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서 먼저 발견된 한국의 전통, 함경남도 검무

  • 등록 2026.03.13 11:3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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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경남도 검무의 예술적 값어치와 무형유산 전승의 의미를 톺아본다

[우리문화신문=이진경 문화평론가]  분단 이후 이북 지역의 전통무용은 오랫동안 연구와 기록의 공백 속에 놓여 있었다. 조선팔도(朝鮮八道)라는 문화적 지형 속에서 형성된 지역 전통은 오늘날에도 국악, 민요, 무용, 음식 등 다양한 전통문화의 지역성을 설명하는 중요한 기준으로 활용되고 있다. 그러나 남북 분단이라는 역사적 상황 속에서 북측 지역의 문화예술은 접근과 연구가 제한되었고, 그 결과 많은 전통이 충분한 기록과 분석 없이 단편적인 자료로만 남아 있는 경우가 많다.

 

조선시대 각 도에는 교방(敎坊)이 존재하였다. 교방은 고려 말기부터 형성된 제도로, 국가 또는 지방 관청에 속해 관기 교육과 궁중 정재를 준비하며 국가 의례와 외교 연향, 지방 행사에서 음악과 춤을 담당하였다. 교방은 단순한 공연 조직이 아니라 국가가 관리하던 공적 예술 교육기관이자 전문 예술 집단이었다.

 

이러한 교방 체계는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해체되었고, 이후 그 기능은 민간 중심의 권번(券番)으로 이어졌다. 권번은 예인 교육과 공연 활동을 담당하며 전통 예술 전승의 근대적 기반을 형성하였다. 이러한 교방과 권번의 흐름은 지역 춤과 음악이 제도적 틀 속에서 전승되던 구조를 보여주며, 오늘날 전통춤의 계보를 이해하는 중요한 역사적 배경이 된다.

 

분단 이후 이북 지역 전통무용의 보존과 전승에 대한 중요성이 인식되면서 현재 여러 방면에서 발굴과 조사, 심사를 통해 문화재 등재가 이루어지고 있다. 대표적으로 황해도 화관무, 평양검무, 평남 수건춤, 함북 선녀춤 등이 문화재로 등재되며 일정한 제도적 기반을 확보하였다. 이를 통해 교육과 공연을 통한 전승 구조가 유지되고, 전통춤으로서의 정체성 또한 점차 안정적으로 자리 잡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같은 이북 지역 춤 가운데에서도 함경남도 검무는 다른 양상을 보인다.

 

함경남도 검무는 시작부터 끝까지 검을 들고 춤을 추는 것이 특징이다. 이에 따라 칼을 휘두르는 동작이 다른 검무에 견줘 더욱 많고 다양하며, 동작의 폭 또한 넓고 크게 전개된다. 그 움직임에서는 한반도 최북단 지역 특유의 강건하고 거친 기세가 느껴질 정도다. 또한 오늘날 대부분의 검무가 여러 명이 함께 추는 단체무 형식으로 공연되는 것과 달리, 함경남도 검무는 독무 형식을 중심으로 전승됐다는 점에서도 특징적인 구조를 보인다. 이와 같은 형식적 특성은 검무 계열 춤이 지닌 표현 방식의 다양성과 미학적 가능성을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라 할 수 있다.

 

함경도 지역의 예인 문화는 함흥권번을 중심으로 형성되었다. 특히 일제강점기 함흥은 권번 활동이 활발했던 도시로, 이곳을 통해 지역 춤과 음악이 체계적으로 전승되었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을 고려할 때 이 춤은 행정구역상 ‘함경남도 검무’라 할 수 있으나, 전통춤의 지역적 범주에서는 ‘함경도 검무’로 통칭해도 무방하다.

 

이 춤의 전승 계보는 고(故) 장홍심에서 고(故) 한순옥, 그리고 양승미로 이어진다.

 

함경남도 함흥시 성천동이 고향인 고(故) 장홍심의 본명은 장월순이다. 그는 1925년 함흥권번에 입적하여 예인으로서의 수련을 시작하였다. 이후 1934년 조선권번에서 고(故) 한성준을 만나게 되었고, 1937년 창립된 조선음악무용연구회의 발기인으로 참여하며 전국 순회공연 활동을 펼쳤다. 해방 이후에는 함흥에서 음악동맹에 소속되어 함흥무용학교에서 무용 지도자로 활동하였다. 이 시기 함흥 순회공연을 온 고(故) 최승희를 만나 평양으로 옮기게 되었으며, 이후 음악동맹 정회원 자격과 1급 배우 무용수로 승인되었다. 이후 그는 최승희 춤 문하생들에게 검무를 지도하였다(노수철, 2008).

 

고(故) 최승희 문하생이었던 고(故) 한순옥은 이 시기 고(故) 장홍심의 지도를 받으며 함경남도 검무와 인연을 맺게 되었다. 이후 고(故) 한순옥은 남하하여 국립무용단 무용수로 활동하였으며 선화예술중고등학교에서 후학을 양성하였다.

