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를 잇는 예술세계

  • 등록 2024.10.23 11:0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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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녀가 연주한 ‘바하의 샤콘느 2중주’ 작품 세계에 끌려 들어가
[이동식의 솔바람과 송순주 273]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부전자전(父傳子傳)이란 말은 아버지의 뛰어난 재주를 아들이 이어받아 활약할 때 이를 지칭하는 말이다. 어머니의 재주를 딸이 이어받아 세상에 드러날 때는 무엇이라고 하나? 잘 알다시피 모전여전(母傳女傳)이라고 한다, 아들이 아버지를 이어받는 경우는 세상에 나가서 정치나 경제 법률 등에 능력을 보이는 경우가 많고 딸이 어머니를 이어받는 경우는 예술이나 기술, 음식 등등에서 빛이 나는 경우가 많다. 이런 비유가 남녀의 역할을 구분하자는 것은 아니고 그런 측면이 많다는 뜻이다. 여성의 경우 미모를 이어받는 사례가 많아서, 황신혜 씨의 딸이 엄마를 이어받았다고 하는데 황신혜 씨는 자신의 엄마도 미모라며 8순의 모친 사진을 지난달 공개하기도 했다.

 

2012년 8월 명창 안숙선의 딸 최영훈 씨가 국립극징에서 거문고 공연을 했는데 안숙선 명창이 예술감독을 맡아 이틀 동안 펼쳐진 이 연주회의 이름이 애초부터 <모전여전- 소릿길에서 만나다>였다. 어머니가 창의 대가이니 딸도 창으로 빛이 날 것이로되 모친이 자기 딸은 창 대신에 거문고를 하자고 권해서 거문고의 길을 가게 되었다고 한다. 뭐 같은 국악이니만큼 모전여전의 대표적인 사례라 할 수 있다.

 

 

2016년 12월3일 에술의 전당에서는 ‘피아노 듀오콘서트 모전여전’이 열렸다. 원로 피아니스트 이옥희 씨와 딸 김지현 씨가 나란히 피아노 연주자로 나와 모차르트의 작품으로 듀오 콘서트를 연 것이다. ‘피아노’를 매개로 모녀 2대 피아니스트의 면모를 보이는 이들이 예술계의 선후배, 사제(師弟) 그리고 고독한 예술가의 길에서 조력자ㆍ동반자로 함께한 여정을 나누는 자리다.


 

 

이옥희 씨는 2006~2008년 모차르트 탄생 250돌을 맞아 소나타 전곡을 완주할 정도로 학구적으로 자세로 음악을 해 왔는데, 당시 데뷔 55돌 기념으로 준비한 이 콘서트에서 ‘모차르트의 두 대의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 라장조 K448’, ‘두 대의 피아노를 위한 환상곡 바단조 K608’ 등을 함께 연주하여 그야말로 같은 악기로 같은 음악 세계를 공유한 것이다. 이옥희 씨의 아들도 첼로를 한다고 하니 이번에는 모전자전이 되는 것인가?​

 

지난주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에서는 이윤하 귀국 첼로 독주회가 열렸다. 미국과 중국 등에서 활동을 하다가 귀국한 터라 이 연주회에는 모전여전이란 이름이 붙지는 않았지만, 독주회 뒷부분에 어머니인 첼리스트 차은미 씨(서울 시향 첼리스트)랑 바하의 ‘샤콘느’를 모녀 이중주로 연주함으로써 사실상의 엄마와 딸 2대의 첼로연주회가 된 것이다.

 

 

이윤하은하 씨는 어렵기로 소문난 바하의 ‘무반주 첼로조곡’ 전 6편 가운데 의욕적으로 1번과 2번, 3번, 세 곡을 연주한다고 하다가 개인적으로 손가락에 이상이 와서 3번은 하지 못했다.

 

이윤하 씨는 바하의 무반주 첼로조곡 전곡 연주에 도전했다. 바하 당시에 첼로는 바이올린과 같이 화려하고 다양한 음색을 가지지도 못하고 기교의 범위도 좁아서 독주용보다는 합주에서 저음을 보강하고 다른 악기를 뒷받침하는 역할을 담당해 왔었다. 이런 까닭으로 바하가 작곡한 무반주 바이올린 작품들이 일찍부터 인기를 얻은 데 견줘 이 첼로 조곡은 사람들의 시선을 끌지 못해 헌책방으로 전전했디.

