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이옥순 교수가 얼마 전에 낸 책 《최소한의 인도수업》을 저에게 보내왔습니다. 이 교수는 저와 같은 <나눔문화> 회원으로, 예전에 <나눔문화>에서 중동 여행을 할 때 같은 여행단 일원이었지요. 그런데 제가 여행 중에도 계속 책을 가까이하던 것을 기억하고 책을 보내주셨네요. 이옥순 교수는 인도 델리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고 인도연구원 원장을 역임하였으며, 그동안에도 《인도에는 카레가 없다》, 《우리 안의 오리엔탈리즘》, 《인도 현대사》, 《인도는 힘이 세다》 등의 책을 낸 그야말로 인도 전문가지요.
책 제목이 《최소한의 인도수업》인 것으로 보아 우리가 ‘교양인으로서 인도에 대해 최소한 이 정도는 알아야 하지 않겠느냐?’라는 내용을 담은 것임을 짐작할 수 있겠습니다. 이 교수는 2013년 7월부터 2024년 1월까지 삼성경제연구소가 시작한 SERI CEO에서 ‘나마스테 인디아’라는 이름으로 온라인 강의를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그동안의 강의 내용 가운데 우리가 꼭 알았으면 하는 내용을 골라 이 책에 담은 것입니다. 강의 내용을 담은 것이라 책 제목에도 ‘인도 수업’이라 했겠군요.

인도는 땅덩어리로 보나, 역사로 보나, 인구로 보나 세계 대국입니다. 그런데 ‘인도’하면 ‘힌두교’, ‘카스트 제도’를 먼저 떠올리며, 아직도 계급 제도에 얽매어 더디게 나아가는 나라로 인식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입니다. 그러나 숫자 ‘0’의 개념을 처음 발견한 나라가 인도이며, 또한 인도는 무인 달 탐사선을 세계에서 네 번째로 달에 착륙시켰고, 화성 탐사선을 첫 발사에서 화성 궤도에 진입시킨 첫 번째 나라일 만큼 과학이 발달한 나라입니다. 아마 제 글을 보면서 “아니? 인도가 그런 나라였어?”하는 분들이 많을 것입니다. 그만큼 우리는 인도에 대해 잘 모릅니다. 그런 우리에게 이 책은 최소한의 인도 교재라고 하겠습니다.
책의 부제는 ‘다섯 가지 키워드로 읽는 인도라는 세계’입니다. 다섯 가지 열쇠말이 그대로 각 장의 제목입니다. 그래서 책은 ‘1장 – 히말라야만큼 큰, 사람에게 배우다, 2장 – 아주 오래된 지혜, 신화에서 배우다, 3장 – 인도양보다 넓은, 문화에서 배우다, 4장 – 갠지스강처럼 구불구불, 역사에서 배우다, 5장 – 제로에서 무한대까지, 다양성에서 배우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각각의 열쇠말에서 하나씩만 끄집어내어 소개하겠습니다. 1장에서는 ‘나의 시신을 적에게 보이지 말라, 락슈미 여왕’입니다. 락슈미 여왕은 델리 남쪽의 작은 나라 잔시의 왕비였는데, 1856년 왕위 계승자가 없다고 영국이 왕국을 영국령에 합방하였습니다. 그러자 왕비는 스스로 여왕이 되어 영국과 싸웠습니다. 그러나 영국의 우세한 군사력에 끝내 성이 함락되자, 여왕은 등에 4살 난 아들을 업고 양손에 칼을 들고 말고삐는 입에 문 채 성벽을 뛰어넘어 탈주합니다. 그리고 영국을 끝까지 괴롭히다가 전장에서 삶을 마감하였습니다.
2012년 영국 런던의 국립 군사박물관이 영국이 맞서 싸운 ‘가장 위대한 적 다섯 명’을 투표로 뽑았는데, 20명의 후보자에 들어간 단 한 명의 여자가 락슈미 여왕입니다. 1위는 조지 워싱턴, 3위는 나폴레옹입니다. 그래서 오늘날 인도에서는 여왕의 동상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여왕의 이름을 딴 학교도 있고, 기념우표도 있다고 합니다. 또한 여왕을 주인공으로 한 소설, 영화, 비디오게임 등도 있고, 락슈미 여왕을 삶의 모델로 여기는 여학생들이 많다고 합니다.
