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玉) 같은 나, 여기에 두고 왜?”

  • 등록 2025.11.11 11:3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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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한범 교수의 우리음악 이야기 757]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서도좌창 <제전-祭奠>이 독백(獨白) 형식의 넋두리로 시작하던 노래였다는 이야기와 함께 ‘함종의 약률’, ‘연안, 백천의 황(왕)밤 대추’와 관련된 이야기들, 곧 함종이란 지역은 서도소리의 중시조라 할 수 있는 김관준(金官俊)이 태어난 곳으로 서도소리의 노랫말들과 서도의 창법을 정착시켰고, 재담과 배뱅이굿을 정리해서 김종조(金宗朝), 최순경(崔順景),이인수(李仁洙) 등에게 전해 주었다고 이야기했다.

 

또, 해서(海西, 황해도) 삼연(三沿)의 한 곳인 용강은 평안도의 대표적인 민요 <긴아리>의 발생지로도 유명한 곳이라는 이야기, <제전>은 창을 시작하기 전, 인생무상을 강조하는 푸념조의 넋두리가 나온 다음, 창(唱)으로 이어갔으나 지금은 이를 생략하고 있다는 이야기 등을 하였다. 50년대 전후, 활동하던 서도의 명창들이 전해 주었다고 하는 독백형식의 넋두리 대목의 한 예를 벽파(碧波)의 《가창대계》를 통해 소개하였으나, 현재는 그 사설은 생략된 채, 불리고 있다.

 

이번 주에는 평양에서 이정근에게 배웠다고 하는 박기종이 전해 주는 넋두리 대목이 있는데, 앞에서 소개한 바 있는 벽파의 그것과는 또 다른 차이를 보이고 흥미를 끈다.

그가 전해 주는 대목을 일부 소개해 보기로 한다.

 

“인생백년 살아갈 제, 하날에다 명(命)을 빌구, 땅에다 복을 빌어

아바지전 뼈를 빌구, 오마니전 살을 빌어,

열 달 배불러 이 세상에 태어나서 우리 부모 날 기르실 제,

은자동아, 금자동아, 오색비단 채색동아,

금을 주구 너를 사랴, 은을 주구 너를 사랴.(가운데 줄임)

우연히 득병(得病)하야 백약이 무효이라.

부르나니 오마니요, 찾나니 냉수로다.

무당 불러 굿을 한들, 굿 덕이나 입을쏘냐.

소경 불러 경 읽은 들, 경덕이나 입을쏘냐. (중략)

인삼녹용으로 집을 짓구, 다사향으루 벽을 바르구,

우황 청심환으루 보료를 허여 덮구,

불로초(不老草)루 불을 땐 들, 이내 병 고치기난 만무로구나.(가운데 줄임)

홍안(紅顔)박명(薄命)에 청춘 애처(愛妻)가

님의 분묘를 찾아갈 제, 이 고을, 저 고을 다 지나가니,

우리 님의 분묘가 여기로구나”

 

이어 「백오동풍에 절일을 당하여」로 창(唱)이 시작된다.

이 <제전>은 상차림을 하는 데 있어 음식이나 과일 말고도 술 종류도 다양하게 올리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그 대목을 살펴 보기로 한다.

 

“술이라니 이백의 기경 포도주 (이태백의 <회양가>라는 시(詩)속에 나오는 술을 말함)며, 떨어졌다 낙화주(落花酒)며, 산림처사(山林處士-벼슬하지 않고 산림에 묻혀 살던 선비)의 송엽주(松葉酒-소나무 잎으로 담근 술)로다.

도연명의 국화주(菊花酒-국화꽃으로 담근 술, 도연명이 국화를 좋아했다고 해서 끌어드린 것으로 보임)며, 마고선녀 천일주(千日酒- 담근 뒤 1,000일, 약 3년이 되어야 마신다는 술) 맛 좋은 감홍로(甘紅露-평양의 붉은 소주로 알려진 술) 빛 좋은 홍소주, 청소주, 온갖 술을 다 그만두고 청명한 약주(藥酒)술” <가운데 줄임>

 

그리고 끝부분에 나오는 마무리 부분은 이 노래의 절정을 이루는 눈물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잔디를 뜯어 모진 광풍에 흩날리며 왜 죽었소, 왜 죽었소.

옥 같은 나 여기 두고 왜 죽었단 말이요.

선영에 풀이 긴들 절초할 이, 뉘 있으며

한식 명절이 당도하여도 잔 드릴 사람이 전혀 없구려.

일부황분(一夫荒墳 한 남자의 거칠어진 무덤)이 가련도 하구나.

천지(天地)로다 집을 삼고, 황토(黃土)로다 포단(蒲團) 삼으며,

금잔디로다 이불을 삼고, 산천초목을 울을 삼으며,

두견(杜鵑)접동이 벗이로구나.

심야공산 다 저문 밤에 홀로 누워있기 무섭지 않단 말이요.

임 죽은 혼백이라도 있거든, 날 다려만 가렴아.”

 

 

떠나보낸 지아비를 그리워하는 한 여인의 한 맺힌 절규가 서도소리 특유의 가락을 타고 흐르면, 듣는 이들은 눈시울을 적시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서도명창, 유지숙이 무대 위에서 부르는 <제전>을 직접 듣게 된 Y 씨는 이후, 서도소리의 열렬한 애호가가 되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끝부분의 노랫말도 ‘날 다려만 가렴아’로 부르는 사람도 있고, 또‘날 데려만 가소 구레’로 부르는 등, 같은 소리라도 지역에 따라, 또는 창자에 따라 다소 그 표현이나 발음이 다르기도 하다.

 

그러나 서도소리 특유의 떠는 소리인 요성(搖聲)을 중심으로 소리 끝을 끌어 내리거나, 또는 올리는 퇴성(退聲)이나 추성(推聲)의 창법이 이어지고, 이와 함께 강약(强弱)과 농담(濃淡), 명암(明暗) 등의 표현이 이어지기 시작하면 그 애처로움은 절정에 이르게 된다. 한 여인의 애절한 소리로 ‘인생이란 참으로 덧없는 존재’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닫게 해 주는 노래가, 서도의 좌창 <제전>이라 하겠다.

 

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suhilkwa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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