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이창수 기자]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 소비자 가전 전시회(CES) 소식을 또 들었습니다. 인공지능과 로봇이 이제 우리 일상 깊숙이 들어왔음을 똑똑히 볼 수 있었습니다. 뉴스에서는 이를 두고 '새로운 시대의 시발점(始發點)'이라거나 '혁신의 계기(契機)'가 마련되었다고 말하더군요. 하지만 그 커다란 흐름을 그저 '시작되었다'거나 '계기가 되었다'는 딱딱한 한자어로 나타내고 말기에는 어딘가 아쉬웠습니다. 막막하던 미래가 뻥 뚫리는 듯한 그 벅찬 느낌을 설명하기엔 많이 모자라게 느껴졌다는 것이지요.
이럴 때, 우리네 농부들이 논둑에서 쓰던 토박이말 '물꼬'를 떠올려 봅니다.
'물꼬'는 '논에 물이 넘나들도록 만들어 놓은 좁은 통로'를 뜻합니다. '논꼬'라도도 하며 '진전이 없거나 막혀 있는 상태를 푸는 실마리나 계기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로 많이 쓰지요. 재미있는 것은 이 말 속에 들어있는 생명력 넘치는 심상입니다. '시발점'이 기계가 움직이도록 단추를 누르는 듯한 차가운 시작이라면, '물꼬'는 막혀 있던 논둑을 허물어 메마른 땅에 생명의 물이 콸콸 쏟아져 들어오게 해 목마름을 가시게 해 주는 뜨거운 시작이라는 것입니다.
"인공지능(AI) 시대가 도래했다"라는 어딘가 메마르고 거친 말보다, "인류와 로봇이 함께 살아가는 시대의 물꼬를 텄다"라고 말할 때, 우리는 비로소 기술이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우리 삶을 적시는 거대한 흐름임을 느끼게 됩니다. '시발점'이나 '계기'가 관찰자의 언어라면, '물꼬'는 흐름을 주도하고 땅을 일구는 주체적인 삶의 언어입니다.

변화가 두려운 오늘, 낯선 기술과 빠르게 달라지는 세상이 둑처럼 가로막혀 답답하게 느껴지실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농부가 물꼬를 터야 벼가 자라듯, 꽉 막힌 두려움의 한귀퉁이를 터주어야 새로운 기회가 흘러들어옵니다. 오늘의 변화가 우리 삶을 더 넉넉하게 적시는 과정이라 여겨보면 어떨까요?
오늘 하루, 꽉 막힌 일로 고민하는 동료에게 문자 하나 남겨보세요.
"많이 답답하죠? 꽉 막힌 논에 시원하게 물꼬를 트듯, 당신의 반짝이는 생각이 꽉 막힌 우리 일의 숨통을 틔워주기를 바랍니다."
기술의 시대를 여는 건 과학이지만, 관계의 흐름을 여는 건 우리의 따뜻한 말 한마디입니다.
[오늘의 토박이말]
▶물꼬 [명사]
1)진전이 없거나 막혀 있는 상태를 푸는 실마리나 계기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2)논에 물이 넘나들도록 만들어 놓은 좁은 통로. (=논꼬)
[여러분을 위한 덤]
어떤 일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거나 해결의 실마리가 보일 때, "협상이 타결되기 시작했다" 같은 밋밋한 표현 대신 이렇게 써보세요.
"오랫동안 굳게 닫혀 있던 대화의 문, 서로의 진심이 닿자 비로소 둑이 무너지듯 화해의 물꼬가 트이기 시작했다."
글을 읽는 순간, 막힌 가슴이 뻥 뚫리는 듯한 시원한 느낌을 함께 심어줄 수 있을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