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호랑이', 호랑이표 시멘트 생산하다

2014.07.06 18:57:28

[새롭게 보는 한국경제 거목 정주영(1915~2001)] ⑨

[그린경제=김영조 기자] 한강인도교 공사로 6대 건설사에 등극한 정주영은 그것에 만족할 사나이가 아니었다. 공사를 해나가면서 장비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미군으로부터 장비를 사들인 큰 덕을 봤지만, 그에 못지않은 것은 시멘트라는 생각이 들었다. 건설공사에서 없어서는 안 되는 필수자재 시멘트는 1950년대 후반 무렵에 크게 부족한 실정이었다. 

1958년을 보면 약 56t의 시멘트가 필요했는데, 정작 우리나라에서 생산한 시멘트는 25t에 그쳤으며, 1959년에도 45t이 있어야 했지만 41t에 그쳤다. 부족한 시멘트는 다른 나라에서 들여와야 했지만, 수입 시멘트는 관세가 붙어 그만큼 가격도 높아져 공사원가도 덩달아 올라갈 수밖에 없었다. 

그뿐만 아니라 625전쟁이 끝난 뒤 본격적인 복구 작업이 진행되면서 시멘트 수요는 천정부지로 올라갔다. 전쟁 뒤여서 길을 건설하고, 다리를 놓고, 학교를 지어야만 했는데 시멘트가 없어 현장에선 일손을 멈추어야만 하는 일이 잦았다. 여기에 바로 정주영의 번득이는 아이디어가 빛을 발하게 된다. “시멘트가 모자라면 만들면 되지 않을까?” 자동차, 건설에 이어 시멘트 사업을 벌이려는 정주영의 야심찬 계획이 시작되던 순간이다.  

강원도나 충청도에는 석회석 산으로 이루어진 곳이 숱하게 많았다. 그런데도 시멘트가 부족하다는 것이 정주영에게는 이해가 되지 않았고, 급기야는 시멘트 공장을 세우기로 결심한다. 드디어 195810월 정주영은 8200만 톤의 석회석이 묻혀있는 충북 단양군 매포면 어상천리의 석회석 광산을 샀다. 정주영은 매년 20만 톤씩 시멘트를 생산하기로 계획하고, 정부에 공장신청서를 냈다.

그러나 당시 이승만 정부는 이런저런 이유를 대며 공장건설을 허가해주지 않았다. 관료들이 허가해주지 않는 까닭이란 것이 지금 나오는 시멘트만으로도 충분하다라는 것이었다. 기가 찰 일이었다. 그야말로 억지였고, 진짜 이유는 다른 곳에 있었다. 그것은 이미 시멘트 공장을 갖고 있는 업체들이 정부에 로비를 해 시멘트 공장 건설을 방해했던 것이다. 당시나 지금이나 정경유착은 나라를 말아먹고 있었다. 

그러나 거기서 주저앉을 정주영이 아니었다. 419 혁명 뒤, 정주영은 새로 들어선 정부에 공장을 세울 수 있도록 해 달라고 다시 신청서를 냈고 정부는 허가를 했지만, 곧바로 516 군사쿠데타로 공장 건설은 물거품이 되는 듯 했다. 그러나 오래가지 않았다. 516군사정부가 국토 건설에 모든 정책의 초점을 맞추면서 시멘트 수요는 크게 늘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모자라는 만큼 외국에서 수입한 시멘트 비율은 196112.9퍼센트였으나, 1963년에는 26.3퍼센트까지 올라갔다.

결국 군사정부는 196172t의 시멘트 생산능력을 1964년까지 172t으로 늘리기로 결정하고 쌍용양회 40t, 한일시멘트 40t, 현대건설 20t의 공장을 짓도록 허가해 주었다. 현대건설 직원들은 단양 시멘트 공장을 현대건설의 31운동이라고 할 정도로 신이 났다. 당시는 시멘트의 절대량이 부족했던 때라 단양시멘트는 시멘트의 자급이란 측면에서 우리 산업발전사에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정주영은 공장을 짓기 시작한 19627월부터 공사가 끝난 19646월까지 2년 동안 일요일이면 어김없이 청량리에서 중앙선 야간열차를 타고 현장으로 달려가곤 했다. 주말부부가 집을 찾아가듯 한 것이다. 산속에 있었던 현장 주변에는 호랑이가 나타나기도 했었다는데 공사현장에는 진짜 호랑이가 아닌 또 다른 호랑이가 있었다. 바로 정주영이 직원들에게 호랑이로 보였다는 것인데 그는 직원들이 모른다고 하거나, 게으른 모습을 보이면 어김없이 불호령을 내렸다.

   
▲ 인간 호랑이 정주영이 호랑이표 시멘트를 생산하다.(그림 이무성 한국화가)

이렇게 정주영이 현장을 담금질 한 덕에 단양 시멘트공장은 공기를 여섯 달이나 앞당겨 1964년 준공됐다. 단양시멘트공장은 그때까지 토건 공사에만 참여하던 현대가 플랜트 건설 분야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건설분야 참여 비중을 높일 수 있는 계기가 됐다. 더구나 이 공장은 당시 우리나라에서 가장 작은 규모였지만, 가장 높은 생산 실적을 기록했는데 단양시멘트공장의 시멘트 상표는 호랑이표였다. 인간 호랑이가 호랑이 시멘트를 만들었던 것이다. 

