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애국가! 칠순이 넘은 내가 어릴 적부터 배우고 부르기 시작하여 아마도 평생에 가장 많이 불렀던 노래가 ‘동해물과 백두산이’로 시작하는 애국가였으리라.” 이는 판소리 명창이며, 문화운동가인 임진택 선생이 쓴 그의 책 《애국가 논쟁의 기록과 진실》의 머리말 첫 부분이다. 물론 이는 대한민국 국민이면 누구나 공감하는 말일 것이다.
그만큼 애국가는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학교에서, 나라의 행사장에서, 운동경기장에서 익숙하게 불렀던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노래다. 하지만 임진택 선생은 이 애국가에는 두 개의 감춰진 진실과 한 개의 뒤집힌 사실이 있다며, 이를 바로잡고, 새로운 애국가를 만들어야 한다고 《애국가 논쟁의 기록과 진실》에서 강력히 주장하고 있다.
선생이 말하는 애국가 속에 숨겨진 ‘두 개의 감춰진 진실과 한 개의 뒤집힌 사실’이란 무엇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감춰진 진실’이란 애국가 작곡자 안익태의 친일ㆍ친나치 행각과 불가리아 민요 표절 혐의를 말하며, ‘뒤집힌 사실’이란 애국가 작사자가 독립운동가 안창호임에도 민족반역자 윤치호로 뒤바뀌어 있는 현상을 말한다.
선생은 이러한 진실을 규명하기 위해 그동안 애국가 논쟁에 대두되었던 여러 책과 신문기사, 논문, 문서는 물론 수많은 관련자의 증언을 찾아내 숙고하고 분석하는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눈에 띄는 대목은 애국가 작곡자 안익태와 그의 일본식 이름 에키타이 안에 숨겨진 비밀과 거짓말을 ‘자기표절’이라는 관점에서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부분이며, 특히 주목할 대목은 애국가의 작사자가 윤치호가 아니라 도산 안창호임을 치밀한 논증으로 탁월하게 해석 ㆍ규명해낸 부분이다.
작곡자 안익태(에키타이 안)의 경우, 선행 연구자들에 의해 그동안 들춰진 증거들만으로도 그의 친일ㆍ친나치 행각은 분명하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그의 애국가 곡조가 불가리아 민요 ’오, 도부르잔스키 크라이‘를 표절했다는 점이다. 이에 대해 1964년 서울국제음악제 당시 우연히 불거진 표절논란을 직접 목격한 미국인 음악평론가 제임스 웨이드는 “두 곡의 유사성은 애국가의 첫 8마디(두 소절)에 압축되며, 이 중 둘째 소절은 넷째 소절에 반복되므로 전체 16마디 중 12마디가 유사하다.”라고 분석한 바 있다.
대한민국을 상징하는 애국가의 작곡자가 대한민국 아닌 일본제국의 괴뢰국 만주를 찬양하는 교향곡을 직접 작곡해서 지휘하고 나치독일의 전쟁 승리를 고무하는 순회연주에 앞장섰다면, 이는 결코 용서될 수 없는 일이다. 더욱이 한 나라의 애국가(국가)가 남의 나라 민요를 표절했다면 이는 너무나 부끄러운 결격 사유다. 따라서 임진택 선생은 이제라도 법률적으로 정식 국가(國歌)도 아닌 현재의 애국가를 국가(國歌) 지위에서 내리고(독점적 지위를 해체하고) 새 애국가를 선정ㆍ보급해야 한다는 논리를 강력하게 펴고 있다.
이와 함께 뒤바뀐 진실 곧 애국가 작사자 논쟁을 바로 잡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동안 세를 불려왔던 윤치호 작사설은 소위 ‘자필 가사지’ 등 물증을 앞세웠지만, 이는 위작일 가능성이 크고, 윤치호의 후손들이 내놓은 주장들도 앞뒤 모순이 혼재하여 증거로 인정할 수가 없다고 말한다. 이에 견주어 안창호설은 비록 전문증거(傳聞證據)이지만 여러가지 교차 검증이 명백하여 진실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선생은 판단한다.
