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화륜거(火輪車) 구르는 소리는 우레 같아 천지가 진동하고, 기관거의 굴뚝 연기는 반공에 솟아오르더라. (중간 줄임) 수레 속에 앉아 영창(映窓)으로 내다보니 산천초목이 모두 활동하여 달리는 것 같고 나는 새도 미처 따르지 못하더라. 대한 이수(里數, 길이)로 팔십 리 되는 인천을 순식간에 당도하였는데, 그곳 정거장에 나눠준 범절(행사용 물품)은 형형색색 황홀 찬란하여 진실로 대한 사람의 눈을 놀래더라.”
위는 〈독립신문〉, 1899년 9월 19일자 기사로 1899년 오늘(9월 18일)은 노량진~인천 간 경인철도가 처음 영업을 시작한 날입니다. 당시 경인선(京仁線)은 노량진과 인천 사이 33.8㎞ 구간으로 우리나라 철도의 맨 처음이 되었습니다. 사실 경인선 철도는 1896년 3월, 미국인 모스가 부설권을 따낸 것이지요. 하지만 이후 모스가 본국으로부터의 자금 조달에 실패하였고 이 때문에 경인선 철도 부설 공사는 결국 일본인의 손으로 넘어가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모스 이후 철도 부설권을 따내기 위한 경쟁이 시작되어 프랑스의 피브릴르(Fives Lile) 회사는 1896년 7월 경의선 부설권을 따내고, 내친김에 서울~공주, 서울~목포 철도 부설권을 요구했으며, 러시아는 서울~원산 간 부설권을 요구했지요. 따라서 우리나라에서 근대적 교통기관인 철도의 시작은 결국 서구 열강과 일본까지 침투하는 계기가 되었음에 씁쓸한 입맛을 다시지 않을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