 

고(故) 한순옥은 1977년 국립무용단의 지도위원으로 활동하면서 제자 양승미와 인연을 맺게 되었고, 이때 양승미는 스승 한순옥에게서 함경도 검무를 전수하게 되었다. 그는 제자 양승미와 함께 당시 국립무용단이 있던 국립극장 인근의 서울 신당동에 함경도 춤 보존회를 설립하여 함경남도 검무의 전승 기반을 마련하였다. ‘함경도춤보존회(한순옥류)’라는 이름은 지역성과 전승 계보를 동시에 드러내는 상징적 표현이었다.

 

양승미는 스승 한순옥으로부터 의상과 소품, 음악 자료에 이르기까지 함경남도 검무의 전승 요소를 직접 전수해 현재까지 그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특히 스승에게서 전해 받은 서도제(西道制)를 바탕으로 한 함경남도 검무 음악의 원형을 보존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이를 현대 공연 환경에 맞게 고음질화하여 무대화하고 현재 공연에서 실제 사용하고 있다. 이는 전통의 원형을 유지하면서도 현대 무대에서 재현하려는 중요한 시도로 볼 수 있다.

 

여기서 필자가 말하는 서도제(西道制)란, 본래 한반도의 서북 지역인 황해도와 평안도에서 전승되어 온 서도민요의 음악적 양식을 가리킨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그 범위가 확대되어 함경도까지 포함한 이북 지역 민요 전반을 아우르는 개념으로 사용되며, 국악에서는 이를 ‘서도토리’라고 부른다.

 

서도토리는 일반적으로 레–미–솔–라–도의 5음음계 레선법을 가지며 레에서 종지하고 라에서 요성이 나타날 때 아래로 눌러 소리를 내는 방식으로 강한 요성과 선율의 긴장을 형성하는 보편적 특징을 가진다.

 

임수정(2006)에 따르면, 검무의 반주 음악이 지역에 따라 서로 다른 토리와 선법으로 구분된다고 밝히고 있다. 진주검무와 경기검무는 주로 경기토리를 기반으로 하며 솔–라–도–레–미의 5음음계를 중심으로 한 선율 구조를 보인다. 반면 평양검무와 같은 서북 지역의 검무는 서도토리 계열의 음악 어법을 바탕으로 레–미–솔–라–도의 5음음계 구조를 가지며 레에서 종지하고 라에서 요성이 나타나는 특징을 보인다. 또한 호남검무는 남도토리 계열의 음악을 기반으로 미–솔–라–도–레의 5음음계를 중심으로 하며 굵고 깊은 시김새가 두드러지는 선율적 특징을 보인다고 하였다.

 

 

그러나 실제 연주 현장에서는 삼현육각 계열의 기악 반주가 공통적으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아 선율 구조에서 뚜렷한 차이가 드러나지 않는 경우도 적지 않다. 따라서 검무의 지역적 차이는 단순히 음악 선법의 차이만으로 설명되기보다는 장단 구성과 춤 동작의 표현 방식 속에서 이해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점에서 각 지역의 토리와 선법은 단순한 음악적 특징에 머무르지 않고 춤의 호흡과 신체 사용, 그리고 동작의 전개 방식에도 영향을 미치며 검무의 미학적 성격을 형성하는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경기토리 음악을 기반으로 하는 진주검무와 경기검무는 비교적 안정적인 선율 구조와 명확한 장단의 흐름 속에서 동작이 또렷하게 전개되는 특징을 보인다. 특히 검의 움직임과 회전 동작에서 리듬적 명료성과 기교적인 동작 구성이 강조되며, 상체의 움직임 역시 절제된 가운데 선이 분명하게 드러나는 춤의 성격을 형성한다.

 

이에 견줘 남도토리 음악을 기반으로 하는 호남검무는 남도춤 특유의 신체 사용이 두드러진다. 허리를 중심으로 한 유연한 상체 움직임과 깊은 무릎 굴림이 나타나며, 검을 크게 휘돌리거나 공간을 넓게 사용하는 동작을 통해 역동적이고 힘 있는 춤의 흐름을 형성한다. 또한 굵은 시김새와 강한 요성이 나타나는 음악적 특징과 맞물려 동작에서도 탄력적인 힘과 강한 에너지가 드러난다.

 

 

서도토리 음악을 기반으로 하는 평양검무와 함경남도 검무는 강한 요성과 긴장감 있는 선율 구조 속에서 더욱 힘 있는 동작이 전개되는 특징을 보인다. 특히 함경도 검무는 독무 형식으로 전승되면서 검의 사용이 더욱 적극적으로 나타나며, 상체와 팔의 움직임이 크게 확장되는 강건한 춤의 성격을 형성한다. 검을 크게 휘돌리거나 힘 있게 뻗는 동작이 자주 나타나며 음악의 긴장과 호흡에 맞추어 동작 또한 기세 있게 전개된다.

