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마을 전봇대사건 / 전옥선

  • 등록 2018.01.28 11:0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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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화 시인이 전하는 연변이야기 23

[우리문화신문=석화 시인]  오늘 오래 만에 소꿉친구 해숙이를 만났다 40대 중반을 넘어서도 한 미모하는 예쁜 친구와 함께 커피숍에서 이야기 보따리를 푸노라니 우리는 30년 세월이 지나도 미스터리로 남은 전봇대사건이 또 화두에 올라 이리저리 추측을 하면서 웃기도 하고 시무룩해지기도 했다 지금도 그때 일을 생각하면 머리가 갸우뚱해지면서 서글픈 웃음이 나간다.



해숙이는 우리 마을 십여 명되는 여자애들 가운데서 제일 이뻤다. 하야말쑥한 피부에 그 세월에 염색이란 것도 없었는데 특이하게도 약간 파도치는 금발의 머리에다 크고 까만 오목눈에 상큼한 콧날, 작은 입술을 가진 인형같은 여자애였다 우리가 초중을 다닐 때니 열댓 살이라 하겠다. 버들방천에서 우리 마을 여자애들이 엇바꾸어 보초를 서가며 목욕을 하다가 해숙이 피부가 너무 고와서 황홀하게 바라보며 부러워했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예쁜데다 성격도 부드럽고 유순하여 애들한테 인기도 있었다. 해숙이가 이렇게 이쁜 건 자기 엄마를 똑빼 닮아서이다. 해숙이 엄마는 농촌에서 사는 여자치고는 너무 미인이다. 우리 엄마들의 파마머리는 항상 꼬실꼬실하였지만 해숙이엄마는 굽실굽실 파도치는 파마머리를 어깨까지 곱게 드리우고 삔으로 량옆을 이쁘게 다듬어 놓아 하얀 피부를 받쳐주는데 지금 생각해도 참 지적이고 우아해 보였다.




옷은 항상 정결하고 다른 엄마들이 입지 않는 색다른 옷을 입었다. 해숙이 엄마가 입은 꽃적삼이 너무 이뻐서 희금이 엄마도 같은걸 사 입었다가 엄마들이 모여서 어찌나 놀려주는지 희금이 엄마는 다시 입지 못하였다.

한번은 내가 해숙이를 보고 너네엄마는 아침에 일어나면 거울부터 보겠다야!” 그랬더니 맞어! 우리 엄마는 일어나자 거울 보며 머리부터 다듬는다!” 했다. “우리 엄마는 일어나자 부엌부터 가는데내가 이렇게 말하자 희금이가 우리엄마는 일어나자 변소칸부터 가는데!”라고 말해서 우리는 배를 끌어안고 한바탕 웃어댔다.


학교를 가고오고 하려면 십여 리를 자전거 타고 다녀야 하는 우리 농촌애들은 언제나 함께 다녔다. 어느 날 마을에 거의 도착할 즈음 우리는 심상치 않은 느낌에 자전거페달을 힘껏 밟았다. 마을사람들 남녀로소 모두 나와서 난리가 났다. 해숙이 엄마의 울음소리가 귀청을 때렸다.



석탄 실으러 갔던 해숙이 아버지가 자동차 뒷바구니(적재함)에 오르다가 운전수가 다 오르기를 확인하지 않고 액셀을 딛는 바람에 자동차에서 떨어지면서 척추와 머리를 상해 원에 실려갔단다. 공사병원에서 빨리 현성병원에 옮기라 하는데 돈이 없어서 해숙이 엄마가 저렇게 대성통곡 한단다. 마른벼락이 하늘에서 뚝 떨어졌다. 해숙이도 엄마를 붙들고 슬피 운다. 다 못사는 세월이지만 그래도 마을사람들이 사람부터 구해야 한다며 너나없이 나서서 도와주기 시작했다.

둬달이 지났지만 해숙이 아버지는 병원에서 돌아오지 않았고 해숙이 엄마도 병간호하느라 마을에 나타나지 않았다. 그즈음 마을에서 이상한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성희아버지가 현성에 갔다가 해숙이 엄마를 보았는데 머리를 더 희한하게 하고 다니더란다. 파마머리를 살려 척 얹고 다니는데 마침 그때 유행하는 조선영화 이름없는 영웅에서 조선특무역을 맡은 순희란 배우처럼 정말 멋있더란다. 옷도 무릎까지 덮는 따이를 입고 지금말로 하면 코트를 입었는데 너무 근사해서 알아보지 못할 뻔했단다.




성희 아버지가 성희 어머니한테 어떻게 전달했는지 어쨌든 우리 마을에서는 간호하러 시내에 간 해숙이 엄마가 시내여자들보다 더 시내여자가 되였다고 난리가 났다. 어떻게 모은 돈을 내주었는데 그 돈으로 멋을 피우느냐며 이제 오면 머리 끄집어 당겨서라도 돈을 받아내겠다며 동네엄마들이 씩씩거린다. 우리 아이들도 어리벙벙해서 아버지가 병원에 입원했으면 세수도 못 하고 머리도 삼검불이 되여 가련한 상으로 학교에 다녀야 이치에 맞는다고 생각되어 이쁜 해숙이가 공연히 밉살스러웠다.