 

그러다가 전설적인 첼리스트 파블로 카잘스가 11살이던 1890년에 스페인 바르셀로나 헌책방에서 이 악보를 발견해 부활한다. 카잘스는 이 곡을 13년 동안이나 연구하고 연습해서 발표하자 사람들은 이 곡들이 갖고 있는 첼로라는 악기의 깊고 넓은 표현력과 예술적 매력에 깜짝 놀라고 그때부터 모든 첼리스트가 정복하고 싶어 하는 필수적인 그리고 최고의 목표로 여기는 “첼로 음악의 구약성서”가 되었다.

 

비록 3곡 가운데 두 곡만을 연주했지만, 이윤하 씨의 연주는 프렐류드, 알레망드, 쿠란트, 사라반드 등 그 당시 유럽에 유행하던 춤곡들의 각각의 특색을 잘 살려 큰 손뼉을 받았다.

 

 

 

그리고 연주회의 정점은 마지막에 모녀가 연주한 ‘바하의 샤콘느 2중주’ 작품이었다. 잘 알다시피 바하의 ‘샤콘느’는 파르티타 2번 BWV 1004의 마지막 악장으로, 약 15분에 달하는 단일 악장인데 그 깊이와 구조적인 복잡성으로 인해 바이올리니스트들에게는 큰 도전이자 영광으로 여겨지는 작품이다. 전설적인 바이올린니스트 야사 하이페츠의 연주가 유명하다.

 

그런데 유명한 피아니스트 부조니가 이곳을 피아노로 편곡한 뒤에 피아노 작품으로도 최고봉으로 평가받게 되어 몇 년 전 임진강에서 열린 통일 음악회에서 백건우 씨가 독주를 선보여 절찬을 받은 바 있고 클래식 기타 등 다양한 악기로 편곡돼 연주되고 았는 현대의 고전이다. 이 작품을 유완이란 음악가가 두 대의 첼로를 위한 곡으로 편곡한 것이 이날 선보였다. ​

 

곡이 시작될 때까지 별다른 기대를 하지 않었던 필자의 귀에 도입부부터 샤콘느는 부드러우면서도 장중하고 힘이 있어서 나도 모르게 끌려 들어갔다. 중간중간에 곡이 빨라졌다가 풀어주다가 다시 조이고 하는 과정을 몇 번 반복하고는 드디어는 정점으로 끝이 나는데 여운이 길게 이어지는 명연주이고 명편곡이었다. 두 대의 첼로로 관현악의 효과를 내면서 편안하게 사람들을 샤콘느의 세계로 불러온다.

 

처음 바리올린곡의 샤콘느가 조금 섬세하고 강하고 신경을 곤두세운다면(그것도 명곡이라고 칭찬이 대단하다) 바하 부조니의 샤콘느는 피아노를 통해 오케스트라 음향 전부와 맞먹을 정도로 풍부한 음의 향연을 보인다. 그러한 느낌을 이 2중주에서도 받았다고나 할까. 스토코프스키가 관현악으로 편곡해 연주한 곡을 다시 듣는 듯한 착각을 하였다고나 할까? ​

 

부전자전, 모전여전 ... 이 얼마나 아름다운 일이랴? 이렇게 해서 후대들이 실력을 쌓고 우리 음악이 좀 더 발전하고 그로 해서 우리들이 편안한 음악예술을 들기는 세상이 바람직하리라. 예술세계에서도 치맛바람은 여전히 있을 것이지만 실력이 그 성패를 가름하는 세상이 되면 모두에게 행복일 것이다. 이윤하가 멀써 유튜브에서 스타로 활약을 한다는 소식에 세상은 우리가 아는 이상으로 즉각적이고 감각적으로 바뀌어 있지만 유튜브라는 괴물에 우리가 우리의 삶을 빼앗기면 안 될 것이다, 음악이나 예술이나 갈 길이 따로 있다.

 

 

이동식 인문탐험가 sunonthetre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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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식 인문탐험가

전 KBS 해설위원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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