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 이윤옥 기자] 지난 2월 17일부터 20일까지 나는 도쿄에 있었다. 2월 18일, 릿쿄대학의 ‘2018 윤동주 추도회’에 참석 후 귀국을 앞둔 20일 오후, 숙소 로비에 손님을 위해 놓아 둔 요미우리(讀賣新聞) 신문을 집어 들고 도쿄역으로 달렸다. 나리타 공항으로 향하는 열차 안에 자리를 잡고 신문을 펴니 눈에 거슬리는 책 광고가 시선을 끌었다. ‘비상식국가 한국(非常識國家韓國)’이라는 제목을 맨 앞으로 뽑은 신조사(新潮社) 잡지 <신조45> 3월호 책광고였다.
열차가 이미 공항을 향하고 있어 잡지책을 사긴 글렀다고 생각했다. 아니, 도쿄 시내에서 잡지책을 샀다하더라도 별반 알맹이는 없을 것으로 생각했다. 대개 일본내의 혐한파(嫌韓派)들의 글이란 것이 읽을 가치조차도 없는 쓰레기 같은 것들이 많았던 것을 생각하면 말이다.
그런데 나리타 공항 제3터미널에 도착하여 수속을 마치고 보니 바로 거기에 서점이 있었다. 들어가 물어보니 <신조45> 3월호가 있다고 해서 880엔을 주고 얼른 샀다. 비행기를 타자마자 나는 ‘비상식국가 한국(非常識國家韓國)’ 의 글이 실려 있는 21쪽(27쪽까지 있음)을 폈다.
작자는 평론가라는 무로타니가츠미(室谷克実)로 “왜곡된 교육이 낳은 선민의식의 국민들” 이란 굵은 제목 아래 주절주절 써내려 간 글을 읽는 데는 채 10분이 걸리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책을 덮었다. 비행기는 굉음을 내면서 막 이륙을 하고 있었다.
나리타에서 인천까지 이륙 후 2시간 남짓한 거리, 그 가깝고도 가까운 나라 일본의 자칭 지식인이라는 사람의 글 치고는 너무 유치하여 입에 담기도 낯간지러운 부분(평창 올림픽 개폐회식장의 지붕이 없는 것, 한국 유학생이 일본의 도서관에 가서 한국의 국책단체가 준 스티커를 받아다 일본해로 표기된 책에 붙인다는 등등을 들어 비상식국가 운운)은 일일이 입에 담기도 싫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히 지적해야 할 것이 있다. 바로 25쪽의 “이등박문을 암살한 안중근과, 무차별 테러를 한 상해폭탄사건의 범인인 윤봉길까지 한국에서는 영웅이다. 안중근과 윤봉길을 영웅시하는 한국은 그 자손에게 국가유공자의 자손으로 간주하여 공무원시험을 치룰 때 10% 가산점을 준다. 하긴 반듯한 영웅이 없는 한국이니까라는 생각에 미치면 웃음조차 나온다.”라는 부분이다. 그는 덧붙여 “한국의 1800톤급 잠수함에 안중근호로 이름 붙인 것에 대해 한국인 누구도 (이상하다는) 목소리를 내지 않는 것이 문제”라고 시비를 걸고 있다.
목불인견(눈으로 차마 볼 수 없음)이란 말은 이런 때를 가리키는 것이리라. 글을 읽고나니 무로타니 씨의 세상을 보는 눈은 ‘원인’ 없는 ‘결과’만을 보는 아주 편협적이고 지엽적이라는 사실을 느끼게 한다.
한국의 영웅 안중근과 윤봉길이 아무런 까닭 없이 이등박문을 처단하고, 상해 홍구공원의 의거를 일으켰단 말인가? 원인 없는 결과란 존재하지 않는 법이지만 무로타니 씨는 ‘결과’만이 전부라고 우기고 있었다.
한국 침략의 원흉인 이등박문은 무로타니 씨가 아무리 ‘일본의 영웅’ 으로 취급하고 싶어해도 우리에겐 원흉일 뿐이다. 생각해 보라. 나라를 송두리째 빼앗겼던 조선인의 심정을 말이다. 침략을 정당화하고 조선민족의 가슴에 대못을 박은 것이 지난날 일제국주의 일본의 대죄악이 아니던가! 문제는 무로타니 같은 사람들이 그야말로 왜곡된 일본의 역사교육을 받고 자라 ‘조선과 아시아에 끼친 엄청난 해악을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만일 무로타니 씨 같은 사람들이 과거 일제의 조선침략에 대해 제대로 알고 있다면, 더 나아가 일제의 총칼에 수많은 조선인들이 죽어갔다는 사실을 안다면 그렇게 함부로 펜을 놀리지는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 드니 더욱 가슴이 아프다.
무로타니 씨가 한국의 영웅인 안중근을 모독하고 그 후손을 모독하는 글을 쓰게 만든 전후(戰後) 일본의 역사 교육이 얼마나 왜곡되었으며, 그러한 사회야 말로 ‘비상식국가’임을 모르는 것은 일본뿐이라는 사실이 안타깝다 못해 딱하기 까지 하다.
