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화신문 = 김상아 음악칼럼니스트] 천체물리학의 태두(泰斗) 스티븐 호킹 박사의 이론에 따르면 우주는 빅뱅 이후 팽창을 계속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언젠가 그 팽창이 멈추는 시점이 오고 그 뒤엔 반대로 수축하며 따라서 시간도 역전하여 과거와 미래가 뒤바뀐다는 것이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우리도 언젠가는 이 순간으로 다시 올 것이고 우리가 두고 온 그리운 어린 시절로 돌아갈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상상을 해본다.
“젊어서는 꿈을 먹고살고 늙어서는 추억을 먹고 산다”는 말처럼 추억을 찾아 방황하는 나의 발길은 1970년대로 돌아가 ‘쇼’의 열기가 한창인 어느 극장 앞에 멈추었다.
TV 보급률이 낮던 그 시절 극장 쇼의 인기는 정말 대단했다. ‘쇼’가 있는 날은 온 동네가 술렁거렸고 특히 뒷골목 청년들은 마치 제가 장가라도 드는 양 얼굴이 발개져 들떠 있었다. 극장 쇼의 백미는 유명가수의 순서가 아니라 소위 ‘양아치 클럽’이라 불리는 극장 쇼 스타들의 무대였다. 무대에선 정장을 하는 게 통념이던 시절 청바지를 즐겨 입었던 정원, 트위스트김, 쟈니 리에게 붙여진 별명이었다. 그 가운데 쟈니리가 ‘뜨거운 안녕’을 흐느끼며 열창하는 모습은 가히 압권이었다.
또다시 말해주오 사랑하고 있다고
▲ 쟈니 리의 ‘뜨거운 안녕’ 음반 표지
별들이 다정히 손을 잡는 밤
기어이 가신다면 보내 드리리
아프게 마음 새긴 그 말 한마디
보내고 밤마다 울음이 나도
남자답게 말하리라 안녕이라고
뜨겁게 뜨겁게 안녕이라고
또다시 말해주오 사랑하고 있다고
기러기 다정히 구구 대는데
기어이 떠난다면 보내 드리리
너무도 깊이 맺힌 그날 밤 입술
긴긴날 그리워 몸부림 쳐도
남자답게 말하리라 안녕이라고
뜨겁게 뜨겁게 안녕이라고
‘뜨거운 안녕’은 1966년에 발표된 쟈니 리의 출세작이다.
이 노래가 발표되고 얼마 뒤 인천에서 어느 연인이 이룰 수 없는 사랑을 비관하여 동반자살을 하였는데 유서 대신 ‘뜨거운 안녕’ 가사를 적어놓고 숨을 거두어 세인들의 마음을 아프게 했고 이 노래는 더욱 유명세를 탔다. 당시로는 꿈의 수치인 35만장이라는 경이적인 판매고를 올렸다.
그 여세로 67년에 후속음반을 발표하였으나 ‘뜨거운 안녕’의 이미지가 너무 강하게 남아 그 벽을 넘지 못하고 말았다. 훗날 전인권이 불러 크게 히트한 ‘사노라면’의 오리지널 곡 ‘내일은 해가 뜬다’가 쟈니 리의 목소리로 그 음반에 수록되어 있다.
또 한 가지 재미있는 후일담은 차중락 최고의 히트곡인 ‘낙엽 따라 가버린 사랑’을 쟈니 리가 부르기로 예정되어 있었으나, 실연의 아픔을 겪고 있는 차중락에게 선뜻 양보하였다 한다. 그 역시 동병을 앓고 있었기에 상련을 느꼈을 것으로 짐작된다.
만주에서 태어나 6·25때 단신으로 월남하여 고아원을 전전하며 삶을 이었던 소년 이영길. 그 소년은 미국인 양아버지를 만나 미국에까지 가는 행운을 얻은 듯했으나 합법적인 입국이 아니어서 쫓겨 와야만 했고, 쟈니 리라는 가수가 되기까지 우리의 현대사와 궤를 같이하는 질곡의 생을 살아야만 했다.
그 잡초와 같은 끈질긴 생명력으로 고희를 훨씬 넘긴 지금도 그는 무대를 뜨겁게 달군다.
<한국방송디스크자키협회 감사, 전 한국교통방송·CBS DJ>