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양종승 박사] 김유신장군당제에서는 하주(굿에 참여할 마을 원로)들이 선임되면 의례 공간 주변에 황토를 뿌리고 관련 건축물에 인줄을 매어 부정한 사람의 출입을 금하기 시작하는데 이를 ‘황토물림’ 및 ‘인줄매기’라 한다. 인줄에는 ‘피부정’, ‘상문부정’이라는 글귀도 써서 끼워 넣는다. 하주 집에도 물론 인줄을 쳐서 부정한 사람의 출입을 막는다. 선정된 하주들은 이때부터 여타의 잡인들과도 접촉하지 않아야 한다. 부정한 것을 듣지도 보지도 말아야 하며 초상집이나 출산집을 삼가야 하고 부부합방도 금해야 한다. 물론 누린 것, 비린 것 등의 음식도 삼가야 한다.
당제에 사용할 ‘술 담그기’는 당 앞에 마련되어 있는 당주 집에서 행한다. 술은 당제에 쓰이는 제물이고 또한 당제에 참가하는 마을 사람들이 새해 첫날 아침에 마시는 첫술이기 때문에 가릴 것은 가리고 드릴 것 드려 정성으로 담근다. 그래서 술 담그는 술방 주위에도 금줄을 쳐 부정한 사람의 출입을 막는 것이다.
2000년, 술 담그기는 1월 23일(음력 1999년 12월 17일) 일요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1시까지 3시간 동안 이루어졌다. 참여자는 당주 이군자 무녀를 비롯한 명화회 고문 김정해(당시 73살), 회장 천병열(당시 64살), 하주 김창열(당시 63살), 하주 이영산(당시 64살), 하주 심삼진(당시 65살) 등 6명이었다.
술 담그기에 쓰이는 준비물은 찹쌀 소두 두 말, 누룩 한 말 반, 물은 찹쌀과 누룩을 합한 같은 양의 말 반, 발효 약품 종두 열 봉지 등이다. 술독을 미리 깨끗이 씻어 물을 뺀 후 종이에 불을 붙여 안쪽을 소독해 둔다. 그 사이 방앗간에서 쪄온 찹쌀을 바닥에 펼쳐 식혀서 빠개둔 누룩을 넣고 섞는다. 섞여진 모든 재료를 깨끗한 독에 넣고 물을 부어 종두를 섞는다. 마지막으로 술독 뚜껑을 비닐봉지로 덮은 뒤 술방 아랫목에 앉힌다.
4~5일이 지나면 부글부글 끓기 시작하고 방안에 술 냄새가 풍기기 시작한다. 하주들이 당제 준비를 위해 당으로 올라다니면서 술이 익었는지를 점검한다. 이렇게 하여 11~15일 정도가 지나서 술이 익으면 뜬다. 맨 먼저 당굿에 올릴 ‘할아버지 술’, 곧 제주로 쓰일 맑은 술의 조라술을 두 말 먼저 뜬다. 그리고 나머지는 당굿 당일 마을 사람들이 마실 막걸리로 뜬다.
과거에는 쌀 한 가마 분량으로 담가서 두 동이가 될 정도로 넉넉하게 하였지만, 근래에는 술 마시는 사람이 줄어들어 양을 적게 하고 있다. 그리고 술이 부족할 경우 포천에서 막걸리를 사와 쓰기도 한다.
과거에는 당제 보름 전부터 마을 사람들로 구성된 풍물패가 당기를 앞세우고 마을집들을 돌며 ‘지신 밝기’를 하고 ‘추렴’ 행사를 펼쳤었다. 그런데 1980년대 들어서면서 풍물패가 사라지고 지신 밝기도 없어지고 말았다. 김유신장군당제는 마을 사람들의 추렴으로 이루어지는 마을 공동행사이기 때문에 지신밟기와 걸립이 동시에 행해졌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그러한 오랜 전통이 없어지고 말았다. 그리고 당제 2~3일 전부터 추렴을 위해 집을 돌고 있다. 추렴에 동참한 마을 사람들 이름과 추렴액은 당제 날 일찍부터 세로 종이에 써서 전각 앞에 붙여 놓는다. 여러 사람이 그 정성을 알아보게 하는 것이지만 정성으로 올린 금전을 장군님이 알아보시게 하려는 것이다.
