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경제 = 정석현 기자]
안동독립운동기념관에서는 오는 2014년 2월 28일까지 안동독립운동가 어록전이 열린다 일제강점기 치열하게 펼쳤던 안동독립운동가들은 과연 어떤 말들을 남겼을까? 이제라도 안동독립운동가들의 가슴 절절한 외침을 들어보자. |
내가 일찍이 감히 의병장에 임명되어
나라의 원수를 통설(痛雪)하지 못했으니
부끄럽다
내가 죽더라도 명(銘을)쓸 경우
진실로 창의한 일에 대해
떠벌려서 확대시키지 말라
-아들 상규에세 남긴 유언-
▲ 권세연 의병장 어록 |
▲ 어록전시장 모습 |
*권세연(1836~1899) 의병장은 누구인가?
본관은 안동(安東). 호는 성대(星臺). 경상북도 봉화 출신으로 참봉을 지냈으며, 안동 병진의 정신적 지주 구실을 하였다. 1895년 명성황후시해사건과 단발령에 격분한 안동지역 의병들은 안동관찰부를 점령하고, 유지호(柳止浩)·김흥락(金興洛) 등 참모진은 그를 안동의 의병장으로 추대하였다.
이에 그는 격문을 발표하여, 각지의 의병부대와 긴밀한 연락을 취하고 민심을 크게 격려, 고무시켰다. 이 격문에는 침략자 일본에 대한 적개심과 거기에 부화뇌동하는 자에 대한 증오심이 설득력 있게 표현되어 있어, 의병규합에 큰 몫을 하였다.
또한, 이것이 계기가 되어 1896년에는 예안의 이만도(李晩燾), 영양의 조승기(趙承基), 문경의 이강년(李康秊)·유시연(柳時淵)·김도화(金道和)·김도현(金道鉉) 등 각지의 의병장들과도 긴밀한 유대관계를 맺을 수 있었다.
그러나 1월 28일 안동으로부터 도망쳤던 관찰사 김석중(金奭中)이 많은 관군을 끌고 공격하여 의병들이 패배하였다. 그는 최후까지 싸워서 한 몸을 바치고자 하였으나, 참모들의 간곡한 권고에 못이겨 피신하였다. 1983년에 건국포장, 1990년 애국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