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그리운 내 엄마 / 허향순

  • 등록 2017.10.21 10:5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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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화 시인이 전하는 연변이야기16

[우리문화신문=석화 시인]  5년 전, 아직 봄추위가 가시지 않은 5월의 어느 날, 그날도 나는 엄마를 모시고 목욕탕에 가기로 약속을 잡았다. 그때 엄마가 일흔 아홉이었지만 워낙 몸 관리를 잘한 덕에 퍽 젊어 보였다. 그날도 나는 엄마네 아파트 앞에 차를 대기시키고 엄마를 기다렸다. 이윽고 아파트에서 내려오신 엄마는 항상 앉던 앞좌석이 아니라 왠지 뒷좌석에 오르셨다.

 

"엄마, 오늘은 왜 뒤에 앉으세요?"

", 오늘은 여기가 편한 것 같다."

 

수다를 모르는 어머니인지라 더 묻지 않고 목욕탕으로 향했다. 목욕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엄마가 한 마디 하셨다.

 

"내일시간 되니?"

"무슨 일이 있어요?"

"래일 나와 함께 병원에 가볼래?"

 

엄마는 언제나 이야기를 장황하게 하지 않고 늘 요점만 추려서 얘기를 했다. 그러기에 엄마의 얘기면 꼭 리유가 있었다. 그래서 나는 래일의 스케줄을 고려할 사이도 없이 얼른 하고 대답했다. 하지만 대답을 해놓고 보니 어딘가 이상하게 느껴졌다.

 

"엄마 어디 아파?”

"응 감이 안 좋다."

"엄마 몹시 아픈 것 맞구나. 어디가 안 좋은 거요?”

 

내가 급히 다잡아 묻자 엄마는 감이 안 좋다는 얘기만 반복할 뿐 더 이상 입을 열지 않았다. 나는 엄마를 모시고 집으로 가는 길에 내내 불안했다. 그러면서도 설마 무슨 일이야 없겠지 하고 스스로 위안했다.

 

이튿날 병원에 가기로 약속한지라 약속시간에 맞춰 엄마가 사는 아파트 앞에 차를 대기시켰다. 엄마는 또 뒤 좌석에 앉으셨다. 얼마간 침묵이 흐른 뒤 엄마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엄마는 당신이 불치의 병에 걸렸을 수도 있으니 만약 검사결과가 좋지 않게 나오더라도 손녀가 대학시험을 마칠 때까지 비밀로 해 달라고 했다. 이제 한 달만 있으면 대학시험이라서 혹시 손녀의 대학시험에 영향을 끼칠까 걱정했다. 엄마의 성격을 알기에 나는 꼭 그렇게 하겠노라 약속했다.

 

어느덧 병원에 도착했다. 엄마는 CTMRI이며 혈액검사며 하나하나 해나갔다. 아니나 다를까 검사결과가 좋지 않았다. 의사가 나를 조용히 불러 엄마의 흉부에 암세포가 있다고 알려주었다. 나는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억장이 무너졌다. 눈물이 마구 쏟아졌지만 엄마가 밖에서 기다리기에 꾹 참고 표정관리를 했다. 나는 의사선생님의 분부대로 엄마에게 폐에 염증이 있으니 소염치료를 하면 괜찮다고 태연하게 말했다. 그러나 어찌 엄마를 속일 수 있겠는가? 엄마는 나의 얼굴에서 모든 걸 읽었다. 그렇지만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아니하고 도리어 홀가분하게 미소를 지으셨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엄마는 당신의 상황을 다른 가족들한테 절대로 알려서는 안 된다고 재삼 당부하는 것이었다. 엄마는 당신의 분신 같은 손녀가 대학시험을 보는데 걸림돌이 될까 걱정되셨던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큰 사건을 동생들한테 알리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큰마음을 먹고 여동생과 남동생에게 전화를 하여 퇴근길에 만나자고 했다. 이윽고 두 동생이 나의 시선에 들어왔다. 동생들은 석연치 않는 나의 얼굴에서 뭔가를 읽고는 숨을 죽였다. 나는 엄마의 진단결과를 낱낱이 알려주었다. 동생들은 조금은 짐작은 했는데 설마하고 생각했을 뿐 이 정도로 상황이 좋지않은 줄을 몰랐다면서 마구 눈물을 쏟았다.

 

한참 후 나는 동생들에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엄마의 신변에서 엄마를 최대한 즐겁게 해드리는 동시에 북경과 천진에 있는 큰 병원에 수소문하여 약을 구해오는 것이라고 헸다. 우리는 엄마가 기적적으로 완치될 수 있는 약이 있기를 바랐다. 우리 삼 남매 셋은 엄마네 집으로 들어갔다. 남동생은 얼굴에 웃음을 활짝 띠고 이렇게 말했다.

 

"엄마 손녀가보고 싶었지? 오늘은 허결이 두 번째 시험을 쳤으니 좀 숨을 돌리게 하고 우리는 엄마랑 함께 여기에서 자려고 하는데 어떻소?”

"2차 시험 잘 쳤다고? 우리 손녀가 컨디션이 괜찮냐?"

 

엄마는 태연하게 동생의 말을 받았다. 온 가족이 조카의 대학입시를 앞두고 근심 속에서 어머니의 병세가 더 악화될까 전전긍긍했다. 할머니의 병세를 모르기에 조카아이는 좋은 컨디션으로 시험을 잘쳐 597점이라는 높은 성적으로 북경항천항공학원에 붙었다. 엄마는 기뻐 눈물을 훔쳤다. 그 눈물 속에는 오늘까지 용케도 버텨온 엄마의 내공이 들어 있음을 우리들은 안다.

 

우리 엄마는 하루 세끼를 식구들한테 밥을 해 먹이고 옷을 빨아 입히기만 하는 그런 평범한 엄마가 아니라 자식들의 일거수일투족에서 바른 근성과 내 안의 장점들을 발휘시키도록 인도하는 스승 같은 지혜로운 엄마였다. 엄마는 폐암이라는 사형선고를 받고 돌아가시는 그날까지도 자신의 병을 입에 올리지 않았다. 엄마는 가족을 품어주노라 당신의 고통을 소리 없이 삭히셨다. 그러는 엄마를 보는 우리의 가슴 또한 미어지게 아팠다. 엄마는 뭐가 그리 급하셨는지 손녀가 입학통지서를 받은 후 얼마 안 되어 서둘러 하늘나라로 떠나가셨던 것이다.

 

엄마, 그리운 내 엄마. 보고 싶어요.

 

석화 시인 shihu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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