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움의 기쁨을 아는가?

2021.01.27 11:17:18

영원한 청춘이셨던 황병기 선생님을 그리며
[이동식의 솔바람과 송순주 82]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나는 현재 공자보다도 더 오래 살고 있지만, 인생 칠십에 배우는 것보다 더 기쁜 일이 없음을 깨닫고 있다. 지금 이 나이에 배워서 뭐하냐는 말들을 하지만 사람은 죽을 때까지 배워야 하고, 배우지 않을 수 없는 존재이다. 어디에 써먹으려고 배우는 것보다도 배우는 것 자체가 기쁘고 행복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흔히 들을 수 있는 이런 말도 세상에서 크게 성공하신 분들로부터 들으면 그 의미가 새로워질 수 있다. 위의 말을 한 사람은 가야금 음악가이신 황병기 님이다. 가야금 연주가로 많이 알려져 있지만 황병기 선생은 2013년에 갑자기 《논어 백 가락》이란 책을 내셨는데 공자의 어록이라고 할 《논어》의 가장 유명한 첫 문장인 "배우고 때때로 그것을 익히면 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라는 귀절을 설명하면서 배움의 중요성을 다시 말씀하신다.

 

 

이 책이 나온 2013년에 황병기 선생은 77살이셨다. 말하자면 70대 후반에 접어든 때인데, 이 때에도 배움의 중요성, 아니 배움의 즐거움과 기쁨에 대해서 잔잔하게 말씀을 하신다.​

 

"아무리 노인이 되어도 뭔가를 알고 배우려는 게 사람이다. 노인도 세상 뉴스는 알고 싶고 손주들이 어떻게 지내는 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는데 이것도 배움의 일종이다. 그런 것을 알아서 무엇하냐고 할 수 없는 것이다.“

 

사실 이같은 말은 너무나 많이 들을 수 있는 말이다. 그런데 황병기 선생이 말씀하시니 의미가 새롭다. 음악가이면서도 논어를 열심히 읽으셨고 그 맛에 심취를 해서 자신이 좋아하는 명 귀절 100개를 뽑아서 출력을 해서 가슴에 품고 다니시며 가끔 그것을 꺼내보시며 즐거워 하신 분이니 말이다. 그 한 편 한 편이 다 노래가락 혹은 가야금 곡의 가락이라는 뜻으로 《논어 백 가락》이라고 하신 것 같다. 황 선생님은 천재로 다 알려져 있으니 이 정도는 거의 다 외우고 계셨겠지만 그래도 확인해야한다고 갖고 다니시며, 백남준문화재단의 이사장을 맡고 계시던 그 때에 우리에게 그것을 꺼내어 보여주기도 하셨다.​

 

《논어》라는 책은 유교의 가장 중요한 경전이지만 사람들에게는 몹시 어렵지도 않아서 많이들 보는데 그 진정한 맛은 잘 모르는 것이 사실이다. "학이시습지 불역열호~~ 하면서 한문을 우리말로 몇 번 읽고 이어 "유붕이 자원방래하니 불역열호~~"등까지만 외우고는 마치 논어를 다 읽은 것처럼 그다음에는 다시 보지를 않는다. 그런데 황병기 선생은 이 논어를 지극히 좋아하셨기에 첫 문장부터 논어가 좋은 이유를 설명해 나간다.​

 

"나는 이 문장의 묘미가 강요하지 않는 여유로운 태도에 있다고 본다. 먼저 '열심히'라고 하지 않고 '때때로'라고 한 것에 눈길이 간다. '열심히'는 강요하는 어투인데 '때때로'는 '틈틈히' 또는 '네가 하고싶을 때에'처럼 듣는 이에게 넉넉한 기분을 주는 부드러운 어투이다. 그리고 '이것이' 또는 '이것이야말로'가 아니라 '이 또한'은 '다른 것도 있겠지만 이것도'처럼 여유로움을 느끼게 한다. 그리고 마지막에 '기쁘다'라고 단정하지 않고, '기쁘지 아니한가'라고 듣는 이의 의견을 묻는 형식을 취한 것은 참으로 민주적인 화법이라고 하겠다. 얼마나 여유롭고 부드러운 물음인가!"

 

필자가 백남준문화재단에서 이태행 상임이사와 함께 이사장으로 모셨을 때 황병기 선생님은 70대 후반이라는 연세가 무색하리만큼 건강하고 열정적이었고 가끔 공식 무대에 올라가 연주도 하셨다. 그러면서도 항상 새로운 것에 관심을 쏟았고 무언가를 배우려 하셨고 고등학교 선배이자 예술적인 지기였던 백남준의 예술정신을 이 땅에서 다시 꽃피우자고 애를 많이 쓰셨다. 그런 가운데 주변에서 나이 드신 분들이 무료하게 시간을 보내는 것에 대해 안타까워 하면서 노인들이 무료함을 없애는 가장 좋은 방법이 '배움'이라고 힘을 주셨다.

