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원의 6일 동안 열하 기록을 따라가다

  • 등록 2025.09.19 11: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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닫힌 세상에서 열린 세상으로 가는 길 ‘문명 보고서’ 10

[우리문화신문=안동립 기자]  

 

# 열하일기를 따라서, 답사 9일 차

일자 : 2025년 4월 27일(일요일), 이동 거리 234km

호텔 : 북경풍영군화(北京丰荣君华, 010-8146-3366)

 

열하에서 황제를 만나다

 

1780년 8월 13일, 건륭제의 만수절에 참석하기 위하여, 열하에 간 조선 사신단의 규모는 사신 10명, 수행원 64명으로 모두 74명이었고 말 55필이었습니다. 열하는 정치·군사적, 전략적인 필요로 건설되었으며, 몽골과 연합하여 준가얼 세력까지 점령했습니다. 해마다 만주 팔기군과 몽골 팔기군이 목란에 사냥터를 조성하여 군사 훈련을 겸한 무력시위를 하였습니다.

 

열하의 입구 여정문(麗正門)에 도착하니, 어제 만나서 취재하던 승덕시 관광국 관계자와 기자들과 관련 공무원 여러 명이 이른 아침인데도 나와 저희를 맞이하며 인사를 하였습니다. 오늘까지 이국복 교수가 안내하였습니다. 여정문 앞에서 우측 화단에 중국 정부에서 설치한 연암 박지원 비석을 찾았습니다. 큰 돌 한쪽 면을 다듬어 박지원의 공로를 소개한 비석을 세워 두었는데, 가이드 황일만 사장이 사전에 답사하여 비석을 찾는 데 무척 어려움을 겪었다고 하였습니다.

 

 

 

한문으로 새겨진 '朴趾源'이라는 이름이 '樸趾源'으로 표기되어 있어 ‘樸’ 박자는 뜻이 다른 한자입니다. (※중국에서 두 글자는 같은 뜻을 가진 한자로 樸의 간체자가 朴이다) 또 작은 안내판이라도 설치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정문을 통과하여 내부로 입장하니 잘 조성된 큰 공원 같았고, 넓은 부지에 인공으로 만든 호수 여러 개가 이어져 있으며 많은 전각이 보였습니다. 그 규모와 작품성에 감탄을 금치 못하였습니다.

 

우리는 박지원 일행이 1780년 8월 9일부터 14일까지 6일 동안 열하에 묵으며 남긴 기록을 따라가는 답사를 하였습니다. 연암은 1780년 8월 11일 황제의 만수절에 참석하였는데, 당시 황제를 알현하였던 장소인 만수원 터를 찾아가니 비석과 잔디가 깔린 넓은 평지였습니다. 황제를 만나는 장면을 《열하일기》에는 “황제가 정문으로 해서 문 안의 벽돌을 깔아 놓은 위에 나앉았다. 교의와 탁자도 내오지 않고, 다만 평상에 누런 보료를 깔았으며, 좌우의 시위는 모두 누런 옷을 입었는데, 그 가운데에서 칼을 찬 자는 서너 쌍에 불과하고, 누런 일산을 받들고 선 자는 두 쌍이다. 그들은 모두 엄숙한 표정으로 조용하다. 사신과 세 통사(通事)를 나오라 하매 모두 나아가 무릎을 꿇었다. 이는 무릎이 땅에 닿을 뿐, 뒤를 붙이고 앉은 것은 아니다.

 

황제가, ‘국왕(國王)께서 평안하신가?’ 하고 물으니, 사신은 공손히, ‘평안하옵니다’하고 대답하였다. 황제는 또, ‘만주말을 잘하는 이가 있는가?’ 하매, 상통사(上通事) 윤갑종(尹甲宗)이, ‘약간 아옵니다’ 하고 만주말로 대답하였더니, 황제가 좌우를 돌아보며 기뻐하며 웃었다. 황제는 모난 얼굴에 희맑으면서 약간 누런 빛을 띠었으며, 수염이 반쯤 희고, 나이는 예순쯤 된 듯싶다. 애연히 춘풍화기를 지녔다”라고 상세히 묘사하였습니다.

 

 

 

 

승덕 피서산장 열하 비석(承德 避暑山庄, 乾隆行宫) : 황제의 별장으로, 사철 뜨거운 물이 나오는 열하 지역에 인공호수를 만들어 피서산장을 지었다고 합니다. 입구 현판 글자인 여정문(麗正門)에는 몽골어, 위구르어, 한어, 티베트어, 만주어 등 5개의 문자로 쓰여 있습니다. 이는 이민족의 화합을 위한 외교 전략의 하나였는데, 황제는 몽골식 가옥인 만수원을 짓고 피서지로 사용하며, '사원 하나를 지으면 10만 명을 이길 수 있다'라는 신념으로 화합을 통하여 청나라의 변방을 안정시켰습니다.

 

호수 건너편 먼 산 위에 큰 바위가 추처럼 거꾸로 서 있는데, 원래 이름이 봉추산(捧捶山)이었습니다. 강희황제가 이를 경추산(磬捶山)이라고 고쳐 이름 지었다고 합니다. 호수 사이로 만들어진 길을 따라가니 사신을 맞이하는 만수원 터가 나왔고, 조금 지나니 열하(熱河) 입석이 보였습니다. 이곳에서 연암을 다시 만나는 순간이었습니다.

 

 

안동립 기자 emap4u@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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