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탄에는 신령스러운 용이 살고 있다

  • 등록 2025.07.14 11:46:29
크게보기

물질문명의 편리함을 전하는 것, 부탄의 청정한 세계 오염시킬 것
[청정하고 행복한 나라 부탄을 가다 4]

[우리문화신문=일취스님(철학박사)]  히말라야 산자락에 있는 부탄은 평균 해발 2,000m의 고산 지대에 자리잡은 나라다. 하늘과 가까운 지형 때문인지, “금방이라도 용이 하늘을 가르며 나타날 듯하다.”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청정하고 쾌적한 환경은 신성한 존재가 머물기에 더없이 적합해 보인다. 그래서일까, 부탄의 건국 신화에서부터 불교 의례와 국가 상징까지 용에 얽힌 전승(傳承)이 유독 풍부하다.

 

이를 대변하듯 부탄 국기의 중앙에는 승천하는 백용(白龍)이 그려져 있다. 드높은 산과 희디흰 뭉게구름, 그리고 하늘과 맞닿은 지형 위에 살고 있다는 전설 속 존재가 실체로 느껴지는 순간이다.

 

부탄은 직항이 없어, 네팔이나 태국 방콕을 경유해야 들어갈 수 있다. 방콕에서 부탄으로 향하는 항공편은 부탄의 국영 항공사 ‘드룩에어(Drukair)’다. 이 항공기의 꼬리 날개에는 용이 그려져 있으며, 이 '드룩(Druk)'은 ‘천둥의 용(Thunder Dragon)’을 뜻한다. 곧 ‘드룩에어’는 ‘용의 나라 항공’이라는 의미다. 이처럼 부탄의 정체성과 용의 상징성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그러나 용에 대한 숭배는 비단 부탄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세계 여러 문화권에서도 용은 오랜 세월 다양한 형태로 신화 속에 등장해 왔다. 그 의미는 조금씩 달라도 대부분 ‘수호신’, ‘길상(吉祥)’, ‘지혜’, ‘권위’ 등의 상징성을 지닌다. 따라서 어느 한 지역이 용 문화의 발상지라 단정하기는 어렵다.

 

동서양 고대 문명의 용 상징성

 

중국에서는 신석기 시대 후반(기원전 5,000년경) 유적에서 용 모양의 옥기(玉器)와 토기 문양이 발견되었다. 특히 홍산문화에서는 뱀 형태의 용이 출토되었고, 이후 황제(黃帝)가 용을 타고 하늘로 올라갔다는 전설이나, 아홉 아들을 거느린 용, 잉어가 용문을 넘어 승천한다는 ‘등용문(登龍門)’ 설화 등이 전해진다.

 

인도에서는 인더스 문명과 베다 시대 이전부터 뱀 숭배가 있었다. ‘나가(Nāga)’라 불리는 이 존재는 원래 ‘코브라’를 뜻하지만, 힌두교ㆍ불교ㆍ자이나교에서 나가는 신성한 존재, 혹은 반신반수(半神半獸)의 수호신으로 여겨진다. 특히 불교에서는 붓다 탄생 때 하늘에서 9마리의 용이 내려와 향수를 뿌렸다는 설화, 또 부처가 깨달음을 얻었을 때 머리 여럿의 코브라인 나가왕 무찰린(Mucalinda)이 비를 막아줬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메소포타미아 신화에는 원초적 바다 여신이자 용의 형상을 한 ‘티아마트(Tiamat)’가 등장한다. 티아마트는 혼돈의 상징이며, 신 마르두크(Marduk)가 이를 물리치고 질서를 세운 뒤 세상을 창조했다는 설화가 유명하다.

 

그리스에서는 용을 ‘드라콘(Drakon)’이라 부르며, 거대한 뱀처럼 묘사한다. 헤라클레스가 물리친 히드라(Hydra), 황금 양모를 지키는 콜키스의 용 등이 대표적이다.

 

기독교 문화권에서는 용이 혼돈과 악(惡)의 상징으로, 성 게오르기우스가 용을 퇴치하는 전설, 요한 묵시록의 붉은 용(사탄) 설화 등으로 표현된다.

 

한국에서도 용은 신성한 존재로 숭배되어 왔다. 고조선과 삼한 시대 이전부터 용신(龍神)을 숭배하였고, 박혁거세가 용마를 타고 하늘로 올라갔다는 전설, 주몽의 어머니 유화가 하백(河伯)의 딸로서 용과 관련된 존재였다는 설화 등이 전해진다.

