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유광남 작가]
김충선과 준사는 동시에 경악성을 토해냈다.
“그래......똥을 삼키는 표정이란 바로 그런 것이다.”
구루시마 미치후사.
일본 함대의 수장이 건장한 무사 네 명이 메고 있는 간이의자에 황금색 보료를 깔고 의연한 태도로 모습을 드러냈다. 설마 어둠에 잠긴 관선의 선실에서 그가 튀어나올 줄은 상상도 못한 일이었다. 김충선과 준사는 믿을 수 없는 광경에 아연실색할 뿐이었다.
“세상에......?”
구루시마의 뒤로 화승총을 겨냥한 병사 10명과 궁수와 창병이 각기 10명, 도합 30여 명이 넘는 병사들이 꾸역꾸역 밀려 나왔다. 그들은 삽시간에 김충선과 준사를 포위 하였다.
“네 놈의 계략이 보통이 아니어서......내가 그 점을 역이용했다.”
구루시마가 차갑게 웃었다. 김충선은 쉽게 판단이 서지 않았다. 여기서 이렇게 허무하게 죽음을 당할 것인가? 아니면 마지막 발악이라도 해야 하는 것일까? 만일 업고 있는 준사만 아니라면 그래도 어떤 몸부림을 칠 수 있을 텐데 하는 생각이 스쳐갔다.
“날 포기해라. 넌 진작 그래야 했어.”
준사의 속삭임이 절망적으로 들려왔다. 김충선은 상대방을 너무 호락호락하게 본 것이 실수임을 깨달았다. 구루시마 미치후사는 역시 무서운 지략가였다.
“항왜장수 김충선! 명량에서의 처절함을 어떻게 갚아야할지 모르겠군.”
“그런 안 좋은 기억을 아직도 하고 있나?”
구루시마는 이빨을 갈았다.
“어떻게 잊을 수 있단 말인가?”
“건강에 무척 해롭거든.”
김충선은 여유 있는 태도를 보이면서 기회를 노려보고 있었다. 구루시마는 고개를 좌우로 냉정하게 흔들었다.
“너의 건강을 염려해야 할 것이다. 항왜장수 김충선, 우리의 도요토미 히데요시 태합께서 너에 대한 궁금증이 상당하시다. 크흐흐, 크하하핫”
김충선과 준사에게 있어서는 절망적인 웃음이 일본관선 세키부네의 상판 위에서 저 암흑의 하늘까지 멀리멀리 울려 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