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손병철 박사/시인] 신라의 왕자가 있었다. 그러나 그는 왕좌보다 마음의 자리를 택했다. 궁궐의 붉은 기와와 비단 장막을 뒤로하고, 스스로 머리를 깎아 승복을 입었다. 그의 이름은 무상(無相, 684~762). 형상을 버리고, 이름마저 뜻이 이름 속에 이미 담겨 있었다. 당나라로 건너간 그는 마침내 사천(四川)의 깊은 산중에 이르렀다. 안개가 산허리를 감싸고, 계곡물 소리가 밤낮으로 끊이지 않는 땅. 그곳에서 무상은 "정중사(淨衆寺)"를 열고, 이어 "정중종(淨衆宗)"이라 불리는 선맥(禪脈)을 세웠다. ‘맑을 정(淨)’, ‘무리 중(衆)’, 번잡한 세속 속에서도 맑음을 지키는 수행 공동체였다.
그의 선풍(禪風)은 단호하면서도 소박했다.
그는 일기일성(一氣一聲)의 수행법을 제창, 대중을 이끌었다. 문자를 세우기보다, 이론을 장황히 늘어놓기보다, “지금 이 자리의 마음”을 곧바로 비추는 가르침. 수행자들은 새벽안개 속에서 좌선하고, 낮에는 밭을 일구며, 저녁이면 고요히 숨을 고르는 일상을 살았다. 이 고요한 일상에, 언제부턴가 맑은 차 한 잔이 스며들었다.
사천은 차의 고장이다. 산자락마다 차나무가 자라고, 물은 부드럽고 향은 깊다. 무상선사는 차를 단순한 음료로 보지 않았다. 차는 졸음을 쫓는 약이면서도, 동시에 마음을 가라앉히는 수행의 동반자였다. 좌선이 길어질수록, 숨결이 흐트러질수록, 수행자들은 조용히 물을 끓이고 찻잎을 띄웠다.
“차를 마시되, 차에 머물지 말라.” 그가 남겼다고 전해지는 이 말은, 차마저도 집착이 될 수 있음을 경계하는 선사의 태도를 잘 보여준다. 그러나 또한 그는 이렇게도 일렀다. “차를 마실 때는, 오직 차를 마셔라.” 찻잔을 들고 있는 지금, 이 순간, 혀끝에 스치는 쌉쌀한 맛, 김이 오르며 퍼지는 은은한 향,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알아차리는 ‘이 마음’. 무상의 선은 바로 그 자리를 가리켰다. 차는 ‘수행의 도구’가 아니라, 수행이 드러나는 한 장면 그 자체 곧 선차(禪茶)의 시작이었다.
신라에서 건너온 왕자 출신의 승려가, 당나라 사천의 산중에서 차를 달이며 선문답을 나누는 장면을 떠올려 보면 묘한 감회가 인다. 국경을 넘어, 혈통을 넘어, 언어를 넘어, 한 잔의 차는 수행자들의 숨결을 하나로 묶었다. 차는 중국의 것이었고, 선사는 신라의 사람이었으나, 그들이 나눈 ‘맑음’은 어느 나라의 것도 아닌 선(禪/仙)의 세계였다. 훗날 중국 선불교사에서 무상선사는 ‘사천 선종의 중요한 개창자’로 기록된다. 그러나 그 명성보다 더 오래 남았을 것은, 새벽 좌선 뒤에 나누던 한 잔의 따뜻한 차, 그리고 그 찻김 속에서 잠시 드러났다가 사라지는 고요한 마음의 빛이었을 것이다.
오늘 우리가 차를 마실 때, 그저 맛과 향만을 말한다면 반쪽일지도 모른다. 무상선사가 사천의 산사에서 보여준 것은, 차를 통해 드러나는 마음의 맑음, 그리고 맑음을 통해 다시 세속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차는 속세를 떠나는 문이 아니라, 속세를 더 맑게 살아가기 위한 작은 다리였다. 사천의 구름은 이미 흩어졌고, 정중사의 옛 자취도 시간 속에 닳아갔지만, 차를 들고 숨을 고르는 그 한순간의 고요는 지금 이 자리에서도 다시 피어날 수 있다. 찻잔 속에 비친 것은 찻빛이 아니라, 어쩌면 무상선사가 말하던 형상 없는 마음일지도 모른다.(3.3. 북경에서)

라석(羅石) 손병철(孫炳哲)
북경대학 미학ㆍ철학전공 철학박사/시인
물파공간화랑 서울ㆍ북경 관장 역임
《라석심물시》, 《손병철시전집》 등 9권 시집 펴냄
국제복희역학회 회장, 한국불한선차회 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