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인 매창의 인생

  • 등록 2025.09.15 11:2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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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창, 거문고를 사랑한 조선의 뮤즈》 최옥정 장편소설, 예옥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매창.

역사에 이름을 남긴 몇 안 되는 조선의 기생 가운데 한 명이다. 부안에 살았고, 허균의 막역한 지기이기도 했다. 황진이만큼 숱한 이야깃거리를 남기진 않았지만, 시인 유희경과의 사랑과 허균과의 우정, 그리고 《매창집》을 남길 만큼 출중한 문학적 재능으로 유명하다.

 

그녀의 인생길을 차분하게, 또 서정적으로 담아낸 최옥정의 장편소설,《매창, 거문고를 사랑한 조선의 뮤즈》는 매창에 대해 많은 것을 발견하게 되는 책이다. 단순히 부안의 이름난 기생으로 알았던 그녀가 유희경을 진심으로 사랑했으며, 임진왜란이라는 시대적 환란을 온몸으로 겪어냈고, 허균과도 시를 주고받는 벗이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매창은 부안현 아전의 서녀였다. 어머니를 일찍 여의고 아버지에게 글을 익히며 자라났다. 불과 서른여덟 나이로 세상을 떠난 뒤 부안현 아전들이 그녀의 시들을 모아 《매창집》을 펴냈다. ‘매화꽃 보이는 창’이라는 뜻을 담은 그녀의 호는 계랑이라 불리던 그녀가 자신을 향해 붙인 호였다고 한다.

 

매창은 문학적 재능도 뛰어났지만, 거문고를 잘 타기로도 유명했다. 고을 기생이던 매창은 현감의 소개로 유희경을 만났다. 둘은 곧 서로 사랑하는 사이가 되었지만, 임진왜란이 일어나며 그는 의병이 되어 전쟁터로 나간다.

 

(p.84)

나는 전쟁터가 두렵지 않다. 오히려 여기 앉아서 너를 만나지 못하는 것이 더 무섭다. 살아 돌아올지 죽어 시신으로 돌아올지 알 길이 없으나 전쟁터에서는 비겁하지 않을 것이다. 지금은 그것만이 내가 탐할 수 있는 유일한 꿈이다. 나를 기다리며 애태우지 마라. 새봄이 오면 너는 새잎을 달고 너로서 푸르르면 될 일이다. 목숨이 끊어지는 순간까지 너의 안녕을 기원하마.

 

매창은 자신을 두고 전쟁에 나가는 유희경이 야속했지만 붙잡을 수 없었다. 신분이 낮았던 그는 전쟁이 끝난 뒤 의병 활동을 한 공로로 면천하여 벼슬길에 올랐다. 다른 여인과 혼례를 하고 자식도 두었다. 양반이 기생과 혼인할 수는 없었지만, 매창이 받은 충격은 컸다.

 

김제 부사 이귀 또한 매창의 재능을 아끼고 생활을 돌보아준 사람이었다. 매창은 유희경과 헤어진 뒤 다시 정인을 두지 않았지만, 이귀 덕분에 기운을 찾고 생활도 안정되어 갔다. 그러나 유희경이 이따금 전해오는 시를 볼 때면 또다시 마음이 무너지곤 했다.

 

(p.136)

그대의 집은 부안에 있고

나의 집은 한양에 있어

그리움 사무쳐도 서로 볼 수가 없네

오동나무에 비 내릴 때마다 애가 끓는구나

 

허균은 전라도 지방의 세금을 걷는 전운판관 벼슬을 얻어 부안에 왔다. 그는 자유분방한 사고로 벼슬길이 순탄치 못했다. 부처를 섬기다가 삼척 부사 자리에서도 쫓겨나 서얼보다 못한 신세가 되어 떠돌아다니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예술과 풍류에 조예가 깊은 사람이었다. 소문으로만 듣던 매창을 만난 그는 허심탄회한 이야기를 많이 털어놓았다. 둘은 서로의 재능을 알아보며 막역지우가 되었다. 허균 또한 다른 벼슬을 받아 가면서 둘은 좋은 벗으로 남았다.

 

매창은 담백한 성품을 지니고 거문고를 잘 타며, 함께하는 사람의 마음을 잘 헤아리는 인물이었던 것 같다. 기생이었지만 선비들과 좋은 벗으로 우정을 나눈 데는 훌륭한 재능과 더불어, 상대방의 결핍을 잘 알아보고 치유해 주는 힘이 있었다.

 

(p.346)

그녀가 사람을 만나고 사랑할 때 움직이는 것은 아름다운 여자로서의 매력과 재능 말고 또 다른 천품이 있었다. 상대의 가장 깊고 진한 곳, 심연을 들여다보고 발견해 주는 일. 그리하여 그 사람이 가장 그 사람답게 살아가도록 도와주는 일이었다. 그녀를 만나면 저마다 제 인생 최고의 시를 짓고 저절로 자유로워졌다. 마침내 오랫동안 모르쇠 했던 자신의 내면과 맞닥뜨릴 수 있는 강한 사람이 된다.

 

매창이 살았던 시대는 참으로 불우했다. 7년의 전란을 겪었고, 엄격한 신분사회의 그늘에서 사랑하는 사람과 가정을 꾸릴 수 없었던 아픔도 있었다. 그래도 자신의 운명을 포용하며 한평생 멋지게 살다 간 여성이었다.

 

이 책은 매창이 살았던 시대와 삶을 톺아볼 수 있는 좋은 역사소설이다. 비록 박진감 넘치는 서사는 없지만, 차분하고 아름다운 분위기가 돋보인다. 매창의 남자, 유희경과 허균의 인생도 살펴볼 수 있는 것은 덤이다. 인생과 인생이 만나 엮어내는 이야기가 아름답게 펼쳐진다.

 

 

우지원 기자 basicform@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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