이 책에서 더욱 눈길을 끄는 것은 마지막 부분의 “새로운 애국가, 그 방향과 대안”이다. 아무리 분명한 논리를 폈어도 이에 상응하는 분명한 대안이 없다면 이는 그저 공허한 메아리로 그칠 수밖에 없다. 선생은 국가(國歌)를 공모(公募)하자는 항간의 주장에는 오히려 우려를 표한다. 막대한 현상금을 걸고 공모를 하면 응모 규정에만 맞춘 사이비 작품이 도리어 높은 점수를 받을 가능성마저 생겨 어쩌면 박정희의 ’나의 조국‘ 같은 곡이 당선될지도 모른다고 우려한다.
선생은 뜻밖에도 새로운 <애국가>로서 손색이 없는 현대의 노래들을 제시 적극적으로 추천하고 있다. 선생이 추천하는 노래들에는 수많은 사람이 즐겨 불러왔고, 국가로서 요구되는 것들을 충족할 수 있는 노랫말과 곡을 가진 수준 높은 노래들이 예시되어 있다. 이를테면 김민기의 ’아침이슬‘, ’상록수‘, ’내 나라 내 겨레‘ 등과, 남북이 때로 함께 불러온 ’우리의 소원은 통일‘, 80년대 노래운동의 대표작 ’그날이 오면‘, 백기완 원작시에 황석영이 구성하고 김종률이 곡을 붙인 ’임을 위한 행진곡‘, 임동창의 ’우리가 원하는 우리나라‘와 함께 나운규 작사 김영환 편곡의 ’아리랑‘ 등이 제시되었다.
수많은 사람이 친숙하게 불러왔던 이런 노래들을 제안하는 데 대해 공감하는 이들이 많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이 노래들은 국민에게 이미 검증이 된 노래이면서 애국가로서 손색이 없을 만큼의 위상을 지닌 노래라고 볼 수 있다. 이제 많은 이들이 임진택 선생의 《애국가 논쟁의 기록과 진실》을 읽고 애국가에 관한 그간의 논쟁에 마침표를 찍음으로써, 새로운 애국가의 보급과 나아가 진정한 국가 제정에 큰 전기를 마련해야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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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ㆍ친나치 부역자인 안익태 곡조의 애국가는 이제 그만! 《애국가 논쟁의 기록과 진실》 지은이 임진택 선생과의 대담
눈이 내리는 날 인사동 창작판소리연구원 사무실에 임진택 선생을 만나기 위해 나들이했다. 예전 선생의 창작판소리 “백범 김구” 공연장에서 처음 만났지만, 가깝게 만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소박한 사무실, 선생의 소탈한 성품이 그대로 드러나는 곳에서 이야기는 이어졌다.
- 이 책이 우리 겨레로서는 참으로 중요한 내용을 담아낸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에 대한 주변의 반응은 어떤가요?
“사실 현재 누구나 부르고 있는 애국가를 전격 바꾸자는 내용이어서 많은 사람이 조심스러워 했습니다. 어떤 이는 제대로 확인하지도 않고 부정적인 얘기를 내뱉기도 했고, 어떤 이는 나의 주장에 긍정적인 의사를 비치면서도 자기가 드러나는 것이 두려운 듯(골치 아픈 듯) 입을 닫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귀찮기도 하고, 용기가 없는 것이지요. 그래서인지 언론들도 아직 크게 관심을 보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는 우리 민족의 정기와 국민적 자존심을 위해 분명히 짚어야 할 문제이기에 서두르지 않고 꾸준히 펼쳐내려고 합니다.
그러다 보면 내 생각이 온 국민에게 인정받아 친일ㆍ친나치 작곡자의 애국가 곡조가 더는 불리지 않게 됨은 물론, 애국가의 작사자가 천하의 매국노 윤치호가 아니라 만고의 애국자 안창호 선생임을 모두가 알게 될 날이 올 것입니다. 사실 나는 문화운동가로서 애국가를 바꾸자는 주장 이전에 대안을 먼저 고심했는데, 작사자를 먼저 규명해야 대안에 있어 큰 방향이 정해지기 때문에 ‘애국가 작사자 규명’이 저에게는 필수적인 선결과제가 된 거지요.”
- 이 책을 쓰면서 많은 자료를 섭렵한 것으로 보입니다. 혹시 책을 쓰는 데 에피소드 같은 것은 없나요?