2장에서는 ‘어머니는 강하다, 샤쿤탈라’를 뽑았습니다. ‘샤쿤탈라’는 4~5세기에 굽타 왕조에서 활약한 칼리다사의 희곡 제목입니다. 칼리다사는 오늘날에도 인도가 배출한 으뜸 작가로 평가되는데, 칼리다사는 그때까지 1,000년 넘게 구전으로 전해 내려오던 대서사시 <마하바라타>의 일부 내용을 각색하여 《샤쿤탈라》를 썼다고 합니다. 사냥하던 두샨타 왕이 숲에서 샤쿤탈라를 만나 사랑에 빠집니다. 그리고 샤쿤탈라의 손가락에 반지를 끼워주면서 곧 데려가겠다고 합니다. 그사이 샤쿤탈라는 왕의 아이를 낳고 키우는데, 6년이 지나자 기다림에 지쳐 왕을 만나러 갑니다. 그런데 그만 실수로 왕이 끼워준 반지를 강물에 빠뜨립니다.
그러나 왕은 그녀를 알아보지 못하여, 샤쿤탈라는 숲으로 돌아가 홀로 아들을 키웁니다. 왕은 한때의 불장난으로 여겨 그녀를 알아보지 못한 것일까요? 그건 아니고, 숲의 성자가 왕은 사랑의 증표를 보아야만 알아보게 될 거라고 저주를 내렸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몇 년 뒤에 물고기 뱃속에서 반지를 발견한 어부가 왕에게 반지를 바쳤고, 반지를 보고 기억을 되찾은 왕이 샤쿤탈라와 아들을 찾아오며 이야기는 행복하게 끝나지요.
그런데 물고기 뱃속에 들어간 반지를 찾는 내용은 어디서 많이 들어본 것 같지 않습니까? 《샤쿤탈라》는 인도에서 근무한 영국 법관 윌리엄 존스가 1789년 영어로 번역하여 유럽에 알린 것입니다. 그런데 그동안 우리는 원본 이야기는 모르고 유럽을 통하여 반지 이야기를 접한 것이네요. 샤쿤탈라의 인기로 슈베르트는 <샤쿤탈라>라는 3막의 미완성 오페라를 작곡했고, 로댕의 연인 카미유 클로델도 《샤쿤탈라》에서 영감을 받은 조각작품을 남겼다네요. 그리고 샤쿤탈라 이야기를 담은 무용극, 연극, 영화도 만들어지고요. 샤쿤탈라! 이제부터는 ‘샤쿤탈라’라는 이름을 기억해야겠습니다.
3장에서는 ‘자이나교도는 모두 상인’입니다. 인도에서 자이나교는 약 400만~500만의 신도를 가진 소수 종교지만, 내로라하는 부자 가운데는 자이나교도가 많고, 세계 다이아몬드 산업도 그들이 장악했답니다. 그리고 인도에서 0.4%의 자이나교도가 내는 세금은 전체의 20%나 차지한다고 하지요. 자이나교의 가장 중요한 윤리는 비폭력이고 그래서 살생을 금합니다. 그러다 보니 땅의 미물을 죽일까 봐 나막신을 신고 다니고, 심지어는 숨 쉬다가 공기 중의 미생물이 입으로 들어갈까 봐 마스크를 착용하는 교인까지 있다는군요.
그러면 이런 자이나교도들이 어떻게 상업에서 성공한 것일까요? 이들은 땅이나 물속의 생명을 위협하는 농업과 어업도 할 수 없어, 결국 생명을 해치지 않는 은행업과 대금업 등 각종 상업을 택하였답니다. 그리고 종교에 대한 열심처럼 상업도 열심히 하여 성공한 것입니다.
그런데 상인이라면 누구나 열심히 하는 것인데, 이것만으로 그들의 성공을 설명할 순 없습니다. 그들의 또 다른 중요한 윤리가 ‘무집착’입니다. 돈에 대해 집착하지 않고 검소하게 근면하게 장사를 하여 성공을 이룬 것입니다. 그리고 집착하지 않으니, 자선도 많이 하고요. 자이나교에 대해서는 이미 들어보았지만, 그들의 그런 모습은 이 교수님의 강의를 통해 알게 되었습니다.
