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주에 뿌리내린 성씨들 ➁ 파주염씨

  • 등록 2013.08.13 06:2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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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주문화통신 (22)

[그린경제=권효숙 기자]  파주 염씨(坡州廉氏)의 본관은 파주(坡州) 단일본이다. 문헌에는 파주 외에도 개성 ·광주 ·양주 ·충주 등 여러 본이 전하나 모두 파주 염씨의 분파 세거지(世居地)이다. 파주 염씨를 봉성 또는 서원(瑞原) 염씨라 했는데, 이는 모두 파주의 옛 별호이다.

시조는 고려 건국 때의 삼한공신으로 사도에 오른 염형명(廉邢明)이며, 중시조는 고려 공민왕, 우왕 등 다섯 임금을 섬기는 동안 문하시중을 지내고, 곡성부원군이 된 명재신 충경공 염제신(廉悌臣)이다.

   
▲ 2007년 5월 6일 강화사단 시향제

염제신에게는 고려 공민왕이 친히 그려 하사한 초상화가 있는데, 국립중앙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또 돌아가신 후 충경공 시호가 내려졌고, 왕명에 의하여 목은 이색이 찬하고 한수가 쓴 신도비가 경기도 장단군 묘소 앞에 세워졌다.

파주 염씨는 고려시대의 명문세도가로 신약(信若)은 명종 때의 명신으로 효자정문이 세워졌으며, 신약의 손자 승익(承益)은 충렬왕 때 크게 세도를 떨쳤고, 또 중시조 염제신의 아들 3형제 중 장남인 국보(國寶)가 예문관대제학을 거쳐 서성군(瑞城君)에, 차남 흥방(興邦)은 공민왕 6년 문과에 장원급제하여 좌대언을 지내고 성균관대사성을 거쳐 예문관대제학에 이르렀고, 막내인 정수(廷秀) 역시 문과에 급제, 우왕 대에 동지추밀직사사 ․ 우문관대제학에 올라, 모두 가문을 빛냈다.

   
▲ 충북 음성의 약물재 납골당

그러나 흥방이 당시 정권을 마음대로 휘두르던 이인임(李仁任)의 일파가 되어 문신들을 추방하고 권세를 업고 마음대로 행동하다가 최영(崔瑩) ·이성계(李成桂)에게 1388년 무진참화 때 형제 등 친인척 모두가 죽음을 당하는 멸족의 화를 입어 파주 염씨는 여러 곳으로 분산하여 겨우 씨족을 부지하였다.

파주 염씨의 중시조인 염제신(廉悌臣, 1304-1382)의 묘는 장단군 강남면 대곡인데, 이는 개성에서 생활한 결과다. 그의 5세(世)중에 장남 순량(順良)의 묘는 경상도 상주에, 둘째 순공(順恭)은 풍덕에 있다. 순공의 첫째는 보성에, 둘째는 나주에 있다.

   
▲ 인천광역시 강화군 선원면 냉정리. 지방문화재 제8호. 철종의 외숙인 염보길이 살았던 집이다.

염제신의 둘째 아들 흥방(興邦)은 여주로 가고, 흥방의 첫째아들은 묘 위치를 알 수 없으나 손자 때, 즉 4세(世)인 각(恪)이 임실로 내려가 거주를 시작한다.
파주 염씨는 이후 전라도 임실, 남원, 나주 등지에 세거하여 나주의 충경서원에 제향될 정도로 후손을 많이 두었다.

   
▲ 전남 나주의 충경서원

흥방의 둘째아들은 여주에 머물다가 그의 아들 대, 즉 4세 효달(孝達)이 연천 북면으로 간다. 이들은 모두 2세 흥방을 파시조로 하는 동정공파(東亭公派)다. 흥방의 6세손 수(壽)의 가계(家係)는 임실군 신평면에 자리잡고 살다가 10세손의 4남 흥서(興瑞)가 조선 중기에 임실에서 파주 교하 북면 가사리로 올라왔다. 그 시기는 대개 조선중기 무렵으로 짐작된다.
 

한편으로는 여주군 금사면에 거주하던 흥방의 손자 효달(孝達)도 연천군 북면 수회촌으로 올라와 자리잡았다가 14세(世) 의만(義萬, 1730-1801)이 적성 어유지리 봉화촌 마을로 입향했는데, 연천과 가까운 적성면 어유지리 쪽으로 들어와 거주하게 된 듯 하다.

파주 염씨는 조선시대에는 인물을 별로 배출하지 못하다가, 임진왜란 때 노량과 거제도대첩에서 염걸(傑).염서(瑞) 장군과, 염경(慶) 염홍립(弘立) 염세경 등이 의병을 일으켜 싸운 공로로 선무원종공신에 녹훈되었다.

   
▲ 염걸 장군 전승기적비

또한 옥천에서 의병을 모아 왜군을 물리친 염말경(末卿)과 이순신의 휘하에 있으면서 추풍령 전투에서 순직한 염언상(彦,祥)등이 가문의 명예를 되살렸다. 이후로 과거에 응시하고 벼슬길에 나설 수 있게 되었지만 조선 인조 때 장령(掌令)을 지낸 우혁(友赫) 외에는 인물을 배출하지 못했다.
 

일제 때에는 1905년 홍성에서 의병을 일으킨 석산과 의병운동을 전개한 염중희(重熙), 3.1운동 당시 논산에서 만세운동을 전개한 염승필(承弼), 광복군 대원으로 활약한 염온동(溫東), 염흥미(興味), 염재항(宰恒)이 가문의 명예를 이었다. 이밖에 백의사 총사령을 지낸 염응택(염동진), 염재보, 소설가 횡보 염상섭 등이 있다.
 

   
▲ 의병장 염재보 사적비


파주 염씨는 2000년도 통계청 조사에서는 전국에 16,628가구 53,539명이 살고 있으며, 파주시에는 64가구, 225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그러나 파평 염씨도 전국에 392가구 1,375명, 파주시에 13가구 53명이 있는걸로 나타났는데 파평이 파주와 같은 지역임을 고려할 때 같은 본관으로 봐야할 듯 하다. [그린경제/한국문화신문 얼레빗=권효숙 기자]

 

권효숙 기자 jeenin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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