단양시멘트공장의 호랑이표 시멘트 생산이 순조로워지자 정주영은 또 다시 도전과 모험의 길로 들어섰다. 모험은 거대한 조직에 활력을 불어 넣어준다고 그는 생각했다. 그런 그가 이번에는 태국에 도전장을 냈다. 19659월 태국 파티니 나라티왓 고속도로 건설공사를 맡은 것이었다. 이 공사는 우리나라 건설업 사상 획기적인 전기를 마련한 공사였다. 그러나 국내도 아니고 기후와 풍속 그리고 말도 통하지 않는 외국 노동자를 쓰면서 겪어야 하는 시련은 국내에서 겪는 어려움보다 몇 배나 큰 것이었다. 거기에 더하여 태국현장에서 쓰던 기계는 대부분 국내에서 쓰던 재래식 기계였다. 생각 같아서는 최신식 기계를 투입하고 싶어도 사용법을 모르는 태국인 기능공들이 고장 내기 일쑤였다.

현대가 처음 해외에 진출한 분야였던 태국의 고속도로 공사는 막대한 손해를 감수해야 했다. 국내의 고령교 복구공사에 이은 또 하나의 시련을 맞보게 된다. 하지만 이러한 시공경험과 실적은 국내 고속도로 건설과 항만 준설 공사에 커다란 역할을 하게 되었으니 결코 손해만 있었던 것은 아니라고 그는 생각한다. 

1967년 현대는 소양강 다목적댐 공사를 맡게 된다. 이는 정부의 수자원종합개발 10개년 계획으로 시행되는 댐이었는데 정주영은 소양감댐을 설계도에 명시된 콘크리트댐이 아닌 사력댐으로 하자고 주장했다. 공사비의 일부는 대일 청구권 자금으로 하도록 돼있는 탓에 설계에서 기술용역까지 일본 교에이(共榮) 측이 맡고 있었다. 그러나 설계대로 시공한다면 모자라는 시멘트도 수입해 와야 하고, 기술 용역까지 막대한 자금이 다시 일본으로 고스란히 빠져나가는 것에 정주영은 동조할 수 없었다.

그래서 고민 끝에 그는 현장 주변에 널려 있어 쉽게 구할 수 있는 모래와 자갈을 이용하면 공사비를 크게 절약할 수 있음을 물론 일본으로 돈이 빠져나지 않도록 하는 방법이라는 데 확신을 가진 것이다. 그는 죽을 힘을 다해 댐의 설계변경을 요구했다. 물론 설계변경이 되면 손해를 볼 일본 측이 크게 반발한 것은 물론 한국의 주무관청에서도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그러나 건설부장관이 박 대통령에게 소양감댐을 보고하는 자리에서 정주영이 주장하는 사력댐에 대한 제안이 받아들여졌다. 이유는 간단했다. 박 대통령은 만일 콘크리트댐을 만들어 북한이 폭격을 한다면 완전히 파괴되어 버리지만 사력댐이라면 폭격을 받아도 웅덩이만 패이는 것이니 정주영의 주장대로 소양감댐을 사력댐으로 하자고 결론을 내렸다. 이리하여 소앵감댐은 처음 콘크리트 설계에서 사력댐으로 설계 변경되어 19674월에 착공, 197310월에 완공을 보았다. 생각할 수도 없는 설계도 변경을 거쳐 완공한 소양감댐을 바라보며 정주영은 남다른 감회에 젖었다. 

일본의 쟁쟁한 댐 설계자들, 그들의 콧대를 꺾고 정주영이 제안한 사력댐으로 완성한 소양강다목적댐은 현대건설의 예상대로 30%의 경비를 절감했다. 이는 정부의 최대 고민이었던 중소도시의 상수도 시설을 10군데나 할 수 있는 큰돈이었다. 만약 그때 정주영이 처음 설계대로 쉽게 콘크리트댐으로 갔다면 나라의 손해는 그만큼 컸을 것이다. 보통 사람이라면 설계도대로 했겠지만 정주영이 공사에 접근하는 방법은 이렇게 달랐다.

그는 현대라는 회사의 이익만이 아닌 그 일이 나라에 어떻게 이익을 줄 것인가를 먼저 고민했던 것이다. 그러나 돌아보면 무모한 제안이었다고 그는 빙그레 웃었다. 무모한 일이 어디 소양감댐 하나뿐이랴? 이어지는 경부고속도로 건설은 정주영의 도전과 모험심을 시험하는 엄청난 규모의 무대였다. -계속-

 

김영조 기자 pine9969@hanmail.net
Copyright @2013 우리문화신문 Corp. All rights reserved.


서울시 영등포구 영신로 32. 그린오피스텔 306호 | 대표전화 : 02-733-5027 | 팩스 : 02-733-5028 발행·편집인 : 김영조 | 언론사 등록번호 : 서울 아03923 등록일자 : 2015년 | 발행일자 : 2015년 10월 6일 | 사업자등록번호 : 163-10-00275 Copyright © 2013 우리문화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pine9969@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