한편, 당제 날 아침 일찍, 하주들과 잽이들이 음악을 울리며 동네를 도는 ‘연돌기’를 한다. 연돌기는 당에서 출발하여 동네를 한 바퀴 돈 다음 다시 당으로 돌아온다. 이는 당제 지내는 날 동네에 부정한 액을 물리치고, 주민들에게 제를 올린다는 알림장을 놓는 것이다. 과거에는 연돌기에도 풍물패들이 기를 앞세워 풍악을 치며 거대하게 이루어졌었다. 하지만 2000년에는 그 규모나 내용이 축소되어 행해졌었고, 근래에 들어서는 아예 연돌기 마저 없어지고 말았다.
당주와 하주들은 당제를 치르기 위해 미리 당을 깨끗하게 청소하고 제기들을 닦아 놓는다. 당제 전날에는 당 마당에 천막을 치고 모든 준비를 철저하게 한다. 그리고 2~3일 전에 당주는 당제 제물 목록을 하주들에게 건네준다. 하주들이 최상품으로 사서 당주에게 갖다 주어 장만토록 한다. 당제에 쓰일 모든 제물이 준비되면 당주와 무녀들이 당제 전날 오후 ‘굄질(그릇에 제물을 모양을 내어 높이 쌓아 올리는 일)’을 하여 당에 미리 올려놓는다. 이 역시도 과거에는 당제 제물을 하주 집에서 하였지만 근래에는 당 앞에 있는 당주집에서 하고 있다.
김유신장군당제에서 바치는 육찬 제물 가운데 특이한 것은 흰점이 전혀 없는 완전 검정 조선 숫돼지를 받치는 것이다. 그리고 제물로 바쳐진 돼지의 피와 내장으로 만든 피순대를 당제 지내는 날 주민 모두가 음복하는 것이다. 마을 사람들이 당 앞마당에 모여 피순대를 숯불에 구워 먹는 전통이 오늘날까지 남아 있다. 그러나 이제는 검정 조선 통돼지는 구할 수가 없어 마장동에서 미리 잡아 놓은 흰 돼지를 사와 쓴다.
김유신장군당제는 유교식과 무교식으로 나뉘어 진행된다. 하주들이 중심되는 유교식 제사를 지낸다. 유교식 제례는 아침 7시 30분부터 8시 30분까지 약 한 시간 동안 마을 남자들이 주가 되어 지내는데 이를 할아버지 제사라고 부른다. 할아버지 제사에는 철저하게 남자 하주들만 참석하는 것이 원칙이며, 진행은 상당히 엄숙하게 이루어진다. 미리 준비해 둔 의례복을 하주들이 갖추어 입고 제단에 선다. 연장자가 먼저 향을 올리고 조라술에서 뜬 청주를 올린다. 모두가 재배한 뒤 준비한 축문을 읽는다. 당제의 축문은 다음과 같다.