 

 

함경남도 검무의 음악 구조를 살펴보면 느린허튼타령–허튼타령–자진허튼타령의 순서로 진행되며 동일 계열의 장단이 점차 속도를 높이며 전개되는 특징을 보인다. 이는 동일한 음악적 틀 안에서 장단의 속도 변화에 따라 춤의 호흡과 동작의 긴장이 단계적으로 확장되는 구조라 할 수 있다. 또한 함경남도 검무 무보에 나타난 피리가락을 살펴보면 라에서 요성이 나타나고 레에서 종지하는 선율 구조를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선율 진행은 레–미–솔–라–도의 5음음계를 기반으로 하는 서도토리 선법의 특징과도 연결된다.

 

다만 현재 전해지는 무보에는 느린허튼타령 장단만 기록되어 있어 실제 공연에서 사용되는 허튼타령과 자진허튼타령의 음악 구조와 장단 전개 방식은 충분히 확인되지 않는다. 따라서 검무의 전체 장단 구조와 음악적 구성을 밝히기 위해서는 향후 추가적인 자료 조사와 음악 분석을 통한 보완 연구가 필요하다.

 

한편, 일부 연구에서는 중국 지역 조선족 사회에서 전해지는 함경남도 검무의 사례가 기록된 바 있다. 2007년 문화재 전승 현황 조사를 위해 중국을 방문한 과정에서 한 노인이 추는 춤이 발견되었고, 이를 사진 자료로 기록하여 책으로 펴낸 연구가 있다(송준호, 《함경도 검무》, 2023). 이 기록에 따르면 함경남도 검무는 중국에서 문화재 등재 논의의 대상으로 거론될 만큼 주목을 받았으나 결국 등재되지는 못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관련 자료를 보면 길림성 인민정부로부터 2007년 제1차 성급 무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바 있어 문화적 값어치를 인정받았음을 확인할 수 있다. 주요 전승 지역은 연변조선족자치주와 조선족 거주 지역으로 알려져 있으며, 연변가무단 소속 김향란(1972년생)은 조선족 칼춤의 제4대 전승인으로 알려져 있다.

 

그의 인터뷰에 따르면 칼춤은 철고리로 연결된 특수 제작 칼을 사용하여 동작에 따라 ‘챙챙’ 소리가 나도록 구성되며, 치마저고리 위에 쾌자를 걸치고 전립을 쓰는 전통 복식을 바탕으로 현대식으로 개량된 복식을 착용한다. 동작은 칼 휘두르기, 교차 휘두르기, 칼자루로 바닥 치기 등으로 이루어지며 여성적 유연함과 힘 있는 동작이 결합된 형태를 보인다. 이러한 특징은 함경남도 검무와 여러 측면에서 유사성을 보여준다(길림신문, 2026.1).

 

 

지리적으로 볼 때 함경도 지역과 연변 일대는 두만강을 경계로 인접해 있어 함경도 계열의 춤을 비롯한 다양한 문화가 연변 지역으로 전해졌을 가능성을 충분히 상정할 수 있다. 다만 현재 전해지는 조선족 칼춤은 전승 과정에서 변형이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

 

중국에서는 문화대혁명 시기 ‘사구 타파(破四旧)’ 운동이 전개되면서 전통문화 전반이 봉건적 잔재로 규정되어 크게 훼손되는 역사적 경험을 겪었다. 이러한 사회적 환경 속에서 전통 예술 역시 원형이 온전히 전승되기 어려웠으며, 공연화 과정 속에서 변형되거나 재구성되는 경우도 나타났다.

 

반면 함경남도 검무의 전승 계보는 남한에서 장홍심–한순옥–양승미로 이어지며 그 원형이 온전히 전승되고 있다. 동일한 계열의 춤이라 하더라도 전승 계보의 연속성에 있어 차이가 존재한다. 그러나 이러한 전승 계보가 분명히 존재함에도, 그 예술적 값어치와 역사적 의미는 아직 학계와 제도권에서 충분히 조명되지 못한 채 주변화되어 있는 것이 현실이다.

 

 

특히 중국 조선족 사회에서 함경남도 검무가 문화재로 등재되었다는 사실은 역설적으로 이 전통이 지닌 문화적 값어치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외부에서 먼저 발견되고 주목받은 전통을 우리는 과연 제대로 바라보고 있는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최근에는 중국에서 김치와 한복을 비롯해 조선족 사회에서 사용되는 한글의 기원에 대한 문화적 논쟁까지 이어지면서 한국 전통문화의 정체성과 기원 문제에 관한 관심이 더욱 커지고 있다. 이러한 상황은 전통문화의 역사적 흐름과 전승 계보를 더욱 분명하게 정리하고 학술적으로 정립할 필요성을 다시 한번 환기한다.

 

이제 필요한 것은 이미 이어지고 있는 전통의 존재를 단순히 기록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함경남도 검무가 지닌 예술적 값어치와 전승의 의미를 다시 살펴보는 일이다. 이를 바탕으로 학술 연구와 공연 실천, 그리고 제도적 보존 체계를 유기적으로 연결하여 교육과 공연을 통한 지속적인 전승 구조를 마련하는 것이 앞으로의 중요한 과제가 될 것이다.

 

이진경 문화평론가 jksoftmilk@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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