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교수 골프대회에는 약 40명(10팀) 정도가 참석한다. 어쩌다가 총장님이 고문 자격으로 교수 골프대회에 참석하면 그날은 매우 즐거운 날이 된다. 총장님은 매번 큼직한 부상을 기부하기 때문에 교수들은 총장님이 참석하기를 은근히 바랐다. 언젠가 총장님이 교수 골프대회에 참석했는데 전날 기분 좋은 일이 있었나 보다. 교수들의 그날 골프 비용 전부를 자기가 내겠다고 해서 교수들이 크게 손뼉을 친 적도 있었다.
우리나라 사립학교법에서는 사립대학의 소유가 세습되는 것을 인정하고 있다. 연세가 많으신 총장님의 아들은 S대학의 기획실장을 맡고 있는데, 말하자면 차기 권력이기 때문에 모든 교수가 그를 어려워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누가 기획실장과 한 팀이 되어 골프를 치느냐는 것은 교수들에게는 매우 궁금한 사항이 된다. 기획실장이 자기 팀으로 지명하는 사람은 그만큼 신임을 받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들리는 말에 따르면 기획실장은 항상 자기 팀에 타 교수를 지명하고 나머지 두 사람은 그때그때 바뀐다고 한다. 그러므로 타 교수는 기획실장의 절대적인 신임을 받고 있다고 모든 교수가 믿고 있었다. 타 교수는 기획실장과 함께 골프를 치면 나이는 비슷해도 극진히 상전으로 모신다고 한다. 타 교수는 높은 사람의 비위를 맞추는 방법을 잘 알고 있는, 다시 말하면 처세술에 능한 사람이었다.
타 교수는 고향이 전주라고 해서 K 교수는 동향인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런데 타 교수의 말씨가 전주 말씨가 아니어서 K 교수가 고향을 다시 물어보았다. 타 교수는 전주에서 태어났지만, 초등학교부터 서울에서 학교에 다녔다고 한다. 그 말을 듣고 보니, 그동안 타 교수는 서울 말씨에다가 서울깍쟁이 같은 행동이 가끔 보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라온 환경은 한 사람의 인격 형성에 큰 영향을 미친다고 볼 수 있다. 같은 자연환경에서 사는 사람들은 비슷한 기질을 형성할 가능성이 있다. 조선시대에 우리나라는 행정구역이 8도로 나뉘어져 있었다. 조선 건국 직후, 태조 이성계가 신하 정도전에게 팔도 사람들의 기질을 품평하라고 말했다. 정도전은 아래와 같이 답했다는 설화가 전해 내려온다.
경기도: 경중미인(鏡中美人) 거울 속의 미인처럼 단아하고 깔끔하다.
충청도: 청풍명월(淸風明月) 맑은 바람과 밝은 달처럼 결백하고 온건하다.
전라도: 풍전세류(風前細柳) 바람 앞의 가느다란 버들처럼 부드럽고 영리하다.
경상도: 송죽대절(松竹大節) 소나무와 대나무 같은 곧은 절개와 기개가 있다.
강원도: 암하노불(巖下老佛) 바위 아래의 늙은 부처처럼 어질고 인자하다.
황해도: 춘파투석(春波投石) 봄 물결에 돌을 던지는 듯 잔잔하다.
평안도: 맹호출림(猛虎出林) 숲에서 나온 호랑이처럼 용맹하고 사납다.
함경도: 이전투구(泥田鬪拘) 진흙탕에서 싸우는 개처럼 강인하고 끈질기다.
이성계는 정도전이 자신의 고향인 함경도를 이전투구라고 표현하자 불쾌해했다. 이에 정도전이 다시 석전경우(石田耕牛: 자갈밭을 가는 소)라고 치켜세워서 위기를 넘겼다고 한다. 이 이야기는 정사인 《조선왕조실록》에는 없고 민간에서 전해 내려오는 설화라고 알려져 있다.
K 교수와 미녀식당에 같이 간 두 사람이 음대 교수여서 그날은 주로 음악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마침, 다른 손님이 없어서 미스 K도 합석하여 이야기에 끼어들었다.
K 교수가 물었다.
“미녀 사장님은 어떤 음악을 좋아하세요?”
“아, 저는 ‘코다이 졸탄’이라고 헝가리 작곡가의 음악을 좋아합니다. 코다이는 헝가리의 민요를 수집하여 체계화했는데 리드미컬한 것이 특징이지요. 우리나라에서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코다이는 헝가리의 민족음악가로서 헝가리 국민의 영웅입니다.”
미스 K가 물었다.
“K 교수님은 어떤 음악을 좋아하세요?”
“저는 임동창의 곡들을 좋아합니다. 임동창이라고 ‘피아노의 귀신’이라는 별명을 가진 사람이지요. 작곡도 하고요. 원래는 피아노에서 시작하였지만, 요즘은 국악에 빠져 사는 음악가입니다.”
“이름은 들은 것 같아요.”
K 교수는 모처럼 발언 기회를 잡아 자기가 알고 있는 임동창에 관하여 이야기를 풀어 놓았다.
임동창은 어떤 사람일까? 빡빡머리에 소매 헤진 승복 비슷한 옷을 입고 열정적으로 미친 듯 피아노 치는 사람. 그에게 "예술이 무엇인가?"라고 물으면 “술자리에서 누가 술을 권하면 ‘예’하고 받아 마시는 술이 예술이란다.”라고 했단다. "예"하고 술을 받아 마시는 그 마음이 예술이라는 얘기다. 이 무슨 뚱딴지같은 선문답일까?
그의 이름 앞에는 많은 수식어들이 따라다닌다. 피아노의 귀신, 문화예술인, 작곡가, 퓨전 음악가 등등.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설명이 되지 않는다. 그는 그냥 임동창이라고 불러 달랜다. 그래서 그의 호는 ‘그냥’이다. 그냥 임동창! 그는 클래식, 국악, 가요, 팝, 퓨전, 넘나들기(크로스오버) 등 장르에 구애받지 않고 천의무봉으로 자유롭게 음악세계를 넘나든다. 누가 "당신의 장르가 뭐요?"라고 물으면 "그냥 임동창의 음악"이라고 답한다.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