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유광남 작가]
“그것은 거부하겠네.”
강두명의 눈초리가 세모꼴로 독 오른 독사처럼 번뜩였다.
“계속 의심을 안고 가실 작정입니까?”
“내가 아직은 조선의 재상 신분이네. 물론 임금님에게 사직 상소를 올려두긴 했지만 윤허(允許)를 받지 못했으니 영상의 몸이란 말일세. 일국의 재상이 이런 추잡한 사안에 응대하는 것은 체통의 문제일세. 이해하시게.”
“만약 사직 상소가 오늘 밤이라도 받아들여진다면 그리 하시겠습니까? 순순히 사헌부의 압수 수색에 응하시겠느냐는 말씀입니다.”
서애 유성룡은 망설이지 않았다.
“물론일세. 자네에게 그만한 배경이 존재 하는가? 정말 궁금하기 짝이 없군.”
사헌부 지평 강두명은 오만한 표정을 감추지 않았다. 그는 악귀처럼 이를 드러내며 가소롭다는 듯이 웃었다.
“소생을 까다로운 부류로 분류했어야 옳았소이다. 영상의 고매한 안목을 평소 존경해 왔었는데, 그건 헛소문에 불과 했군요.”
강두명은 기분 나쁘게 미소를 날리면서 가장 자리에 황금 칠을 한 갈색 두루마리를 장삼에서 꺼내어 영상의 코앞으로 내밀었다.
“이것은......?”
“읽어 보시오. 상감마마의 어지요.”
- 영상과 함께 한 세월이 몇 해인지 아득하오. 평생을 과인의 곁에서 견마의 노고를 다해주어 그 충성심을 어찌 낙수가 바위를 뚫는다 해도 잊을 손가. 이제 이별이 꿈인 듯 눈물이 청계에 넘치오. 부디 재회할 수 있기를 기원하오. 선조 30년 9월 -
서애 유성룡의 사직 상소에 대한 답변이라면 사직을 수락하는 글귀라 할 수 있었다. 강두명이 이러한 선조의 어지까지 품에 넣어 들이닥칠 줄이야 누가 꿈엔들 생각할 수 있겠는가. 실상은 강두명이 퇴궐하는 길목에서 고내관이 슬쩍 왕의 어지라면서 손에 쥐어준 것이었다. 마지막에 옥새(玉璽) 자국이 선명한 것이 분명 선조의 작품이었다.
“허헛......허허헛......”
서애 유성룡은 얼마나 어이가 없었던지 그만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사헌부 지평 강두명은 그런 유성룡을 아랑곳 하지 않고 대문을 활짝 열 것을 지시하였다. 영상의 하인들이 주저하자 강두명은 몸소 대문의 빗장을 열어 젖혔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의금부의 도사와 나장들이 우르르 떼를 지어서 몰려들었다. 문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모양이었다.
“물러서라!”
“당장 열어라.”
의금부의 관리들은 저택의 구석구석을 뒤지고 다니면서 닥치는 대로 창고와 곳간을 헤집었다.
“이게 무슨 해괴한 짓이냐?”
서애 유성룡의 아들 유진이 노성을 토해냈다. 아직은 상투를 틀지 않은 도령의 노여움은 솜털이 바싹 설 정도로 젊은 위엄을 노출했다. 강두명은 비릿한 조소를 입가에 흘렸다.
“영상에게 아주 영특한 도령이 있다고 하던데 그대인가?”
“우리 집안에 행패를 부리시는 분이 뉘시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