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분여를 재미있게 시청을 하다가 화면이 바뀌었고 나는 깜짝 놀라 내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연변 투도온면이 한국 프로그램에 소개되고 있는 것이었다. 진행자가 맛있게 먹는 모습에 많은 시청자들의 입에는 침이 고였고 나 또한 예외는 아니었다. 그 맛을 알기에 더욱더 그리웠다. 그러나 나 또한 조금은 의문을 가지고 있었다. 과연 투도온면이 “온전한” 우리의 음식일까?
“아, 역시 고수(香菜)가 듬뿍 들어가 있네요. 허허.” 진행자는 요리전문가로 고수(香菜)에 대한 거부감은 없는 듯 했다. 그는 맛있게 젓가락질을 하며 국수를 마시듯 먹고 있었다. 가운데 자막으로 음식에 대한 소개가 참 인상 깊었다.
“이 지역 조선족 동포, 한족 고객 모두에게 인기 만점인 연변 특유의 입맛을 돋우는 구수한 국수.” 이렇게 친절하게 설명하는 진행자의 해설… 씹는 맛이 일품인 밀가루 면발에 시원한 소고기육수가 풍미를 살리고 살포시 얹어진 소고기 두 점은 정을 나누기에는 충분하고 송송 썰어놓은 파는 화룡점정이었다. 물론 국수 안에 넣은 매운 다진 양념 양념과 국수 위에 살포시 놓이는 고수(香菜)는 전통 우리음식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연변이라는 지역에 조선족들이 많이 살고 있지만 조선족들만 사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아픈 역사를 등에 짊어지고 자신의 고향을 떠나 중국 동북에 자리를 잡은 우리 선조들의 대를 이어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어쩌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중국 땅에서 온전한 “우리”의 것만을 고집할 수는 없는 아픈 현실을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내가 고향에서 학교에 입학할 때 쯤이었다. 집안에서는 며칠 동안 이어진 논쟁은 끝이 날줄 몰랐다. 학교 진학문제로 부모님이 갈등이 있었다. 나를 조선족 학교에 보낼 것인가, 한족학교에 보낼 것인가. 중국에서 발전하려면 한족학교에 가는 것이 더 좋은 선택이고, 그렇다고 한족학교에 보내려니 민족정체성을 잃어갈까 두렵고… 이는 나뿐만이 아니라 수많은 아이들과 그들의 부모님들이 맞닥뜨리는 고민이다.
나는 결국 조선족학교로 진학을 했지만 내 친구 가운데 몇몇 아이들은 한족학교에 진학을 했다. 그들은 대부분의 언어표달(表達, 의사나 감정 따위를 표현하여 전달함)을 한어로 한다. 그러나 그들이 가지고 있는 생각, 그들이 자기 민족에 대한 자부심, 긍지감은 사실 조선족학교 아이들과 크게 차이가 없다.
그들은 여름이면 시원한 냉면이 먹고 싶다며 한족 친구들과 냉면집으로 향하고 추운 겨울이면 된장국에 밥 말아 먹는 것이 최고라며 또 자신의 친구들에게 된장국을 소개한다. 그렇게 한족친구들에게 점차 우리의 음식이 알려지다 보니 하나 둘씩 그들의 입맛에 맞는 음식들이 생겨난 것 같다. 분명한 것은 그들의 입맛에 맞추려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은 사람들에게 “우리”를 알리려는 취지였을 것이다.
대표적으로 보양식으로 많이 알려진 소탕에 고수(香菜)를 넣고 먹는 것은 선대들이 중국으로 이주한 다음 생겨난 풍습이다. 중국인들, 특히 동북에 거주하던 사람들은 음식에 진한 향이 나는 것을 즐겨 찾았다고 한다. 어떤 이들은 그것이 우리의 본 모습을 잃어가는 것이라고 부정적인 시선으로 바라볼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우리의 것만을 계속 고집한다면 어쩌면 그것이 우리와 더불어 살아가는 다른 이들에게 이질감으로 느껴질 것이고 점점 더 우리 자신을 스스로 고립시킬, 불 보듯 뻔한 일이다. “고수(香菜)”를 소탕에 넣어 더 많은 이방인들에게 우리의 음식을 알리고 그들과 더불어 살아가면서도 우리의 정체성을 잃지 않는 것, 그것이 “우리”가 더 널리 알려질 수 있는 계기가 아닐까?