그렇게 또 한 달이지나 해숙이 아버지 어머니가 고향에 돌아온다는 전갈이 왔다. 학교에 온 해숙이가 오랜만에 웃음꽃이 활짝 피어 좋아서 어쩔 줄 모른다. 바야흐로 가을걷이가 닥쳐오는 9월의 하늘은 높고 푸르다. 길 량옆에 여물어가는 벼이삭들이 가을바람에 살래살래 춤을 추고 드문드문 피어있는 코스모스들이 우리들의 하교길을 재촉한다.




앉음뱅이 된다느니 뭐니 하면서 모두 혀를 끌끌 차던 해숙이 아버지가 그나마 걸어서 온다니 모두 명절 맞는 분위기다. 마을의 보초군 인양 들판의 군데군데 서있는 전봇대들이 어서 빨리 오라 우리를 부른다. 우리가 서로 뒤질세라 마을 어구에 들어서는 순간 희금의 새된 소리가 들렸다.

! 저 전봇대에 뭐라 썼니?”

해숙이 엄마 바람둥이!”




우리는 급기야 두 눈이 둥그래 해숙이와 전봇대를 번갈아 보았다. 분필글씨로 우리 아이들 키보다 좀 높은 곳에 큼직하게 해숙이 엄마 바람둥이!”라고 써놓았다. 80년대 중기 바람둥이는 제일 나쁜 사람의 명칭이다. 더러운 오물 같은 존재이기에 곁에 얼씬해서도 안 된다. 우리 마을에 바람둥이가 있으면 마을 전체가 치욕이고 수치다. 그런데 우리 마을에서 제일 이쁜 해숙이 엄마가 해숙이 아버지 병간호 석달 만에 바람둥이가 되여서 돌아온다니 너무 황당한 일이다.




얼떨떨해 서있던 해숙이가 원래 하얀 얼굴이 새파랗게 변해진다. 자전거를 그대로 확 던지고 전봇대에 매달려 글을 지우려 한다. 팔소매로 막 지웠다 잘 지워지지 않는다. 해숙이가 울먹울먹해서 맨손으로 막 비빈다. 그래도 잘 지워지지 않는다. 저 높은 데는 풀쩍풀쩍 뛰면서 지우려 해도 잘 닿지 않는다. 급기야 해숙이가 울음이 터졌다. 엉엉 우는 해숙이가 정말 불쌍하다. 희금이 자전거를 전봇대에 붙여놓고 나와 성희가 자전거 붙들고 희금이와 해숙이가 자전거우에 올라섰다.








자전거안장에 걸레가 있는 것이 불시에 생각나서 내가 몸을 돌리는 바람에 해숙이가 새된 소리를 지르며 자전거에서 허망(어이없고 허무함) 떨어졌다. 옷에 흙이 게발려졌고 (지저분하게 발라졌고) 손에도 흙이 가득 묻었다. 넘어지면서 머리핀도 어느새 풀렸는지 머리가 다 흩어졌다. 나를 원망할 새도 아프다고 징징할 새도 없다. 그대로 흙을 한 움큼 쥐고 자전거 우에 올라서 막 비빈다. 빨갛게 상기되고 흙과 눈물이 게발린 해숙이 얼굴을 바라보노라니 우리의 가슴도 먹먹하면서 눈물이 난다.




해숙아, 괜찮아! 이렇게 지우면 되잖아!”

마음 약한 희금이가 어느새 같이 울고 있다.

어떤 나쁜 자식이야! 붙잡기만 하면~”




나도 어금니를 물고 눈물을 삼켰다. 우리들이 합심해서 겨우 다 지우고 마을로 들어가는데 또 다른 전봇대에 해숙이 엄마 바람둥이!”라고 표어처럼 번듯하게 쓰여 있다. 해숙이는 악에 받쳐 ~”소리치더니 그 자리에 폴싹 물앉으며 또다시 엉엉 울음보를 터뜨렸다. 우리는 다시 전봇대에 매달려 지우기 시작하였고 온 마을의 전봇대를 돌아다니며 다 지웠을 때 해숙이는 목이 쉬고 갸냘픈 몸은 휘청거리고 있었다. 성희의 부축을 받으며 집으로 들어가는 해숙이를 멀거니 바라보다가 우리들도 무거운 발걸음으로 집으로 들어갔다.




해숙이 이모가 침대 옆에서 쪼그리고 자는 언니를 덮으라고 준 코트 때문에, 불편한 병원생활에 머리를 다듬지 못하여 얹어서 편하게 하고 다닌 것 때문에 마을사람들의 모든 비난을 받으면서도 꿋꿋하게 남편을 시중하고 아이들을 키워내신 해숙이 엄마는 참으로 대단한 분이시다.



이젠 70이 넘으셨어도 의연히 머리를 곱게 다듬으시고 연지곤지 바르시고 한국나들이까지 하면서 인생의 황혼을 즐기신다. 고생 끝에 락이라고 해숙이 엄마는 부츠가 너무 많아서 때론 해숙이가 엄마 걸 가만히 신고 나와도 모르신단다. 할머니라 부르는 걸 제일 질색한다며 오늘도 엄마 흉을 보는 해숙이는 멋쟁이 엄마가 있는 것으로 하여 너무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세월 속에 잊혀져간 우리 마을의 전봇대사건! 그래도 때론 이렇게 한 두 번씩 추억의 갈피 속에서 꺼내어 되새겨보노라면 그때 그 시절에 함께 울고 웃던 이들이 그리워지면서 어느새 내 마음은 고향의 들판에 가서 이리저리 뒹굴고 있다.





 

석화 시인 shihu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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