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마신랑, 내 인생 최고의 선물 / 홍명희

  • 등록 2017.09.17 12:3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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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화시인이 전하는 연변이야기 14

[우리문화신문=석화 시인]  신랑 없는 집은 휑뎅그렝한 게 텅 빈집 같다. 왜서인지 애들도 아빠만 없으면 완전 군대기율로 얌전해진다. 찰칵찰칵 시계소리가 고요한 집안의 적막을 깨뜨리고 가슴을 허비며 또렷이 들려온다. 집에 있을 때는 별로 못 느끼던 신랑의 빈구석이 그가 밖에만 나가면 이렇게 너무나도 크게 안겨온다. 나는 애들이 잠든 깊은 밤에 초조히 창가에 서서 애들 아빠가 또 어디선가 과음하지나 않는지 괜한 근심만 하고 있다.


세월이 참 빠르다. 어느덧 신랑이랑 같이 살아온 지도 거의 20년 세월이 된다. 신랑은 나한테 참으로 고맙고 귀인 같은 사람이다. 언제부터인가 나는 그 사람이 옆에 있어야만 반짝반짝 빛을 뿌릴 수 있는 존재가 되어 버렸다.

 

지금도 눈앞에 선히 떠오른다. 20년 전의 그 그림이, 가정형편이 어려워 고중 2학년에서 자퇴한 나는 인생의 갈림길에서 방황하던 어느 날 마음씨 좋은 이웃의 소개로 지금 시댁에서 하는 쇼핑가게에서 일하게 되었다. 여직 내가 살던 세상이랑 너무 다른 환경에서 나는 이 세상에서 돈을 이렇게 많이 벌수 있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다. 지금 생각하면 별로 큰 장사가 아니었지만 당시 돈 없어 대학시험도 못 치고 중학교를 중퇴한 나한테는 너무나 다른 큰 세상이었다.

 

어느 날부터인지 그때 주인집 아들이었던 지금의 신랑이랑 서로 사랑하게 되였고 오늘날 부부인연으로까지 되었다. 그렇지만 처음엔 시댁에서 결사반대를 하셨다. 그 난관을 어떻게 이겨내고 결혼했던지 지금 생각해도 아득하다. 그리 크지 않은 키에 별로 준수한 용모도 아니지만 나한테는 이 사람이 싫지 않게 다가왔다. 그때 신랑은 단순히 돈 잘 버는 집 아들이 아니라 왠지 모르게 그릇이 크다는 감을 안겨주었다.

 

사람 됨됨이나 쓰는 인품이나 장사하는 자세나 모두가 나이와는 너무나 다르게 점잖고 성숙되고 어른스러웠다. 신랑이 5살 연하인 데다가 당시 내 처지로 보면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홀어머니에 보따리 같은 동생 둘을 거들어야 하는 신세가 시댁식구들 보기에도 너무나 기가 막혔을 것이다. 그 기막힌 전쟁을 신랑은 끝내 이겨내고 결혼승낙을 받아왔다. 지금도 눈앞에 선하다. 결혼허락 받고 너무 좋아서 팡팡 뛰던 신랑의 찬란한 그 모습이...



시댁에는 결혼 허락하는 대신에 땡전 한 푼 안주고 너희들끼리 살라는 조건이셨다. 귀한 자식 엄하게 키우려는 어른들의 생존법이시라. 그 땡전 한 푼 주지 않은 덕분에 신랑은 어린 나이에도 가족을 먹여 살려야 된다는 책임감에 더 분발했던 것 같다. 그 덕분에 신랑의 결기가 오늘날의 든든한 밑거름이 되어서 사업은 승승장구로 잘 되어갔다. 가난하고 힘든 결혼생활이었지만 왠지 그 가난이 두렵지 않았다. 나이가 어린 신랑이지만 그렇듯 나한테는 늘 태산처럼 미덥고 포근한 느낌

을 주었다.