이런 쓰레기 같은 글이 잡지의 1면을 장식하는 나라, 사실이 아닌 왜곡과 악의로 가득한 잡지가 잘 팔리는 나라, 그럼에도 아무도 거기에 대응하지 않는 나라야 말로 비상식국가 중에 비상식국가가 아니고 무엇이랴!
나는 여기서 무로타니 씨의 천박한 역사인식에 대해 더 말하지 않으려고 한다. 그러나 적어도 사실이 아닌 왜곡된 말로 이웃나라 사람들의 가슴에 대못을 자꾸 박는 이런 글은 더 이상 안나왔으면 싶다.
화가 나긴 하지만 그래도 다행인 것은 내가 알고 있는 일본인 가운데는 ‘상식이 통하고, 비상식을 털어내려는 사람들이 꽤 있다’는 사실이다. 지난 18일날 릿쿄대학에서 가진 ‘윤동주 시인 추도회’를 이끈 야나기하라 야스코 (楊原泰子)씨만 해도 ‘상식과 이성을 가진 일본의 지식인’이 아닌가 말이다.
붓을 들었다고 함부로 휘두를 일은 아니다. 입이 달렸다고 함부로 내 뱉을 일도 아니다. 교양과 상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조목조목 자신이 써내려가고 있는 글이 앞뒤가 맞는 말인지 새겨보고 써도 늦지 않을 것이다.
오늘 한국은 99년 전인 1919년 3월 1일, 일제의 총칼도 두려워 않고 남녀노소 전 국민이 맨손으로 일제의 침략에 항거했던 기념비적인 날이다. 천안 아우내 장터에서는 김구응과 그의 어머니 최정철 지사가 일본의 총칼에 피를 흘리며 그 자리에서 난도질당하는 극악무도한 죽임을 당했다. 모자(母子)의 제삿날이 같은 이런 비극이 어디 있단 말인가!
“천안군 병천시장에서 의사(義士) 김구응이 남녀 6400명을 소집하여 독립선언을 할 때 일본헌병이 조선인의 기수(旗手, 행사 때 대열의 앞에 서서 기를 드는 일을 맡은 사람, 곧 조선인들)를 해치고자했다. 조선인들은 맨손으로 이를 막느라 피가 낭자했다. 그러자 일본헌병은 이들의 복부를 칼로 찔러 죽음에 이르게 하는지라 김구응이 일본헌병의 잔인무도함을 꾸짖자 돌연 총구를 김구응에게 돌려 그 자리에서 즉사케 했다. 김구응은 머리를 맞아 순국했으나 일본헌병은 사지(四肢)를 칼로 난도질했다. 이때 김구응의 노모(최정철 여사)가 일본헌병을 향해 크게 질책하자 노모마저 찔러 죽였다.” - 『한국독립운동사략(韓國獨立運動史略)』, (김병조 지음, 1920.6.) 76쪽 -
그런가 하면, 목포 정명여학교의 어린 학생들은,
터졌고나 죠션독입셩
십년을 참고참아 이셰 터젓네
삼쳘리의 금수강산 이쳔만 민족
살아고나 살아고나 이 한소리에
피도죠션 뼈도 죠션 이피 이뼈는
살아죠션 죽어죠션 죠션것이라
한사람이 불어도 죠션노래
한곳에셔 나와도 죠션노래
를 부르며 14살짜리 여학생들이 목숨 건 만세운동에 동참했다. 어디 그뿐인가! 삼천리 방방곡곡에서 부르짖은 독립의 함성은 또 어떠한가!
눈이 있고, 귀가 있다면 무로타니 씨는 한일간의 과거 역사를 직시해주었으면 한다. 피해자로서 침략의 역사를 직시하고 있는 한국인이야말로 제대로 된 역사를 배운 상식국가 사람들이요, 가해자로서 제나라 국민에게 준엄한 역사적 실상을 바로 볼 수 있는 눈을 가려버린 일본의 역사교육이야 말로 왜곡과 함께 비상식적이라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그것이야 말로 비상식국가요, 비이성국가가 아니고 무엇이랴!
거듭 말하지만 무로타니 씨의 ‘비상식국가 한국(非常識國家韓國)’ 라는 쓰레기 같은 글에 이 이상 대응하고 싶지 않다. 다만, 나는 무로타니 씨의 글을 읽을 순진하기 짝이 없는 일본인들이 이 글로 인해 ‘비상식국가 국민’의 한 사람으로 추락해버릴까봐 그것이 마음에 걸린다.
무로타니 씨여! 한국에 삼일절이 있는 것을 아는가! 왜 한국인들이 목숨을 걸고 일제국주의와 싸웠는지 아는가! 그러한 사실을 상식적으로 알고 있다면, 아니 미래의 언젠가 알게 된다면 <신조45> 3월호에 특별기고한 ‘비상식국가 한국(非常識國家韓國)’ 기사는 당신을 이 땅에서 고개 들지 못하게 할 것이다. 그런 날이 온다면 일본은 '상식국가'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