지 오르는 길과 협곡 등에서 만났던 범꼬리, 기린초, 노랑제비꽃, 담자리꽃, 금매화, 매발톱, 쥐오줌풀, 벌개미취, 애기장대, 구름범의귀, 장백제비꽃...... 그리고 미처 담지 못한 숱한 들꽃들을 나는 기억한다. 답사단이 가기 전에도, 아니 떠나온 뒤에도 이 친구들은 거기 그 자리서 백두산을 찾는 많은 이들에게 기쁨을 선사해 왔고 앞으로도 선사할 것이다.
우리 역사에도 들꽃처럼 아름답고 향기 나는 삶을 살다 간 독립투사들이 있다. 탄운 이정근 의사도 그 가운데 한 분이다. 탄운 이정근 의사는 누구인가?
탄운 이정근(灘雲 李正根, 1863-1919, 1991년 애국장 추서) 의사(義士)는 1919년 3월 31일 화성군(현 화성시) 향남면 발안 장날을 기해 제자들과 지역민들을 포함한 1천여 명을 이끌고 만세 시위에 앞장서다 일경의 총검에 복부를 난자당하자 흐르는 피를 손에 움켜쥐어 일경의 얼굴에 뿌리며 숨이 끊어질 때까지 ‘조국의 독립’을 외치다 장렬히 순국의 길을 걸은 독립투사다.
'탄운이정근의사기념사업회'(회장 김겸)에서는 탄운 이정근 의사의 숭고한 독립정신을 계승하고자 2004년 3월, 탄운장학회를 설립하여 올해로 제21기 장학생을 배출했다. 탄운장학회는 해마다 화성시 6개 읍면(향남, 팔탄, 양감, 우정, 장안, 봉담)에서 대학 입학생을 뽑아 장학금을 수여하고 있으며 이번 백두산답사에 장학생들이 함께했다. 미래를 짊어질 탄운장학생들과 함께한 이번 답사는 기자에게도 뜻깊은 시간이었다. <취재기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