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경제=김영조 기자] - 피리명인 최경만 선생의 추천을 받았는데 어떤 인연인가요?
“제가 군대 있을 때 유지숙 선생님의 공연에 간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최경만 선생님이 오셨고, 선임병들의 도움으로 인사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그때 선생님의 허락을 받고 서울로 짐을 싸가지고 와 월세 14만 원 짜리 반지하 살면서 선생님께 배우게 되었습니다. 그 뒤 2년 동안 선생님께 개인지도를 받았는데 교습비를 낸 적이 없습니다. 다만, 아버님께서 농사 지신 배, 쌀, 배즙 등을 보내주신 게 전부입니다.
나중에 선생님께 들었는데 차마 말을 못 꺼내겠더라고 하셨지요. 그렇게 선생님은 마음이 여리고 제자를 생각하는 마음이 정말 크신 분이었습니다. 저는 선생님을 만난 게 어쩌면 제 일생의 가장 큰 복일 것입니다. 하나하나 꼼꼼히 그것도 연주할 때 담아내는 감정까지도 세세히 가르쳐주셔서 제 피리는 모두 선생님으로 나왔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라 생각합니다.”
- 그럼 어떻게 피리를 만나게 되었나요?
“제 고향이 밀양인데 어렸을 때부터 꽹과리를 치시는 아버님을 따라다니면서 징을 치고 아주머니들께 칭찬도 받고 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그게 어쩌면 피리를 할 수 있는 바탕이 되었을 겁니다. 그런데 고등학교 2학년 때 음악선생님께서 ‘음대 갈 사람?’하고 물으셨습니다. 이때 저 혼자 손을 들었는데 선생님께서는 서양음악을 하기엔 좀 늦었다 하시며 국악을 해보지 않겠느냐고 권유하셨습니다. 그래서 영남대에 가게 된 것입니다.
제게는 최경만 선생님 다음으로 국악을 하도록 손을 잡아주신 박충환 음악선생님도 평생 잊지 못할 분입니다. 그리고 시골에서 어렵게 농사만 지으시면서도 제가 하고 싶은 것을 하도록 조용히 지지해주신 아버님이 계신 것도 제게 행운일 것입니다.”
- 피리를 해오면서 국악에 대해 특별히 느낀 생각이 있는가요?
“지금 젊은 국악인들은 피아노도 치고 서양 악보를 보면서 연주도 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배운 젊은 국악인들은 생각 없이 연주하는 사람을 많습니다. 그들은 박자를 정확하게 맞춰 연주는 하겠지만 느려졌다가도 빨라지고, 빠른 듯 하면서도 느린 그러면서 형언할 수 없는 매력이 뿜어 나오는 명인들을 도저히 따갈 수 없다는 생각입니다. 그래서 지금 명인 선생님을 닮은 진정한 차세대 명인은 어쩌면 안 나올지도 모릅니다.
다만 조금이라도 명인 선생님들을 따라가려면 단순히 악기만 배우면 안 되고 선생님들의 생활 그리고 철학까지도 닮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악가무를 함께 하려 했고 옛 사람처럼 생각하려 했던 선생님들의 방식까지도 따르려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생각입니다.”
- 국악 환경에 대해서 하고 싶은 말은?
“제가 정악피리 명인이신 곽태천 교수님께 민속악뿐만 아니라 정악피리도 하고 싶다고 말씀드렸더니 농현이 다른 두 가지를 모두 잘 할 수는 없다며 욕심을 부리지 말라고 타이르셨습니다. 그런데 지금 지방 국악은 두 가지를 요구하는 상황이어서 어려움이 많습니다. 가능하면 서울 국립국악원처럼 정악과 민속악을 분명히 구분해서 연주하도록 하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져봅니다.”
대담하면서 왜 최경만 명인이 추천했는가를 여실히 알 수 있었다. 김세현은 대충하는 모습은 없도록 하는 게 각오라면서 생활까지도 모든 분들께 인정받을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는 다짐을 했다. 마음까지도 다부진 그의 모습을 보면서 뒷날 차세대 명인을 보는 듯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