 

불교 도입 이후에는 용이 자연의 수호신, 왕권의 상징(용상, 곤룡포), 자비로운 보호신, 또한 용의 꿈을 길상(吉祥)으로 받아들이고, “계천에서 용 났다.”라고 하여 ”미천한 곳에서 훌륭한 인물이 배출되었다.”라는 속설(俗說)이 국민정신문화에 깊숙이 내재된 것을 보면 한국 용의 사상도 신성함과 신령스러움은 부탄 사회와 다를 바 없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다양한 문화권의 용 상징을 도표로 정리하면,

 

이어 부탄의 용에 대한 그 신화와 정신을 더 깊게 간추려 보면,

 

부탄의 용 사상은 인도 문화의 영향을 받았지만, 오랜 세월 축적된 토착 신앙과 불교적 전통 속에서 더욱 독자적인 색채로 발전해 왔다. 대표적인 예는 부탄 국교인 드룩파(Drukpa)종파의 탄생 신화다. 드룩파, 카규파의 창시자 ‘츠앙빠 귀아멜’은 수도(修道) 중 천둥소리가 세 번 울리는 곳에 사원을 세웠고, 이를 ‘드룩 세와(Druk Sewa)’라 명명했다. 여기서 ‘드룩파’, 곧 ‘용의 종파’가 유래했다. 이후 부탄 왕국은 이 정신적 전통을 계승해 국가 정체성의 핵심으로 삼았다.

 

또한, 8세기 구루 린포체(파드마삼바바)가 부탄 각지의 악령을 제압하고 불교를 전파할 때, 용이 나타나 구루를 수호했다는 설화가 전해진다. 어떤 이야기에서는 용이 동굴을 지켜주거나 천둥과 비를 몰고 와 악령을 쫓기도 한다.

 

부탄에는 용왕(Nāga Raja)을 모시는 의식도 깊게 자리 잡고 있다. 용왕은 ‘테르마(terma)’라 불리는 비밀 경전이나 보물을 지키는 존재로, 닝마파 전통 수행에서 중요하다. ‘룽타(Lungta: 바람말)’로 불리는 기도 깃발은 용, 사자, 호랑이, 가루다의 문양과 함께 바람을 타고 소원을 하늘로 전한다는 믿음을 담고 있다. 부탄 전역의 산과 계곡에서 이 룽타 깃발을 흔히 볼 수 있다.

 

부탄 국기도 상징성으로 가득하다. 중앙의 흰 용은 순결과 용기를 상징하고, 입에서 내뿜는 소리는 불법의 전파를 뜻한다. 용의 발에 쥐어진 구슬은 부와 정통성을, 위쪽 노란색은 왕권을, 아래쪽 주황색은 불교적 영성을 나타낸다.

 

 

 

그리고 용의 문화가 살아 숨 쉰다는 것은 전통과 문화(혼魂)를 중요시하는 데 있다. 부탄에서는 ‘드룩 년(Druk Year)’이라는 고유 연호를 사용하며, 용의 해가 돌아오는 12년마다 ‘드룩 나응 두예 첸카(Druk Nang Due Chok)’라는 국가적 규모의 종교 축제를 연다. 이 축제는 왕실 주도로 열리며, 종교 지도자 욘텐 로펜이 의식을 주관한다. 이는 국가의 안녕과 공동체의 번영을 기원하는 성스러운 행사다.

 

부탄은 국토의 70%가 산림으로 덮인 나라다. ‘국민총행복(GNH)’이라는 개념을 앞세워 물질보다 정신적 값어치를 추구하는 철학을 실천하고 있으며, 그 중심에 신령한 용의 상징이 깊숙이 자리하고 있다.

 

따라서 “부탄에는 신령스러운 용이 살고 있다”라는 말은 단순한 시적 표현이 아니다. 그것은 부탄의 자연, 종교, 예술, 국가 정체성 전체를 관통하는 하나의 정신적 실체다. 이렇게 정신적 문화가 뚜렷한 나라에 물질문명이 가져오는 편리함을 자랑삼아 부탄에 전하는 것은, 어쩌면 그들의 청정한 세계를 오염시킬지도 모른다는 우려 또한 깊이 새겨둘 필요가 있다.

 

 

일취스님(철학박사) cleanmind3007@daum.net
Copyright @2013 우리문화신문 Corp. All rights reserved.


서울시 영등포구 영신로 32. 그린오피스텔 306호 | 대표전화 : 02-733-5027 | 팩스 : 02-733-5028 발행·편집인 : 김영조 | 언론사 등록번호 : 서울 아03923 등록일자 : 2015년 | 발행일자 : 2015년 10월 6일 | 사업자등록번호 : 163-10-00275 Copyright © 2013 우리문화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pine9969@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