“실제 애국가와 관련하여 내가 필요로 하는 자료들이 참으로 부족했습니다. 특히 작사자 문제에 있어 좀 난감한 느낌이었는데, 흥사단에 찾아가 협의를 하다가 우연히 1955년 국사편찬위원회가 작성한 ‘애국가 작사자 조사자료’라는 문헌을 제공받았어요. 복사를 거듭해서 알아보기조차 힘든 문건이었는데, 거기에 애국가 작사자가 뒤집힌 결정적 단서가 들어있었습니다. 그런 문건을 내가 접하지 못했다면, 작사자 문제는 여전히 미궁에 빠져있었을 겁니다.
또 안익태 관련해서는 숨겨진 자료를 구하려고 동분서주하던 차에 어떤 선행 연구자의 저서 한 권이 절판되어 구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출판사와 협의 끝에 아예 최소한의 인쇄부수인 200권을 찍기로 하고, 내가 출판비를 전액 부담하고 새로 인쇄해서 몽땅 구입했습니다. 내 책도 아닌데, 애국가 문제에 관심을 보인 지인들에게 그 책을 무료로 나눠 줬지요. 애국가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사람들에게 먼저 알려야 했으니까요. 그러다 보니 아하, 내가 책을 한 권 직접 써야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 거지요.”
- 새로운 애국가로서 대안을 제시한 것에 공감합니다. 대안 없는 비판은 무의미하기 때문입니다. 다만 제시한 노래 가운데 특별히 하나만 고른다면 무엇을 꼽을 수 있을까요?
“하나만 꼽기는 좀 쉽지 않은데, 왜냐하면 새로운 애국가의 대안은 크게 두 갈래로 나누어 생각해야 하니까요. 하나는 애국가 작사자가 안창호 선생이 분명하다면 뒤집힌 작사자의 위상을 바로잡는 것이야말로 친일적폐 청산의 상징적 성과인 만큼 그 가사를 우리가 존중하고 살려 나가야 한다는 생각이지요. 여기서 ‘가사는 살리고 곡조는 버리자’라는 방향이 설정되는 것인데, 그렇다면 답은 ‘아리랑’입니다. 안익태 곡조를 버리기 위해서는 70여 년 우리 몸에 밴 안익태 곡조보다 더 깊이 우리 몸과 마음에 스며있는 민족적 곡조가 필요하니까요. 제가 이미 ‘평화의나무 합창단’에 부탁해서 ‘아리랑 애국가’ 합창을 동영상으로 만들어 홍보하고 있는 중입니다.
그다음 하나가 애국가로서 이미 손색이 없는 현대의 노래들 가운데서 애국가 군(群)을 추천해서 자유롭게 취택하도록 하는 방안인데요. 제가 책에서 대안으로 제시한 노래들이 모두 훌륭합니다만, 그 가운데 꼽는다면 김민기씨가 작곡하고 송창식씨가 작곡한 ‘내 나라 내 겨레’를 추천하고 싶습니다. 나는 지금 새삼 공모를 따로 할 필요 없이 ‘내 나라 내 겨레’야말로 지금 바로 애국가로서뿐 아니라 국가(國歌)로 지정되어도 손색없다고 생각합니다. 이 노래에 사무치도록 눈부시게 담겨있는 ‘통일에의 꿈’은 북녘 사람들이 들어도 거부감이 있을 수 없는 순결과 숭고의 경지에 다다라 있습니다. 통일된 후의 우리 겨레 애국가로서도 손색이 없는 노래인거죠.
덧붙이자면 ‘아리랑’을 잘 편곡해서 노랫말 없이 연주만으로 완성하면 세계에 내놓을만한 자랑스러운 국가(國歌)로 성립될 수 있다고 봅니다. 국가(國歌)와 국가(國家) 정체성이 일치하니까요. 남과 북이 동의할 수 있는 훌륭한 애국가(국가)로는 ‘아리랑’ 말고도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 있지요. 장중하게 편곡해서 남북 겨레가 함께 부르는 공동 국가(國歌)로 얼마든지 합의해 나갈 수 있다고 봅니다.
다시 한번 강조하자면 애국가를 바꾸는데 우리 겨레에게 이미 검증된 것이 아니면 참으로 난처할 것입니다. 온 겨레에게 자연스럽게 퍼져나가고 국민이 스스로 선택해야 하지 인위적으로 만들어서 강요하는 것은 올바른 방향이 아닙니다. 제3공화국 때 박정희 전 대통령이 작사ㆍ작곡했다는 관제 사이비 국가 <나의 조국>이 3공화국이 무너지면서 그 수명이 다한 것을 생각하면 알 수 있을 것입니다.”