요즘 따라 많은 조선족들이 다른 민족과 결혼을 한다. 부모님세대들은 그것이 반갑지만은 않을 것이다. 우리만의 온전함을 잃어버리니까. 그러나 부모님들 또한 조금은 열린 생각으로 이 문제를 받아들일 필요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조선족들끼리 결혼을 해서 대대손손 살아감으로서 우리의 “온전함”을 지킬 수는 있겠지만 그럴수록 우리는 더욱더 폐쇄적이고 우리들이 만들어놓은 틀 안에만 갇혀있게 된다는 생각을 해보지 않을수 없다.
어릴 적 할아버지 할머니께서 농담 삼아 한 얘기가 내 뇌리를 스친다. “넌 무조건 조선족이랑 결혼을 해야 돼. 남의 씨를 받을 필요는 절대 없어.” 그 말의 깊은 뜻을 알기에는 나는 아직도 너무 어리지만 적어도 그 말이 꼭 맞는다고 생각되지는 않는다. 어떤 이와 결혼을 하건, 어떤 환경에서 살아가건, 자신의 정체성, 자신의 뿌리를 잃지 않고, 많은 이들에게 조금은 생소할 “우리”를 정확히, 더 널리 알리는 것이 더 큰 의미가 있지 않을까?
중학교를 졸업하고 미국으로 가서 공부를 하기로 결정을 하면서 나는 적지 않은 고민을 했다. 낯선 환경에서 다른 언어로 생활을 해나가야 한다는 막연함과 그것으로 인해 내 정체성을 점점 잃어갈 수도 있겠다는 두려움이 공포로 다가왔다. 그러나 조금 더 넒은 세상에서 더 다양한 것을 배우면서 또 그들에게 조금은 생소한, “우리”를 알리는 것 또한 어쩌면 주어진 환경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라 생각했다.
순탄치 많은 않은 미국생활을 하면서 나는 내 언어를 사용할 기회가 점점 줄어들었다. 그러나 그럴수록 내 민족정체성은 점점 더 또렷해졌다. 미국인 친구들과 내가 자라온 고향에 대한 얘기를 할 때면 머리속 사전을 탈탈 털어 한참을 설명한다. 그들에게는 그저 호기심조차 가질 이유 없는 그런 하찮은 존재이겠지만 그것을 설명하는 내게는 말라가는 내 혓바닥에 물 한 모금 넘겨줄 시간조차 아까운 중요한 일이다.
비록 내가 그들과 소통하는 그 언어는 내 언어가 아니지만 그들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는 자랑스런 중국의 소수민족, “조선족”이다. 마치 투도온면이 한국 매체를 통해 더 많은 사람들에게 우리의 아픈 력사와 민족정신을 알리듯이 나 또한 친구들에게 내 민족의 력사와 존재를 알리고 있다. “고수(香菜)”라는 향신료가 한족들에게 친근감을 표현하고 있듯 영어라는” 조미료”가 그들에게 낯선 력사를 받아들이는데 한몫을 한 것은 틀림없다.
오늘날 수많은 조선족들이 여러가지 이유로 중국 각지에, 세계각국에서 생활을 한다. 다른이와 소통을 하기 위해 그들의 언어를 배우고, 그러면서 자신의 언어는 점점 잊어버리고 사용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들은 김치 없이는 밥 못먹고, 어른을 공경하고 아이를 보살피고 아리랑을 들으면 저절로 눈물을 흘리는 역락없는 조선족이다. 온전한 “우리”가 되여야 하는건 이상일뿐 가혹한 현실에서는 그것이 너무나도 힘들다. 그 대신 자신의 정체성을 올바르게 세우고 조금은 유연하게 상황에 맞는 “고수(香菜)” 같은 “조미료”를 뿌려주면서 더 많은 사람들에게 우리의 존재를 알리는 일이 어쩌면 이 시대의 우리가 해야하는 일인 것 같다.
연변의 투도라는 작은 마을에서 시작된 한 그릇의 정, “투도온면”은 지금 전 연변 지역, 나아가서는 전국 각지에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하고 한국, 일본 등 일부 지역에서도 팔리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들에게 소개되는 이 투도온면은 중국 연변조선족자치주의 특색으로 알려진다. “온전한” 전통 조선족음식은 아니지만, 투도온면은 오늘날 우리 민족의 삶의 지혜와 따듯한 정을 담은 우리의 음식이다. “온전함”을 지키는것, 낯선이들에게 조금은 친근하게 다가가것, 이상과 현실에서 우리는 과연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