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학교 출신 정주영 "사업계획서가 내 박사학위요"

2014.07.25 20:58:14

[새롭게 보는 한국경제 거목 정주영(1915~2001)] ⑫

[그린경제/얼레빗=김영조 기자] 사실 정주영이 조선소를 만들겠다고 한 데는 그럴만한 사연이 있었다. 1960년대 말 조선소를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긴 했지만 그때는 단순히 생각뿐이었다. 그런 그에게 1070년대 초 어느 날 박정희 대통령이 불렀다. 청와대로 들어간 정주영에게 박 대통령은 다짜고짜로 조선소를 만들라고 했다. 박 대통령은 곧 준공될 포항제철에서 생산되는 철의 소비처가 필요했던 것이다. 당시 김학렬 부총리가 정주영에게 조선소 건설을 타진했지만 거절한 상태였다. 

아니, 정 회장. 한 나라의 대통령과 경제 부총리가 적극 지원하겠다는데, 배짱도 없이 쉽게 포기해 버려요? 내 체면을 봐서라도 해봐야지. 어디 대통령 망신시키기로 작정이라도 한 거요?” 

박 대통령이 정주영에게 그렇게 노발대발하는 것을 보기는 처음이었다. 정주영의 등줄기에서는 식은땀이 흘렀다. 박 대통령이 담배를 권하자 피우지도 못하는 담배를 뻐끔뻐끔 피워대면서 고민하던 정주영은 조선소 건설을 결심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이왕 할 바에야 보란 듯이 해버리자고 생각했다. 대통령의 압력으로 마지못해 했다는 소리는 듣기 싫었다. 사실 조선소 건설은 삼성 이병철에게 거절당한 뒤 정주영에게 밀려 온 것이라는 얘기도 있었지만 그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래 한번 해보는 거야. 이 천하의 정주영이 못할 것도 없지. 배가 뭐 별거냐? 그까짓 철판을 구부려서 배 모양을 만들고 그 안에 배를 움직일 여러 가지 기계들을 집어넣으면 되지. 그러면 큰 덩치의 배라도 바다에 띄우고 동력으로 달릴 수 있는 것이지. 삼성은 못하지만 현대는 한다.” 

그러나 당장 필요한 건 돈이었다. 정주영이 일본과 미국에서 외면을 당하고 눈을 돌린 것은 영국이었다. 영국은행 바클레이즈 은행과 협상을 벌였으나 반응을 보일 리 만무했다. 돈을 빌리기 위해선 영국식 사업계획서와 추천서가 필요하다는 것을 모르고 무작정 덤빈 탓이었다. 그래서 영국 선박 컨설턴트 기업인 ‘A&P 애플도어에 사업계획서와 추천서를 의뢰했다. 하지만, 정주영에게는 조선소를 지을 울산 미포만의 소나무가 서 있는 황량한 모래사장을 찍은 흑백 사진이 전부였다. 

어떻게 바클레이즈 은행을 움직일 수 없습니까?” A&P 애플도어의 찰스 롱바톰 회장에게 정주영이 읍소하듯 말했지만 롱바톰 회장은 서류를 만들어줄 확신이 서지 않는다는 듯 말했다. “배를 사려는 기업도 나타나지 않고 한국의 상환능력과 잠재력도 아직은 믿을 수 없어서 사업계획서를 쓰는 것은 무리입니다.” 이 난감한 반응에 순간적으로 정주영 머릿속에는 주머니 속의 500원 짜리가 지폐가 떠올랐다. 그는 거북선이 디자인 된 500원 짜리 지폐를 탁자에 올려놓았다.  

이게 무엇인지 아시요? 이것은 우리나라에서 1500년대 만들어 일본 해군을 대파한 거북선이오. 당신네 영국의 조선 역사는 1800년대부터 시작된 것으로 압니다만 우리는 이보다 300년 먼저 이런 철갑선을 만들어 일본을 혼냈단 말이오. 산업화가 늦어지고 잠시 일본의 지배를 받은 탓에 그 능력이 멈춰있었을 뿐 우리의 잠재력은 고스란히 그대로 있소. 이런대도 믿을 수가 없단 말이오.” 

이런 순발력 있는 정주영의 말에 롱바톰 회장은 두 손을 들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현대건설이 고리원자력 발전소를 시공하고 있고 발전계통이나 정유공장 건설에 풍부한 경험도 있어 대형 조선소를 지어 큰 배를 만들 능력이 충분하다는 추천서를 바클레이즈 은행에 보내주었다. 우선 첫 관문을 통과한 것이었다. 며칠이 지나자 바클레이즈 은행의 해외 담당 부총재로부터 만나자는 연락이 왔다. 부총재는 만나자마자 대뜸 정주영에게 물었다. 

정 회장의 전공은 무엇입니까?”  

