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의 집터 다지는 소리를 재현해 온 방영기

2021.06.14 21:47:52

[서한범 교수의 우리음악 이야기 528]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판교 널다리 쌍용 거 줄다리기>의 발굴과 재현에 관한 이야기를 하였다. 농촌이 하루아침에 현대화되는 환경속에서, 이와 같은 옛 민속놀음이 온전하게 보존되기 쉽지 않은데, 방영기 명창과 같은 토박이 소리꾼들의 참여와 봉사로 재현되고 있다고 이야기하였다.

 

이번 주에는 <이무술 집터다지는 소리>에 관한 이야기다.

글쓴이는 방영기 명창의 소리인생 50주년 기념 공연에 다음과 같은 축사를 보낸 바 있다.

 

“이날, 우리가 관심 있게 지켜볼 순서는 <이무술 집터 다지는소리>다. ‘이무술’은 현 성남시 분당구 이매동(二梅洞)의 옛 이름이며 이 지역에 전승되고 있는 향토색이 짙은 민속놀이의 하나다.

 

‘지경다지는 소리’는 여러 일꾼들이 큰 돌을 높이 들었다, 놓았다 하며 땅을 다지는 소리인데, 중노동의 힘든 과정을 잊고 작업성과를 올리려면 반드시 조건이 있다. 그 조건이란 장단에 맞추어 불러야 한다는 점이다.

 

 

이 소리는 경기 중부지역의 음악적 토리와 특색있는 선율이 그 가치를 높여온 소리제지만, 안타깝게도 이 지역의 현대화는 신명을 북돋우던 노동요도 잊게 했고, 가정과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던 고사와 덕담의 향토색 짙은 민속놀이도 단절시켜 버렸다.

 

그러나 다행한 것은 성남시가 2017년 1월, 이 <집터 다지는 소리>를 성남시 향토문화재로 지정하고, 앞으로 더더욱 적극적으로 보존, 전승해 나가겠다는 의지를 표명하였다는 점이다. 2년 전 경기도 민속예술제에서는 31개 시ㆍ군이 출품한 작품중에서 <이무술 집터 다지는 소리>를 <최우수상>으로 선정했다. 이는 누구보다도 소리꾼으로서 널리 알려진 방영기 명창과 성남문화원이 앞장서서 고장의 민속 예술을 조사하고 발굴하여 재현하는 작업을 지속해왔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으로 보고 있다.

 

성남시가 낳은 소리꾼이며, 오늘의 주인공 방영기 명창의 소리는 이제 경기도를 넘어, 전국으로 퍼져나가고 있는 상황에서 그의 소리는 이제 국가가 지켜 주어야 할 시점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그의 건강과 활발한 전승활동을 기원한다.”

 

발굴 당시에는 <성남 집터 다지는 소리>로 부르다가 지역마다 특징있는 소리가 발굴되는 시점에서 <이무술 집터다지는 소리> 곧 지역의 이름을 사용하였다고 한다.

 

 

예부터 집터 다지는 소리를 ‘지경다지는 소리’라고 했다. 대원군이 경복궁을 중건할 당시에도 전국에서 올라온 일꾼들은 함께 줄을 꼬고, 땅을 다지며 초지경, 자진 지경소리 등을 불렀다고 한다. 민가(民家)를 새로 지을 때도 터를 잡고, 그 일대의 지반을 튼튼하게 다져야 하는 것은 기본이다. 자칫, 이 과정을 소홀히 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사상누각(砂上樓閣)l 이 되는 것을 방지해야만 한다. 큰 돌을 들고, 놓는 중노동에 장단과 소리가 없다면 그 힘든 그 과정을 어떻게 이겨낼 수 있었겠는가, 능률과 성과를 올리기 위한 합창의 소리가 바로 ‘집터 다지는 소리’인 것이다.

 

전통사회에서는 자손을 분가시키거나 이사가서 새로 집을 짓거나, 또는 증축할 때는 반드시 집터를 닦고, 그 지반을 튼튼하게 다져야 했다. 지반을 다지면서 집을 지은 뒤의 복록을 빌고, 아울러 집을 짓는 동안의 안녕, 그리고 평안을 기원하는 고사덕담은 당연한 과정이었다.

 

진행 순서에서 처음에는 <동아줄 디리는 소리>가 나오는데, 선소리꾼이 앞소리를 메기게 되면, 모든 지경꾼들은 일제히 후렴구를 받는다. ‘메기고 받는 형식’은 노동요의 대표적인 음악형식이다. 메긴다는 말은 홀로 선창을 한다는 순우리말인데, 메기는 선창자는 목이 좋아야 하고, 문서(노래가사)가 풍부하여 다양한 노랫말을 이어나가야 할 책임이 따른다. 그 뒤를 이어 본격적인 <가래질 소리>나, <지경다지기 소리>, <자진지경 다지기 소리>, <이어차, 이어차 소리>, <외마디 소리>, <뒷놀이>, <판굿> 등이 수준높게 전승되고 있는 것이다.

 

노동에 참여하는 전원을 능숙하게 통솔하려면 선창자는 무엇보다도 목청이 좋아야 하고 소리가 힘차야 한다. 누가 선창자의 역할을 맡느냐 하는 문제는 노동의 효율을 생각할 때, 여간 중요한 조건이 아닐 수 없다. 갑이 소리를 메기게 되면, 모두가 피곤을 잊고 작업성과를 올릴 수도 있으나, 을이 메기면 피로가 더더욱 쌓여간다는 점도 충분히 이해될 것이다.

 

성남의 <이무술 집터 다지는 소리>에는 방영기라는 걸쭉한 국가문화재급 명창이 존재하고 있어서 전승교육이나, 공연, 기타의 소리보존은 걱정을 덜고 있다. 그는 어려서부터 산타령이나 경기소리를 몸에 익혔기에 누구보다도 살아있는 경험을 체득한 선소리꾼으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그가 선소리를 메기면 자연스럽게 동화가 된다고 지경꾼들은 실토한다.

 

그 위에 방영기는 옛 명인들이 부른 방법대로 처음부터 소리를 하지 않고, 지경꾼들의 마음을 하나로 묶는 구수한 덕담 곧 <아니리>로 시작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좌우편 지경님네.~ <예~>

자 오늘 이 터전을 다져주면 떡 쌀이 서가마, 서말, 서대, 서홉, 서짝이니, 옛날 옛적 옛 소리를 우럭 유력해봅시다.~ <예~>

 

본절을 내기 전, 선소리꾼이 먼저 지경꾼들의 마음을 자연스럽게 모으고 시작하는 것이다. 현재, 집터 다지는 모습은 쉽게 볼 수 없는 상황이 되었지만, 그 노래들이 재현, 공연되고 있다는 사실은 참으로 다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성남시와 문화원 가족들, 그리고 <이무술 집터 다지는 소리 보존회>의 방영기 회장과 회원 모두에게 격려의 큰 박수를 보낸드린다. (다음 주에 계속)

 

 

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suhilkwa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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