 

특히 사모님이 황병기 선생보다는 연상이셔서 당시 팔십을 넘으셨는데 사모님을 권해서 문화센터에서 중국어 수채화 미술사 등과 함께 사교춤을 배우도록 했는데 배우신 분이 무척 즐거워하셨다고 회상한다. 다만 논어의 구절 가운데 "배우기만 하고 생각하지 않으면 어두워지고, 생각만 하고 배우지 않으면 위태로워진다"(<위정>편 15장)는 부분을 인용하면서 아무리 배움이 중요하더라도 자신이 주체적으로 생각하지 않으면 맹목적으로 무엇에 씌운 듯이 되어버린다고 경계의 말을 잊지 않으셨다.​

 

그렇게 건강하고 무대에서도 조금도 흐트러짐 없이 연주를 잘 하시던 황선생님이 2017년 12월 한창 강추위가 덮쳤을 때에 걸리신 감기가 급성 폐렴이 되었는데 지병인 당뇨 때문에 회복이 어려워져 이듬해 1월31일에 세상을 하직 하셨다. 정말로 천추의 한이고 우리 음악계로서 문화예술계로서 큰 손실이었다. 돌아가신 지 2주기였던 지난해 초부터 황 선생님이 남긴 가야금 곡들을 제자들이 연주하는 추모연주회가 몇 번이고 기획됐었지만 코로나19사태로 결국엔 한번도 공연을 하지 못하고 미뤄지다가 이제 돌아가신지 3년을 맞게 되었다.

 

우리가 3년상으로 장례를 정리하듯이 망자에 대해서 3년이 지나면 일단 긴 이별로 들어가는 것이기에 엊그제 돌아가신 것 같은 느낌이 벌써 아득한 시간으로 흘러 들어가 우리가 고인의 인간과 그 업적과 정신을 잊어버리지 않을까 두렵다.​

 

돌아가셨을 때 얼치기로 한시를 하나 지었었는데 그것을 조금 바꾸어 다시 읽어본다.

 

十二絃仙獨降世  12줄 신선 홀로 이 땅에 내려와

芳華琴樂無邊展  가야금 멋진 세상 우리에게 열어주셨네

乘雪歸天旣三載  춘설 타고 올라가시고 훌쩍 3년

月明暗香猶更羨  밝은 달밤 진한 향기 더 그립네

 

 

​황 선생님은 《《논어 백 가락》의 마지막 부분에서 음악가답게 공자가 음악의 중요성에 대해 말한 것을 우리에게 상기시켜주신다. 선생님이 평생 추구하신 길이었기에 바른 음악이 길게 이어지기를 염원하면서 쓰신 글이라 하겠다.​

 

"공자는 사람이 음악에서 완성된다고 했으니, 음악을 이렇게까지 극찬한 사람이 인류 역사에 없을 것 같다. 공자는 음악을 열심히 듣고 잘하면 재청을 하고는 이에 맞추어 자신과 함께 부르는 음악매니아였다. 공자는 좋음 음악을 듣고는 석 달 동안 고기맛을 잊고 감탄한 분이기도 하다. 위대한 음악은 아름다움을 다할 뿐 아니라 선함도 다하는 것이라고 했다. 무엇보다도 사람은 음악에서 완성된다는 명언을 남겼다. 인본주의자이자 생명주의자인 공자가 '사람은 음악에서 완성된다.'라고 한 것은 지언이라 하겠다."

 

황병기 선생님에 대해서는 추억할 것이 많지만 부끄러워진다. 나이를 잊으신 채로 일에 모두하고 새로운 것을 찾아가시고 새로운 공부를 하는 영원한 청춘의 정신, 나는 그것을 제대로 이어받고 있나? 새해를 맞아 지난해를 후회하며 새로운 다짐을 하다가도 어느새 중단하지 않았던가? 80이 넘어서 사교댄스를 배우신 사모님도 있는데 지금 나는 무엇을 하고 있나?

 

음악인으로서도 언제나 끝없이 새로움을 추구하던 황병기 선생님, 그래서 가야금으로 전인미답의 길을 우리에게 유산으로 물려주신 선생님을 3주기에 다시 추억한다. 선생님의 그 젊은 도전과 암만 나이가 들어도 배워야 한다는 그 가르침을 잊지 않고 살려내야겠다는 결심을 다시 한번 해본다.

 

이동식 인문탐험가 lds@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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