학력이라곤 소학교가 전부였던 정주영은 순간 아찔했다. 그러나 이런 질문에 위축될 정주영이 아니었다.  

우리가 제출한 사업 계획서를 보았습니까?” 

당연히 보았습니다. 그 계획서는 인정해야 할 만큼 훌륭했소.” 

그 사업계획서에 있는 내용이 바로 내 전공입니다. 사실 어제 나는 옥스퍼드대학에 그 사업계획서를 가지고 가 학위를 달라고 했더니 쭉 훑어보더니만 군소리 없이 경제학 박사학위를 주었소. 그래서 그 사업계획서는 내 박사학위 논문인 것이오.” 

   
▲ 그림 이무성 한국화가

정주영은 순간적으로 전날 관광하다가 옥스퍼드대 졸업식을 본 생각이 났고 그래서 옥스퍼드대학 박사학위를 받았다고 엉터리로 둘러댄 것이다. 전광석화 같은 정주영의 순발력이었다. 정주영은 자신이 학력은 짧지만 사업경험은 누구보다 많다고 구질구질하게 말하는 것은 오히려 일을 그르칠 수 있다고 생각했음은 물론 자존심도 상하는 일이었다. 그렇게 하기 보다는 오히려 배포를 드러내는 우스갯소리로 사로잡으려 했던 것이다. 좌중은 웃음바다가 되었고, 껄껄껄 웃던 부총재는 입을 열었다. 

옥스퍼드대 경영학박사 학위를 가진 사람도 그런 사업계획서는 못 만들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당신은 옥스퍼드대학 진짜 경제학 박사들보다 어쩌면 더 대단한 사람입니다. 아니 당신의 전공은 우스갯소리가 아닙니까? 우리 은행은 당신의 우스갯소리를 이 사업계획서에 첨부하여 수출보증국으로 보내겠습니다.” 

물론 정주영의 우스갯소리 한 마디가 바클레이즈 은행을 움직였을 리는 만무하다. 은행 쪽은 치밀한 사업계획서에 일단은 반한 것이고 이미 실무자들을 한국에 보내 현대가 건설한 화력 발전소, 비료 공장, 시멘트 공장 따위를 세밀하게 조사했다. 사업계획서와 사전조사 결과에 후한 점수를 준 다음 부총재는 마지막으로 최고경영자 정주영의 됨됨이를 한번 재보려고 했던 것이다. 두 번째 관문도 통과됐다. 하지만 정주영 앞에 두 관문보다도 더욱 통과하기 힘든 관문이 남아 있을 줄이야? 영국은행이 외국에 돈을 빌려주려면 영국 수출신용보증국(ECGD)의 보증을 받아야 했다. 그러나 수출신용보증국 총재는 배를 살 사람의 계약서를 갖고 와야 승인해 줄 수 있다고 했다.  

내가 선주라면 세계 굴지의 조선소가 즐비한데 지금 조선소도 없고 배를 만들어본 경험도 없는 현대에 주문을 하지 않겠소. 그렇게 배를 팔지 못하면 결국 돈을 빌려준 영국 은행도 이자는 물론 원금까지 받기가 어려워지지 않겠소? 그러니 배를 살 기업이 있다는 확실한 증명을 내놓지 않는 이상 차관을 승인할 수 없습니다.” 

바늘 꽂을 한 치의 땅도 없을 만큼 치밀한, 반박할 수 없는 논리에 정주영은 앞이 깜깜해 보였다. 어떤 설득이나 변명도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는 수출신용보증국의 논리에 오히려 정주영이 설득당해 조선소를 포기해야할지도 모를 위기에 몰렸다. 당시 한국은 지극히 가난한 나라였고 그런 가난한 나라에서 수십만 톤짜리 배를 만든다는 건, 불가능해 보였음은 물론, 또 그런 나라에서 배를 만든다고 그 어떤 멍청한 기업이 기존의 쟁쟁한 조선소들을 제치고 배를 사갈 것인가 말이다. 정주영은 자신이 가진 보잘 것 없는 울산 미포만의 황량한 바닷가 사진을 꺼내보며 중얼거렸다. 

사실 이 사진 한 장 보고 아직 조선소도 없는 아니 조선소 지을 땅도 확보해 놓지 못한 내게 배를 살 사람이 있겠나? 내가 조선소 짓고 배를 만드는 것이 미친 사람처럼 보일지도 모르는데 나처럼 정신 나간 선주를 어디선가 찾아야 하는 건 아닐까?” 

어렵게 조선소를 만들기 위한 2차 관문까지 통과했지만 어쩌면 용감하게 달려들었던 정주영은 치욕을 맛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제터널 공사를 어렵사리 해내고 경부고속도로를 완성시킨 천하의 정주영도 이때는 대략 난감할 뿐이었다.(계속)

 

김영조 기자 pine996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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