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밤, 별밤, 구름밤

  • 등록 2025.09.15 11:3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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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하나 오늘 토박이말]구름밤

[우리문화신문=이창수 기자]  어느 날 밖을 내다보았는데 달도 별도 보이지 않고 하늘이 온통 구름에 덮여 있다면 우리는 어떤 밤을 맞게 될까요? 이럴 때 쓰면 아주 좋은 토박이말이 있습니다. 바로 ‘구름밤’입니다.

 

‘구름밤’은 말 그대로 ‘구름이 끼어 어두운 밤’을 뜻합니다. 참 꾸밈없고 쉬운 말이지요? 하지만 이 짧은 낱말 속에는 깊고 아늑한 밤의 바람빛(풍경)이 오롯이 담겨 있습니다.

 

 

달빛이 환한 '달밤', 별빛이 쏟아지는 '별밤'과는 달리 '구름밤'은 누리의 모든 빛을 구름이 포근한 이불처럼 덮어버린 밤입니다. 빛이 사라진 어둠 속에서는 다른 것들이 더욱 또렷해집니다. 풀벌레 소리가 마음에 더 가까이 와닿고, 멀리서 짖는 개 짖는 소리가 더욱 아련하게 들려옵니다. 온 누리가 조용히 잠든 듯한 고요 속에서 제몸과 오롯이 마주하게 되는 밤이기도 합니다.

 

옛 어른들은 이런 구름밤에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요? 아마 아제(내일)의 날씨를 걱정하기도 하고, 어둠이 짙으니 일찍 잠자리에 들어 고된 몸을 쉬셨을지도 모릅니다.

 

“오늘은 구름밤이라 뜰 안이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을 만큼 캄캄했다.”

 

“모처럼 마실 가려던 걸음이 궂은 구름밤 때문에 멈칫했다.”

“구름밤이 깊어지자, 처마 끝에 듣는 빗방울 소리가 더욱 크게 들려왔다.”

 

어떤가요? 그저 ‘흐린 밤’이라고 하는 것보다 ‘구름밤’이라고 하니, 하늘 가득 낀 구름의 모습과 그 때문에 더욱 짙어진 밤의 숨씨(공기)가 살갗에 와닿는 듯하지 않으신지요.

 

요즘처럼 밤이 조금씩 길어지는 가을날, ‘구름밤’을 만나는 날이 더욱 잦아질 것입니다.  어느 날 밤, 밖이 유난히 어둡거든 ‘아, 오늘이 바로 구름밤이구나’ 하고 알아채 보면 어떨까요?

 

빛나는 것들만이 밤을 아름답게 만드는 것은 아닙니다. 모든 빛을 제 품에 안아 누리를 고요히 잠재우는 ‘구름밤’ 또한 그 나름의 멋과 깊이가 있습니다. 이 아름다운 우리말을 마음 속에 담아두셨다가, 달과 별이 구름 뒤에 숨어버린 날 곁에 있는 이에게 “오늘 밤은 구름밤이네.” 하고 나지막이 속삭여 보세요. 똑같은 밤하늘이 한결 더 살갑고 다정하게 느껴질 것입니다.

 

 

이창수 기자 baedalmaljigi@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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