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원 열하일기 초고본 일괄》 보물 지정 예고

  • 등록 2025.12.31 12:2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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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평 현등사 아미타여래설법도」, 「양산 신흥사 석조석가여래삼존좌상」 등도 함께

[우리문화신문=한성훈 기자]  국가유산청(청장 허민)은 박지원이 조선 후기 청나라에 다녀온 뒤 작성한 견문록 《박지원 열하일기 초고본 일괄》을 비롯해 「가평 현등사 아미타여래설법도」, 「임실 진구사지 석조비로자나불좌상」, 「양산 신흥사 석조석가여래삼존좌상 및 복장유물」까지 모두 4건을 국가지정문화유산 보물로 지정 예고하였다.

 

단국대학교석주선기념박물관 소장의 《박지원 열하일기 초고본 일괄》은 박지원(1737~1805년)이 청나라 북경과 열하 등지를 방문하고 돌아온 경험을 정리한 《열하일기》가 처음 제작될 당시의 모습을 담은 자료다. 청에서 귀국한 박지원이 작성한 첫 고본(稿本)*에 해당하는 데, 나라 안팎 여러 곳에 전하는 다양한 형태의 전사본(傳寫本)* 《열하일기》는 이를 저본(底本)*으로 목차, 순서, 내용 등이 구성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 고본: 저자가 친필로 쓴 원고로 만든 책

* 전사본: 저자가 작성한 고본을 다른 사람이 옮겨 베껴 쓴 책

* 저본: 옮겨 적을 때 근본으로 삼는 책

 

 

단국대학교석주선기념박물관에 소장된 열하일기 초고본 자료는 모두 10종 20책이지만, 모두 박지원의 친필 고본은 아닌 것으로 판단되며, 그의 후손과 문인에 의해 첨삭ㆍ보완된 과정을 볼 수 있다. 따라서 이 10종 20책 가운데 박지원의 친필 고본으로서, ① 정본에 존재하지 않는 서학(西學) 관련 용어와 새로운 내용이 수록된 연행음청(燕行陰晴) 건ㆍ곤(2책), ② 가장 초기 고본의 모습을 보이는 연행음청록(燕行陰晴錄) 4ㆍ연행음청기(燕行陰晴記) 3(1책), ③ 서문과 단락을 갖춘 고본 열하일기 원ㆍ형ㆍ이ㆍ정(4책), ④ 정본에 없는 내용을 다수 수록하고 있는 열하피서록(熱河避暑錄)(1책) 등 4종 8책의 자료가 보물로 지정 예고됐다.

 

《박지원 열하일기 초고본 일괄》은 처음 제작될 당시의 형태와 저자인 박지원 및 그 후손 등에 의해 수정ㆍ개작(改作)된 과정을 살펴볼 수 있고, 조선 후기 대표적인 실학서로 당대 조선 사회에 끼친 영향력 등으로 볼 때 보물로 지정할 값어치가 크다.

 

「가평 현등사 아미타여래설법도」는 화기(畵記)*에 있는 기록을 통해 1759년(영조 35년)이라는 제작 연대, 오관(悟寬) 등의 제작자, 현등사라는 원 봉안처 등을 명확히 알 수 있는 불화다. 비단 바탕에 채색으로 아미타여래가 극락에서 여러 권속에게 설법하는 장면을 표현하였으며, 가운데에 크게 배치한 아미타여래를 중심으로 나한, 팔금강, 팔부중 등 권속(眷屬)*들을 짜임새 있게 배치하였다. 존상(尊像)의 위계에 따라 채색과 크기를 달리 표현하고 주존(主尊)을 중심으로 좌우대칭을 이루게 배치하여 40여 존상이 함께 그려져 있는데도 안정적이다. 무늬 등 세부 표현의 섬세한 처리, 깔끔하고 힘이 있는 필선 등을 통해 수화승(首畵僧)* 오관의 뛰어난 역량을 짐작할 수 있다.

* 화기: 불화 하단에 제작 연대, 봉안 장소, 제작 목적, 시주자, 제작자 명단 등을 적은 것

* 권속: 불ㆍ보살을 모시고 따르며 보좌하는 자

* 화승: 불화를 전문적으로 그리거나 회화 작업에 종사하는 승려로, 화승 중 으뜸을 ‘수화승(首畵僧)’이라고 함.