- 이 책에 잠깐 거론이 된 ’무궁화에 관한 얘기를 듣고 싶습니다. ‘무궁화’는 안창호 선생 만든 신조어라는데 그것이 사실이며, 무궁화와 근화(槿花)는 어떤 관계일까요?
“저도 이번에 자료를 찾다가 안창호 선생이 남기신 무궁화에 관한 말씀을 처음 접하고 놀랐는데요, 현행 애국가는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 대한(조선)사람 대한(조선)으로 길이 보전하세’라는 후렴이 있는 일종의 ‘무궁화노래’입니다. 그런데 안창호 선생이 지은 이 노랫말의 ‘무궁화’는 꽃을 가리킨 것이 아니라 ‘단발령에 대항하여 흰옷 입고 뛰쳐나온 조선 백성들, 다시 말해 왜ㆍ양 되기를 거부하고 무궁하게 이어갈 조선의 백성들”을 비유한 신조어였다는 겁니다.
그런데 무궁화노래가 그 후 대표 애국가로 퍼져나가면서 민중들은 자연스럽게 무궁화를 꽃으로 생각하게 되었는데, 윤치호를 포함한 부왜 친일반역자들이 일본꽃 근화(槿花)를 무궁화로 조작하면서 우리 땅에 보급하기 시작했다는 것이지요. 근화는 우리나라 꽃이 아니라 일본꽃이라고 하더군요. 우리나라에는 별로 없는데 일본에 엄청 많은 꽃이라네요. 사실 우리나라 사람들은 근화가 일본꽃이라는 것도 모르고 있고, 우리가 무궁화라고 칭하고 있는 꽃이 일본의 근화라는 것도 모르고 있습니다. 이 부분은 앞으로 인식의 전환이 필요한 대목인데요. 근화가 무궁화가 될 수 없는 이유는 일본이 원산지인 근화는 하루살이 단명 꽃이라는 겁니다. 그러니 무궁화가 될 수 없지요.
안창호 선생은 분명히 “무궁화는 꽃 이름이 아니라 조선사람을 가리키는 말로 내가 새로 지었는데 대중들에게 꽃 이름으로 널리 알려졌다. 게다가 근화를 무궁화라고 선전한 데는 부왜 매국노들의 공작이 있었던 것 같다.’라는 취지의 말씀을 남겼습니다. 덧붙이자면, 무궁화가 그러한 상징적이며 비유적인 개념이라면 우리의 국화(國花)도 근화가 아닌 소나무, 진달래, 대나무 같은 우리나라꽃 중에서 선정해야 옳을 것입니다.”
- 끝으로 애국가 이야기를 좀 벗어나지만, 선생님은 창작판소리에 큰 애정을 가지신 것으로 아는데, 창작판소리는 무엇이고, 요즘 젊은 소리꾼들의 판소리 유형과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전해지는 옛 다섯 바탕만 부른다면, 판소리가 더는 발전할 수 없는 옛것으로만 남을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판소리의 기본을 지키면서도 새로운 이야기(소재)를 더 창조해나갈 필요가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창작판소리인 것이지요. 요즘 인기있는 젊은 소리꾼들이 하는 것들은 판소리를 대중에게 쉽고 재미있게 다가설 수 있도록 퍼포먼스를 곁들이는 것으로 나름 필요하고 큰 성공을 거둔 점도 있지만, 근본적으로 창작판소리와는 그 결이 다른 것입니다.”
무려 3시간이 넘는 대담이었다. 하지만, 임진택 선생도 기자도 전혀 지루하다는 생각을 할 틈이 없었다. 선생은 분명한 어조로 말을 이어 나갔지만, 흥분하거나 격정에 휩싸이지 않고 담담하게 이야기를 이끌었다. 이런 ‘겨레운동’을 하지 않는다고 해도 아무도 나무랄 사람이 없을 테지만, 선생은 “나 같은 자유분방한 문화운동가가 아니면 누가 하겠습니까? 아마도 공적인 직함을 가지고 있으면 할 수 없는 일이겠지요.” 하면서 너털웃음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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