 

그 뒤로 십년 넘게 시댁 곁에서 호된 시집살이를 했지만 너무나도 잘해주는 따뜻한 신랑이 곁에 있었기에 그나마 알콩달콩 결혼생활이 행복하고 재미있었다. 그때는 왜 아침이면 그렇게 잠이 많은지 어쩌다 늦잠 잔 것이 들키는 날이면 시아버님 호된 꾸지람을 들어야만 하였다. 지금 생각하면 보약 같은 가르침인데 그때는 얼마나 불만불평이었던지 모른다.


친구들은 다들 내가 복 터진 녀자라고 한다. 요즘말로 최고 능력자인 년하신랑을 두고 또 그 신랑이 돈도 잘 벌어오고 자상하고 시간만 되면 집안일도 잘 도와주니깐 말이다. 얼마 전 내가 이 나이에 주책스레 글쓰기를 배우고 싶다고 하니 대뜸 최신 노트북까지 사주면서 적극 지지해주고 있다. 참말로 전생이란 게 있다면 내가 전생에 나라라도 구했나보다. 그 복을 지금 이생에서 받는 걸가?


언제부터인지 아침밥을 짓는 것도 신랑담당이 되었다. 원래 건강이 안 좋은 내가 고3인 아들을 두고 시름시름 앓다보니 아침5시 알람소리만 나면 신랑이 일어나서 나보고 근심 말고 자라고 하고는 당신이 직접 일어나서 애들에게 밥해 먹이고 학교 데려다 주고 하였다. 요즘은 내가 건강이 많이 좋아졌지만 애들이 그동안 아빠가 한 아침상에 길들여져서 여전히 아빠담당이 되고 있다. 그 사람은 애들한테 너무 정성스레 공을 들여 키운다. 나는 이러는 남편이 측은하면서도 너무나 존경스럽다.


주변을 돌아보면 한국바람, 대도시바람에 많은 집들이 가족끼리 갈라져서 사는 것을 볼 때마다 나는 우리 신랑이 얼마나 대견한지 모른다. 큰 장사는 아니지만 그래도 우리 네 식구가 갈라져 있지 않고 한집에서 지지고 볶으면서 애들을 부럼 없이 키울 수 있으니 말이다. 이 모든 것은 신랑 덕분이다.


신랑은 처가에서나 시댁에서나 나이와는 다르게 항상 항렬에서 좌상이다. 하는 처사마다가 감탄이 나오게 만드는 천부적인 재주라 할까. 성질이 칼날 같아서 아직도 늦게 들어오는 날이면 내 마음을 불안불안 하게 만들지만 그래도 때로는 태산처럼 무겁무겁고 때로는 봄날의 햇볕처럼 따뜻하고 때로는 아가처럼 귀엽고 때로는 속수무책으로 나를 불안하게 만드는 신랑을 나는 여태껏 거의 20년 동안 지칠 줄 모르고 한결 같이 사랑한다.


사람들은 일이 잘 풀리지 않으면 세상이 참 불공평하다고들 한다. 하지만 내가 살면서 터득한 세상은 그래도 따뜻하고 뿌린 만큼 거두게 되여 있는 따뜻한 세상이다. 어른들은 늘 착하게 살면 복이 저절로 굴러온다고들 하신다. 신랑한테는 공짜 돈 없는 대신 파내도파내도 마를 줄 모르는 돈줄기를 신께서 하사하셔서 발로 열심히 뛰기만 하면 돈이 굴러온다. 착한 신랑을 신께서 알아보셨나보다. 하기야 그 불같은 성질 빼고는 거의 ~~”하고 소탈하게 웃는 넓은 흉금을 가진 양반이니깐 돈복이 많은 가부다.

애들이 커갈수록 신랑에 대한 내 사랑은 더욱더 불어만 간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나에게 가족의 따뜻함과 사랑을 가장 많이 가르쳐준 사람, 이 세상에서 내가 낳은 보물단지들을 무상으로 제일 많이 사랑할 수 있는 사람, 가끔씩 혼자서 일보러 나가는 신랑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나는 속으로 속삭인다.

 

나의 꼬마신랑, 당신은 내 인생의 최고의 선물이야.

사랑해, 여보 나의 꼬마신랑!!!

 

석화 시인 shihu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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