 

 

현존하는 18세기의 경기 지역 불화가 많지 않은데, 이 작품은 당시 경기 지역의 불화와 화승들의 화풍, 18세기 불화의 흐름을 잘 보여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무엇보다 서울ㆍ경기 지역의 아미타설법도 가운데서 제작 시기가 가장 빠르다는 점에서 중요한 작품이므로, 보물로 지정하여 보존할 만하다.

 

「임실 진구사지 석조비로자나불좌상」은 정확한 제작 시기를 알려주는 자료는 존재하지 않지만, 불상과 대좌(臺座)의 형식, 조형미, 진구사터에 있는 석등과의 비교 등을 통해 통일신라 하대인 9세기 후반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 대좌: 불상을 올려놓는 받침

 

 

이 석불은 광배(光背)*가 없어지고 왼쪽 손목 아랫부분 일부도 없어졌으나, 불신(佛身)과 대좌가 거의 완전한 상태로 남아 있으며, 전체적으로 균형 잡힌 비례와 섬세한 조각 수법이 돋보인다. 이러한 조형적 완성도는 현재 보물로 지정된 9세기 석조비로자나불좌상들과 견줘도 손색이 없다.

* 광배: 부처의 몸에서 나오는 성스러운 빛을 형상화한 것

 

전라 지역에서 드물게 확인되는 9세기 석조비로자나불좌상이자, 통일신라 하대 불교 미술의 지방 확산, 불상 양식의 지역적 전파 양상을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실물 자료로 높이 평가되므로, 보물로 지정하여 체계적으로 관리할 필요가 있다.

 

「양산 신흥사 석조석가여래삼존좌상 및 복장유물」은 수조각승* 승호(勝湖)를 비롯해 수연, 보장, 인원, 처행 등의 조각승들이 1682년(숙종 8년) 완성해 신흥사에 봉안한 작품이다. 이러한 제작 관련 정보들은 우협시(右脇侍)* 보살좌상에서 발견된 조성 발원문을 통해 알 수 있는데, 발원문에는 이 불상이 ‘영산회(靈山會)* 삼존’으로 조성되었다고 적혀있다. 17세기 이후 시왕상이나 나한상 등 수량이 많은 조각에 많이 쓰였던 재료인 불석(佛石, 제롤라이트)으로 제작되었다.

* 조각승: 불교조각을 전문으로 제작하는 승려로, 조각승 중 으뜸을 ‘수조각승(首彫刻僧)’이라고 함. 연륜이 쌓이고 오랫동안 제자들과 작업하면서 나름의 사승(師承) 관계와 작품 양식을 이루어 계보(系譜)를 형성하기도 함.

* 우협시: 오른쪽에 있는 보살상

* 영산회: 석가모니불이 영취산에 있으면서 설법하던 때의 회중(會衆)을 말함.

 

 

경상도 지역에서 활약이 두드러진 승호는 불석*을 잘 다루었던 조각승으로, 현존하는 그의 작품은 대부분 불석으로 만든 것이다. 승호는 1655년(효종 6년) 도우(道祐)를 도와 칠곡 송림사 석조아미타여래삼존좌상을 제작하였는데, 이때 불석을 다루는 방법을 익혔던 것으로 추정되며, 이후 불상 제작에 불석을 많이 활용하였다.

* 불석 : 불상 조각 재료로도 널리 쓰인 규산염 광물

 

이 지역에서 유행한 불석제 불상의 특징을 잘 보여주며, 승호의 작품 가운데 주전각(主殿閣)*에 봉안하기 위해 제작한 작품 가운데서는 가장 이른 사례다. 조선 후기 경상 지역 조각과 조각승들의 활동상을 살필 수 있다는 점, 오늘날까지 원 봉안처에 남아 있다는 점 등에서 미술사적ㆍ역사적 값어치가 크다. 후령통(喉鈴筒)* 등 제작 당시에 함께 넣은 중요한 유물도 17세기 후반 복장 납입 의식을 이해할 수 있는 자료이므로, 불상과 함께 지정ㆍ보존할 필요가 있다.

* 주전각: 절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대표 건물

* 후령통: 불상 등에 종교적 물품을 넣어 봉안하는 복장의식 때 사용되는 금속제 용기로, 오방(五方)을 상징하는 오색의 직물 등이 들어 있음.

 

국가유산청은 이번에 지정 예고한 《박지원 열하일기 초고본 일괄》, 「가평 현등사 아미타여래설법도」 등에 대해 30일 동안의 예고기간 각계의 의견을 수렴ㆍ검토한 뒤, 문화유산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국가지정문화유산 보물로 각각 지정할 예정이다.

 

한성훈 기자 pine996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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