[유세차00년정월무인삭초일일계사(維歲次00年正月戊寅朔初一日癸巳)
명화회회장이하성회자일동감소고우(明化會會長以下誠會者一同敢昭告于)
명화전존신부군신령복이부군신령(明化殿尊神府君神靈伏以府君神靈)
우아촌방거재강상존비안도노소남부(佑我村坊祛災降祥尊婢安堵老少南婦)
감덕무궁자치신춘근존년예대소(感德無窮玆値新春謹尊年例大少)
헌성공행제전복원신령부감미침제각(獻誠恭行祭典伏願神靈府鑑微忱除却)
백재강지만복국태민안시화년풍근이(百災降之萬福國泰民安時和年豊謹以)
청작서수경천분필(淸酌庶羞敬薦芬苾) 상(尙) 향(響)]
유교식 제사가 끝나면 하주와 마을 사람들이 각자 집으로 돌아가 개인 제사를 지낸다. 그리고 한두 시간 정도 뒤에 다시 당으로 돌아온다. 이 사이, 무녀들이 앉은 부정청배(본굿을 하기 앞서 부정한 것을 가셔내기 위해 하는 굿)와 앉은 가망청배(가망거리에서 가망신을 청해 오는 일)를 모두 마친다.
그리고 하주들이 다시 모여들면 김유신장군당 아래쪽에 있는 하주방에서 당 성주신을 모시는 푸닥거리를 한다. 방 한가운데 성주 상을 두고 잽이들이 무악을 연주하게 되면 하주들이 술을 올리고 재배를 한다. 당주 무녀가 성주축원을 한 다음 하주들 모두에게 공수를 내린다. 공수의 내용은 당굿 준비에 수고하였다는 점과 당굿이 무사하게 치러지길 바라는 것 등이다.
이후, 당주가 중심되어 삼현육각을 대동하고 굿을 진행한다. 당굿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시간은 아침 9시 30분경이다. 이때부터 저녁 4시 30분 정도까지 약 7여 시간 진행된다. 제물로 바쳐진 전물은 굿당 안에다 차려놓고 모든 당 문을 열어둔다. 당굿은 전각 앞 마당에서 이루어진다.
당굿을 하는 도중 사람들은 김유신장군 앞에 돈을 놓고 술을 올리며 재배를 올리고 무녀가 주는 산을 받기도 한다. 그러면서 굿이 진행되는 동안 마당 한쪽 편에 마련된 음식과 술을 마시며 즐긴다. 굿 중간마다 하주들과 마을 사람들의 무감서기(무복을 입고 춤으 추는 것)를 곁들이며 한해 무병장수를 기원한다. 오후 느지막하게 굿이 끝나면 제물로 올려진 떡이며 과일 등을 보광동 관내 기관 가운데 당제에 도움을 준 관공서 그리고 추렴에 동참한 주민들에게 나누어 주는 반기돌림을 한다.
2000년 진행된 당제 순서는 다음과 같다. 연돌기 - 유교식 할아버지 제사 - 앉은부정청배 – 앉은가망청배 – 하주당 성주모시기 - 진적 – 하주 대내림 – 부군할아버지 모시기 – 산바라기 – 산군웅(댄주 올리기) - 별상 – 신장 – 대신 – 조상 – 떵쿵할머니 모시기(일명 호랑할머니) - 상산거리 – 신장 – 대감 – 제석 – 성주 – 군웅 – 창부 – 뒷전 순이다.
당굿에 참여할 만신들은 당주 권한에 의해 불려 온다. 이곳 당굿에 초청되는 청송만들은 주로 서울 장안에 이름 난 무녀와 잽이들이다. 김유신장군당굿에는 보편적으로 삼잽이(3명의 연주자)를 앉히지만 재정이 어려울 때는 양잽이 또는 외잽이를 앉히기도 한다. 그러나 돈이 넉넉할 때는 사잽이를 앉히기도 한다.
사잽이를 앉힐 때는 쌍피리, 해금, 대금이며 삼잽이 때는 피리, 해금, 대금이다, 양잽이로 앉힐 때는 피리와 해금이며 외잽이 피리만 쓰는 경우도 더러 있었다. 2000년도의 당굿에는 다음과 같은 무녀와 악사들이 참여하였다. 당주에는 이군자이며 무녀는 이정숙(여), 신인재(여), 단옥이(여)가 참여 하였고, 잽이로는 방인근(피리), 이한복(대금), 문종호(해금)등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