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방을 겨눈 항장의 칼춤은 실패

  • 등록 2025.08.05 11:2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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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한범 교수의 우리음악 이야기 743]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항우(項羽)와 유방(劉邦), 두 사람이 형제의 결의도 맺고, 진(秦)나라 수도인 관중에 먼저 들어가 공을 세우는 사람이 왕(王)을 하기로 언약했으나, 항우의 불이행으로 약속이 지켜지지 않았다는 이야기와 겸해서 약속은 하기는 쉽지만, 의무와 책임이 전제되어야 하는 대상이어서 이를 지키지 못한다면 신뢰를 잃고, 관계가 절연되기 쉽다는 점도 강조하며 “이미 정한 약속은 갚지 않은 부채”, “사람은 자기가 한 약속을 지킬만한 좋은 기억력이 필요하다”, “약속을 지키는 최고의 방법은 약속하지 않는 것”이라는 명언(名言)들을 소개하였다.

 

이번 주에는 항우의 부하인 항장(項莊)이라고 하는 무인(武人)이 홍문(鴻門) 연회에서 검무(劍舞), 곧 칼춤을 추며 유방을 죽이려던 계획은 장자방에 의해 실패로 돌아갔다고 이야기한다.

 

앞에서도 잠시 말한 바와 같이, 항우와 유방, 두 장수는 각기 다른 지방에서 일어나 세력을 키우고 있었는데, 초회왕이 제의한 대로 먼저 들어가 공을 세우는 사람이 왕을 하기로 합의하고 군사들을 이끌고 진(秦)나라의 수도인 관중(關中)으로 들어갔다. 결과는 유방의 승리로 끝이 났지만, 왕위 자리를 놓고는 순조롭게 약속이 지켜지지 않았다.

 

인간이 지닌 욕망이나 신의에 관한 의식, 그리고 동조세력들의 조언 등으로 인해, 항우가 냉정한 분별력을 잃었다는 점이 원인이다. 이러한 사실은 <홍문연가>의 노랫말에도 나타나 있는데, 가령, 항우를 향해 은혜를 망각하는 ‘배은(背恩)’이라든가, 또는 의로움을 잊어버린 ‘망의(忘義)’란 표현 등으로 크게 꾸짖고 있기 때문에 충분히 가늠되는 것이다.

 

이처럼 패한 장수, 항우는 그 결과에 승복하지 못한 채, 측근들과 함께 논공행상(論功行賞)을 시작하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가장 우선해서 결정을 내린 사안은 바로 패공을 <한중>으로 멀리 쫓아 버리기로 한 계획이었다. 그런데, 항우 자신보다도 오히려 주위의 그를 따르는 장수들의 공통된 의견이 바로 패공을 멀리 쫓아내는 계획으로는 안심할 수 없다는 점이었다.

 

특히, 범증(范增)과 같은 장수는 “만일 유방을 살려 둔다면, 반드시 후환이 따를 것이니, 이번 기회에 반드시 없애야 한다.”라는 강력한 권고성 발언을 서슴지 않는 것이었다. 이에 고심하던 항우는 홍문에서 잔치를 열게 한 다음, 검무(劍舞)에 능한 항장(項莊)이란 장수로 하여금, 칼춤을 추는 도중에 패공의 목을 베도록 강력한 주문을 한다.

 

 

그의 마지막 결정은 전해 듣기만 해도 섬뜩하다.

 

항우가 죽이려고 하는 유방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형제애를 맺고 함께 진격해 온 동료였다. 권력을 눈앞에 두고 있는 시점에서 이 두 사람이 했던 약속이 순조롭게 지켜지지 않은 이유는 도대체 무엇일까? 그것은 인간의 욕망과 욕심이 분명하다. 딱히 다른 이유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큰 기러기가 많이 날아다니는 홍문(鴻門)이란 곳을 택해 너와 내가 연회를 즐기며 노래하고 춤을 춘다는 의미를 달고 있지만, 그 춤이란 것이, 무희(舞姬)들의 화려하고 아름다운, 즐겁고 유쾌한 춤이 아니라, 유방의 목을 겨눈 무서운 칼춤이란 점에서 소름이 돋는다.

 

그렇다면, 과연 유방(劉邦)을 제거하기 위한 무인(武人)들의 칼춤, 곧 항우가 노하여 군사를 홍문(鴻門)에 머무르게 하고, 연회를 마련하여 술잔이 오고 가며 분위기가 어수선할 때, 패공을 죽이려 했던 이 작전은 성공할 수 있었을까?

 

결과부터 말하면 그 춤판은 실패였다.

성공할 수 없었던 배경은 유방의 부하, 장자방(張良)이 항우 쪽 사람인 항백의 도움을 받아 그 계획을 사전에 탐지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앞에서 읽은 바 있는 다음의 글이 떠오른다.

 

“무죄한 패공을 아무리 살해하고 저 홍문에다 연회를 베푼들, 하늘이 내신 사람, 천붕우출(天崩又出), 곧 하늘이 무너져도 또한 솟아날 수 있는 길 없을 것이며. 유능제강(柔能制剛), 다시 말해 유한 것이나 부드러운 것이 능히 굳센 것을 이긴다는 옛 말씀을 이로 보아 알리로다.“

 

 

여기에서 유래한, 항장(項莊)이 추었다고 하는 칼춤이 바로 오늘날까지 그 이름이 전해오는 ‘항장무’라는 이름의 칼춤이다.

(다음 주에 계속)

 

 

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suhilkwa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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