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다음 날인 수요일 점심시간에 재미있는 사건이 발생했다. 교수들 몇이 학교 식당에서 점심을 먹다가 축제 이야기가 나오고 미스 K 이야기가 나왔다. 미스 K가 미녀라서 그런지 매우 도도하다고 ㅌ 교수가 말했다. K 교수는 그녀가 그렇지 않다고, 매우 상냥하고 친절한 성격이라고 부인하였다. 그러다가 K 교수는 미스 K를 축제에 초대할 수도 있다고 얼떨결에 밀해 버렸다. ㅌ 교수는 그 말을 받아서 그건 불가능할 것이라고 반박했다. 결국은 그러면 내기를 하자는 데에까지 진전이 되었다. 미녀식당에서 가장 비싼 음식을 걸고 점심내기를 했는데, 그 자리에 있던 다른 두 교수는 증인으로 내기에 참여하게 되었다.
내기를 걸고 나서 K 교수는 연구실로 돌아왔다. K 교수는 바쁜 점심시간이 지났을 때인 3시쯤에 미녀식당으로 전화했다. 마침, 미스 K가 직접 받았다. K 교수는 내일 축제에 데리러 갈 테니까 예쁜 옷 입고 식당에서 오후 3시에 기다리라고 전했다. 미스 K와 통화한 후 K 교수는 내기에 참여한 다른 세 교수에게 전화를 걸었다. 내일 오후 3시 30분에 K 교수의 학과 학생회에서 만든 천막주점으로 오라고 자신 있는 목소리로 통화를 했다.
드디어 목요일이 왔다. 그런데 그날 아침에 문제가 생겼다. 아내가 서울에 일이 있다고 한 대만 있는 프라이드 차를 가지고 가버렸다. 아내에게 미스 K 이야기를 할 수는 없는 노릇이고. K 교수는 차가 없게 되었다. 일순간 막막했지만 궁하면 통하는 법이다. K 교수는 조교의 아반떼 차를 빌려 파스타 밸리로 미스 K를 데리러 갔다.
미스 K는 처음 보는 화사한 봄옷으로 예쁘게 차려입고 선글라스까지 끼고서 기다리고 있었다. 식당 주인아줌마의 모습이 전혀 아니었다. 영화배우나 모델 같은 옷차림이었다. 미스 K는 축제에 잠깐 들린 뒤에 서울에 일 보러 올라가야 한다면서, 그랜저 차를 운전하여 따라가겠다고 말했다. K 교수는 조교의 차를 빌려 타고 왔다고 실토했다. 그러면서 자기도 서울에서 저녁 약속이 있으니 축제를 보고서 자기를 서울의 양재역까지 데려다 줄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미스 K는 “네, 좋아요!”라고 시원스럽게 대답했다.
봄 날씨는 매우 화창했다. 여기저기 봄꽃이 피어나 웃고 있었다. 교정에는 젊은 대학생들이 넘쳐나고 북적거렸다. 스피커에서는 경쾌한 음악이 흘러나왔다. 무엇이 그렇게 재미있는지 청춘 남녀들의 웃음소리가 곳곳에서 터져 나왔다. 저쪽에서는 롤러스케이트를 타고서 달리는 남학생이 보였다. 물풍선을 던져 터뜨리며 깔깔 웃는 여학생도 보였다. 분수가 있는 연못에서는 어디에서 빌려 왔는지 노로 젓는 작은 보트가 떠다녔다.
오후 3시 30분이 되려면 시간이 약간 남았다. K 교수는 미스 K와 함께 축제 현장을 둘러보았다. 손을 잡지는 않았지만 나란히 함께 걸었다. 재미있다는 표정으로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는 미스 K는 20대 청춘 같았다. 커다란 선글라스를 썼기 때문에 누구인지 알아보기가 어려울 것이다. 미스 K는 군살이 하나도 없이 날씬하고 아름다운 몸매를 유지하고 있었다. 젊은 학생들로 붐비는 교정에서 미스 K는 마치 늠름한 수탉처럼 고개를 들고서 당당하게 걸었다.

학생회관 앞에서는 동아리연합회에서 무료로 헌책을 나눠주고 있었다. 한 사람이 한 권만 가져가라고 한다. K 교수는 <불교와 그리스도교를 잇다>라는 책을 골랐다. 미스 K는 <업장소멸>이라는 책을 골랐다. 두 사람은 각자가 고른 책을 읽고 난 뒤에 바꿔서 읽기로 했다. 3시 반쯤 두 사람은 약속 장소인 천막주점으로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다른 세 교수는 이미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두 남녀가 사이좋게 걸어오는 것을 보더니 교수들이 깜짝 놀랐다.
“아니, 이게 누구에요? 여대생인 줄 알았는데 K 사장님 맞아요?”
“그림이 아주 좋습니다.”
“K 교수 실력이 보통이 아니네.”
세 교수가 한 마디씩 부러운 듯이 칭찬했다. 미스 K는 예쁜 미소를 띠면서 “캠퍼스가 참 아름답네요”라고 옥음(玉音)으로 말했다. 천막 주점에서는 학생들이 간단한 음식을 만들어 팔고 있었다. K 교수는 맥주 2병과 파전, 감자전, 그리고 마른안주를 주문했다. 네 가지를 주문했어도 가격은 모두 합쳐서 2만 원을 넘지 않았다. 음식을 파는 학생들은 선글라스를 끼고 K 교수와 나타난 미녀를 흘깃흘깃 쳐다보았다. 속으로는 궁금했지만, 누구냐고 묻지는 못하였다.
맥주 한 잔씩을 마시고, 세 교수는 “두 분께 방해가 되지 않도록 우리는 먼저 철수합니다”라고 말하면서 자리를 비켜주었다. 두 사람만 남게 되자 자기가 가르치는 학생들 앞에서 K 교수는 약간 어색함을 느꼈다. 조금 있다가 K 교수는 “이제 가시지요”라고 말하면서 천막주점을 떠났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