4장에서는 ‘경국지색의 파드미니 왕비’에 대해 말하겠습니다. 12~13세기에 이슬람이 인도로 쳐들어와 북부지방을 점령하였는데, 라지푸트 부족으로 알려진 힌두왕국들이 이에 격렬하게 저항하였습니다. 그 가운데 메와르 왕국이 있었는데, 이 왕국의 파드미니 왕비의 미모에 대한 소문이 퍼져 이슬람 적에게도 알려졌습니다. 그리하여 1303년 술탄 알라딘 할지가 왕비의 소문을 듣고 쳐들어옵니다. 그러나 끈질긴 저항에 왕궁의 점령이 쉽지 않자, 왕비의 모습을 한 번만 보여주면 그냥 물러가겠다고 합니다. 적의 제안이 수치스러웠지만, 이미 왕궁 내에는 물과 음식이 거의 바닥난 상태입니다. 하여 왕국에서는 절충안으로 거울에 비친 왕비 모습만 보여주겠다고 합니다.
그래서 거울에 비친 왕비 모습을 본 할지는 약속대로 물러났는데, 거울로만 본 왕비 모습은 오히려 갈증만 키워, 할지는 종전보다 다섯 배 많은 군대를 이끌고 다시 쳐들어옵니다. 결국 성은 함락되고 술탄의 군사들이 밀려 들어옵니다. 그러자 왕비는 뜰에 장작을 쌓아 올리고 불을 지피라고 한 뒤, 불타는 장작더미에 오릅니다. 이를 본 700명의 여인이 차례로 불타는 장작더미에 몸을 던지고요. 적에게 능욕당하느니 차라리 명예롭게 죽자는 것이겠지요. 우리나라도 백제가 함락될 때 삼천궁녀가 낙화암에서 몸을 던졌다고 하고, 병자호란 때 강화도가 점령되자 많은 여인이 바다에 뛰어들지 않았습니까?
마지막 5장에서는 ‘파란만장 다이아몬드’를 골라보았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큰 다이아몬드 코이누르는 인도 중부 데칸 지방의 한 광산에서 발견될 당시에는 800캐럿이 넘는 엄청난 크기였답니다. 16세기 중반에 무굴제국을 세운 바부르가 침입해 들어왔는데, 한 힌두왕족이 목숨을 지켜준 감사의 표시로 코이누르를 바부르의 아들 후마윤에게 헌납하였답니다. 그때부터 코이누르는 무굴제국의 신성한 왕권을 상징하게 되었습니다.
1737년 페르시아의 나디르 샤가 무굴제국으로 쳐들어옵니다. 항복한 무굴 황제는 코이누르를 지키려고 이를 자신의 머리에 쓴 터번 속에 감추었답니다. 그런데 이를 눈치챈 나디르 샤는 무굴 황제를 만나면서 서로 존경의 표시로 터번을 교환하자고 합니다. 그래서 무굴 황제는 눈물을 머금고 터번을 교환할 수밖에 없었지요. 자기 방으로 돌아온 나디르 샤는 다이아몬드를 보고 “오, 훌륭한 빛의 산이여!”라고 외쳤다는데, 그때부터 이 다이아몬드는 ‘빛의 산’이라는 뜻을 가진 코이누르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페르시아로 돌아간 나디르 샤는 쿠르드 반군에게 살해되면서, 코이누르는 피를 묻히며 여러 사람의 손을 전전하는데, 1813년 북부 지방을 다스린 시크 왕국의 지배자 란지트 싱이 이를 사들이면서 코이누르는 인도로 돌아옵니다. 그리고 그 후 영국이 인도를 점령하면서 코이누르는 영국으로 건너가 엘리자베스 여왕이 즉위할 때도 코이누르가 박힌 왕관을 썼습니다.
지금도 인도는 영국에 코이누르의 반환을 요구하고 있는데, 영국이 이를 들어줄 리가 없지요. 그런데 인도뿐만 아니라 페르시아 나디르 샤의 후손인 이란, 코이누르가 잠시 머문 아프가니스탄도 코이누르가 자국의 재산이라고 돌려달라고 한다네요. 심지어는 소송까지 제기하고요. 그래서 이 교수가 ‘파란만장 다이아몬드’라고 제목을 붙였군요.
이 밖에도 책에는 우리에게 졸지 않고 귀를 쫑긋할 만한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많이 있습니다. 어떻습니까? 여러분들도 《최소한의 인도 수업》을 들어보지 않으시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