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악산에 놀러 가려는 흑심을 품었는데

  • 등록 2025.11.09 10:5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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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뭐꼬의 장편소설 <꿈속에서 미녀와> 39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K 교수는 분명히 들었다. 미스 K는 이번에는 ‘아저씨’ 대신에 ‘그 사람’이라고 표현했다. 미스 K는 남편이라는 단어를 일부러 피하는 것이 분명했다. 두 사람은 이미 이혼했거나, 별거 단계에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스쳤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발견이었다. 앞으로 K 교수가 미스 K를 어떻게 대할 것인가에 대해서 암시를 주는 바가 크다.

 

간단히 말해서 K 교수가 미스 K에게 데이트를 신청하고, 언젠가 데이트는 물론 그다음 단계로 나아가더라도 유부녀가 아니므로 위험 부담이 줄어들 것 같다. 물론 아내를 속이는 일은 미안하지만, 상대가 유부녀는 아니므로 저쪽 남자에 대해서는 신경 쓰지 않아도 될 것이다. 아전인수격으로 해석하면, 로맨스(나쁘게 말하면 불륜)에 대한 위험 부담이 반으로 줄어든다고 볼 수 있다. 어쨌든 우연히 새로운 사실을 발견하고서 K 교수는 매우 고무된 기분이었다.

 

며칠 뒤, K 교수는 신문을 읽다가 경기도 이천군에서 도자기 축제가 열린다고 소개하는 기사를 보았다. 해마다 열리는 도자기 축제인데, 올해에는 특히 세계 각국의 도자기를 모아 대규모로 전시회를 한단다. K 교수는 기사를 읽고서 멋진 계책을 생각해 내었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는 법이다.

 

그날 밤, K 교수는 늦은 시간에 미녀식당에 들렸다. 미녀는 혼자서 손님 없는 식당을 지키고 있었다. 가벼운 인사를 나눈 뒤 K 교수가 먼저 말을 꺼내었다.

 

“지난번에 죽산 축제에 가자는 제안은 거절당했지만, 오늘 다시 도전해 보겠습니다.”

“무슨 말씀이신지?”

“도자기 좋아하세요?”

“도자기 꽃병에 장미가 꽂혀 있으면 아름답지요. 고흐의 그림 중에 ‘장미가 든 꽃병’이라는 작품이 유명하지요. 고흐가 세상을 떠나기 몇 달 전에 프랑스의 시골집에서 완성한 그림이라고 알려진 작품입니다. 우리 집 거실에도 하나 걸어놓았는데, 차분하면서도 세련된 분위기를 만들어주고 있어요. 그 그림을 보고 있으면 실제 꽃향기가 퍼지는 듯한 기분이 듭니다.”

 

 

“고흐라면 젊은 나이에 권총 자살한 천재 화가 아닙니까?”

“맞아요. 고독하고 가난하게 살다가 37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자살했지요.”

“아, 그렇군요. 미술은 제 분야가 아니라서... 그런데 장미를 살려면 돈이 들 것이고. 도자기에 장미 조화를 꽂으면 어때요?”

“조화는 싫어요. 며칠 있다가 시들더라도 생화가 훨씬 낫지요. 생화는 색감도 다르고, 또 무엇보다도 향기가 있잖아요.”

“다음 주에 경기도 이천에서 도자기 축제를 합니다. 구경 한번 같이 갈까요?”

“글쎄요...”

“요즘 바쁘신가요?”

“이천은 너무 멀어요. 저는 1시간 이상 차 타는 것은 지루해서 싫어요.”

 

아, 정말로 이 여자는 까다롭다. 한 시간 넘게 차 타는 것은 지루해서 싫다고? 그러면 서울을 벗어나기가 어렵다는 이야기네. 이것은 예상하지 못했던 복병이다. 미스 K를 잘 꼬드겨서 강원도 설악산이나 충청북도 속리산에 한번 놀러 가려는 흑심을 품고 있었는데, 쉽지 않을 것 같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이유로 거절을 당하자 K 교수는 화제를 돌렸다.

 

“그러면, 스포츠는 무엇을 좋아하세요?”

“승마와 테니스를 좋아하죠. 저는 음양으로 따져서 양 체질인가 봐요. 저는 활동적인 스포츠가 좋아요.”

“골프는 어때요?”

“대학 다닐 때 배우기는 했는데, 골프는 지루해서 필드에 자주 나가지는 않습니다.”

“지루한 것을 싫어한다면, 바둑은 안 배우셨겠네요?”

“아빠 어깨 너머로 바둑을 배워서 둘 줄은 알지만 자주 두지는 않아요.”

“아, 그렇군요. 승마, 골프, 테니스, 바둑에 무용까지. 어쨌든 은정 씨는 제가 지금까지 만난 여자 중에서 가장 다재다능하고 가장 까다로운 미녀입니다.”

“호호호, 그렇게 생각하세요? 제가 까다롭지는 않은데... 교수님의 평가는 칭찬으로 듣겠습니다. 호호호.”

“칭찬이라고 생각한다고요? 허허허. 내가 졌습니다.”

 

그날 밤, 두 번째 큐피드 화살도 과녁을 맞추지 못했다. “여자와 가재는 가는 방향을 모른다”라는 속담이 있다. 이 여자의 마음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그렇지만 실망하지 말자. 포기하지 말자. 인내심을 가지자. 남자가 칼을 뽑았으면 무라도 썰어야 하지 않겠는가 말이다. 교수가 잘하는 것이 연구다. 작전을 잘 연구해서 큐피드 화살을 다시 한번 날려보자.

 

(계속)

 

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muusim2222@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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