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행복했던 결혼축가

  • 등록 2013.09.04 11:3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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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경제=김동규 음악칼럼니스트]  이태리와 우리나라에 귀국한 후까지 셀 수 없이 많은 결혼식 축가를 부르면서 해프닝도 참으로 많았던 것 같다.

 우리 풍속으로 함재비에 견주는 세레나데는 유럽에서 신랑이 신부에게 사랑을 고백하며 동네 사람들에게 신고식도 겸한 결혼 전야제인데 신랑이 노래를 못 부르면 돈을 주고 가수가 대신 부르는 경우도 많이 있었다. 아주 친한 이태리 동네 친구의 세레나데를 내가 대신 불렀던 날, 노래도 내가 불렀고 신부도 내 노래들 듣고 허락했으니 첫 날밤 잠자리는 신랑이 내게 양보해야 한다고 진한 농담을 하여 모인 사람들이 박장대소했던 기억이 난다.
 
 아베마리아 소동도 있었다. 나의 이태리 양아버지인 빈첸초의 딸 루치아가 결혼을 할 때였다. 슈베르트의 아베마리아를 라틴어로 불러주기로 오래전부터 약속했었는데 정작 동네 성당의 돈 아고스티노(Don Agostino) 신부님은 완고한 분이라 이 아베마리아가 세속음악으로 작곡된 것이라는 이유로 혼배미사에서 못 부르게 하는 것이었다. 여러 번 신부님을 설득하였으나 꽉 막히신 분이라 나도 은근히 아집이 생기기 시작했다. 나는 수긍하는 척했다가 당일에는 혼배미사 중에 기습으로 신랑신부가 원했던 라틴어 아베마리아를 부르고 미사가 끝나자마자 신부님이 제의를 갈아입는 사이에 도주하였다. 신부님도 성스러운 혼배미사 중이라 소란스럽게 막지는 못하였던 것이다.
 
 먹거리가 항상 고민이었던 총각 때는 결혼잔치가 참으로 반갑고 기다려졌었다. 대식가인 이태리 사람들은 우리나라에서 함 예물을 따지듯이 잔치에 몇 접시가 나왔느냐를 따진다. 일반적으로 전식부터 후식까지 열 접시는 보통이었고 최고로 스물한 접시까지 먹고 온 적도 있다. 오후 2시부터 다음 날 새벽까지... 먹다가 춤추다가, 노래하다 얘기하다, 다시 먹다가...
무엇보다도 신랑신부와 양가의 사돈들이 교대로 얼싸안고 춤추는 모습이 참으로 인상적이었다.
 
   
▲ 결혼식을 마치고 나오는 이태리 신랑신부 (듀오아임 부부의 친구)
 내가 결혼을 하고 나니 우리는 지역의 카나리아 부부로 유명해져서 결혼식 축가 의뢰 수가 많이 늘었다. 돈도 벌었지만 덕분에 지금까지도 연락하며 지내는 소중한 이태리 친구들이 생겼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연락이 끊기는 친구도 있어 궁금해하면 이혼했다는 소식도 상대적으로 많아져 안타까웠다.

 아주 황당했던 때도 있었으니 서울 관악구의 한 결혼식장에 1시간 전에 미리 도착하여 기다리다가 예식 시작 5분 전에 잠깐 목을 풀러 갔다가 돌아오니 결혼식이 이미 끝나버린 것이었다. 10분짜리 결혼식이었다. 얼마나 미안 황당했었던지.
 해가 가면서 결혼축가는 우리 부부에게 참으로 기쁘면서도 마음 한편으로는 은근한 걱정도 앞서는 잔치가 되기 시작했다. 우리 부부가 한 맘으로 축가를 부르면 신랑신부가 이혼하지 않고 잘 살아주어야 우리에게도 보람이 될 텐데. 또 우리 부부가 앞으로 잘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야 그들에게 축가를 청한 의미가 있을 것이라 생각하니 이 또한 부담이다.

 지금도 꾸준히 지속되는 결혼 축가는 결과적으로 우리 부부에게는 참으로 행복한 선물이다. 예식을 올리는 신랑신부와 한 마음이 되어 주례사를 들으면 우리도 다시 신혼이 된 것처럼 느껴져 우리 부부는 지금도 결혼식 축가를 부를 때면 서로의 손을 꼭 잡으며 덩달아 새로워진다.
 
 한편으로 결혼 25주년 은혼식 축가는 참으로 부담 없고 기껍고 행복한 결혼 축가다. 이태리에서 몇몇 부부는 그들이 결혼식을 올렸었던 성당을 찾아가거나 현재 살고 있는 동네 성당에서 가족들끼리 조촐하고 차분하게 미사를 드리며 중간에 은혼식 축가로 성가를 청하는 경우가 몇 번 있었다. 우리 부부에게는 너무나도 은혜로운 순간들이었다.

 아마도 가장 기억에 남을 금혼식 축가도 있었다. 수 년 전 소설가 송 원희 선생님 부부의 금혼식 축가는 오히려 우리 부부에게는 큰 영광이었다. 과연 우리 부부에게도 금혼식 날이 올 수 있을까? 그 나이쯤이면 부부가 사별을 하는 경우도 많기에 부러웠다. 또 그날 모인 가족과 친지들의 화목한 분위기는 사람이 세상을 살면서 어떻게 교류하고 소통하며 살아야 할지 잠시 상상해보는 배움의 자리였다.
 
 요즘도 잊을쯤이면 먼저 연락을 주시는 송 원희 선생님.
아내와 통화하시는 목소리는 여전히 낭랑 18세. 늙은 신혼이시란다. 아내에게는 송 선생님이 남편 뒷바라지와 세 자녀를 박사로 키워내시면서도 꾸준한 작가로 활동하고 계시니 그야말로 존경스러운 분일 것이다.

 앞으로 웰빙 실버시대에는 결혼 60주년의 회혼식 축가도 있으리라 생각하며 신랑신부가 은혼식, 금혼식까지 행복하게 살기를 바라며 요즘도 의미 있는 결혼 축가를 가족이 함께 부르며 다닌다.
 
   
▲ 가족이 함께 결혼축가를 부르고 있는 팝페라부부 듀오아임(김동규, 김구미)
 
<결혼축가>함께 가는 길 (시_ 이 상백 / 곡_ 김 동규)
1.
어머니의 간절한 기도가 없었다면
이 자리에 우리 설 수 있었을까
가족들의 간절한 기도가 없었다면
이 자리에 우리 설 수 있었을까

이제 함께 가는 길 두려움 없어
한때 네게 가는 길 놓치기도 했지만
이제 너는 나의 따뜻한 목도리, 편안한 신발 되어
예감보다 먼저 와 있는 사람아

2.
기쁘고 기쁜 날들이 있었지만
오늘만큼 기쁜 날이 또 있을까

선물로 태어나서 커 가는 너를 보며
우리 꿈을 풀기도 묶어 두기도 했지

오늘부터는 하나 되어
아침 햇살 가득한 강이 되거라
기쁘고 기쁜 날들이 있었지만
오늘만큼 기쁜 날이 또 있을까.
 
 
   
▲ 주세페 김동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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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동규 (예명_ 주세페 김)
다재다능한 엔터테이너(팝페라테너, 예술감독, 작곡가, 편곡가, 지휘자, 음악칼럼니스트)로 아내 김 구미(소프라노)와 함께 팝페라부부 '듀오아임'이라는 예명으로 공연활동을 하고 있다.
김동규 음악칼럼니스트 98aim@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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