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우여곡절 끝에 서른 넘어 본격적으로 활을 잡기 시작했을 때, 나는 비로소 내가 꿈꾸던 영웅의 모습에 한 발짝 다가선 것 같아 가슴이 벅차올랐다. 활을 잡을 때마다 가슴속에서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호연지기가 솟아오르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그러한 감정은 활을 잡은 지 4년 차가 된 지금도 변함없다. 활터에 오를 때마다 나는 영웅이 된다. 그래서 나에게 활쏘기란 영웅이 되고 싶었던 한 소년의 꿈이다. 실제로 활쏘기를 배워보니 이렇게 매력적인 운동도 없는 것 같다.” - 《살짜쿵 활쏘기》머리말에서-
2주 전, 평소 알고 있던 서른네 살의 청년 김경준이 활쏘기 책을 냈다고 연락을 해왔다. 오잉? 4년 배운 실력으로 책까지? 싶었는데 ‘정성스러운 손글씨 사인’을 집어넣은 책 한 권이 그제 연구소에 도착했다. “우리의 역사와 선조들의 얼을 알리기 위해 늘 애써 주심에 감사드리며 전통 국궁 발전을 위해 함께 힘써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저자 김경준 드림-
앙증맞다고 해야 할까? 예전의 문고본(文庫本, 흔히 문고판)이라고 부르던 손안에 쏙 들어오는 크기의 책을 펼쳐보니 김경준 작가의 ‘활쏘기의 모든 것’이 한눈에 들어왔다. 도대체 무슨 내용일까 싶어 단숨에 읽어 내려갔다.
1장 활을 만나다, 2장 활에 빠지다, 3장 이순신과 나, 4장 우리활ㆍ활터 이야기, 5장 활쏘기가 주는 깨달음으로 구성된 각 장에는 28꼭지의 글들이 들어 있었다. 책장을 덮었을 때, 28꼭지의 글들이 하나같이 완성도 높은 수필 한 편을 읽는 느낌으로 신선했다. 물론 활쏘기와 관련된 것들이었지만, 단순히 취미 삼아 시작한 그런 스포츠(?) 이야기가 아니라는 점이 인상적이다.
“개인적인 추측이지만 요즘 MZ세대(20-30세)에게는 남들이 다 하는 것보다는 뭔가 희소 값어치가 있는 특별한 문화를 누리는 것에 대한 욕구가 있는 것 같습니다. 안타깝지만 오늘날 국궁은 ‘소수의 문화’입니다. 바로 그 소수의 문화라는 점에 젊은 사람들이 더 매력을 느끼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이는 두 해 전(2024.6.17.) 김경준 작가가 활쏘기하는 서울 강서구 우장산공원에 있는 공항정(空港亭)을 찾아갔을 때 한 말이다. 이를 입증하는 듯 김 작가는 《살짜쿵 활쏘기》에서 활쏘기를 시작한 사람들에게 “여러분은 왜 국궁(활쏘기)을 하십시까?”라는 질문을 던졌다고 했다. 30대의 경우에는 어릴 적 사극을 보면서 활쏘기에 대한 로망이 생겼으며 소수의 문화에 흥미를 느낀 사람들이 많았다고 했다. 반면, 40대 이상은 건강과 노후에 지속할 수 있을 것 같아서라는 답을 했다고 했다.
어릴적 로망이든 노후 건강을 위한 선택이든 ‘활쏘기’에 관심을 갖는 층이 늘어나고 있다는 이야기는 좋은 현상 같다. 솔직히 기자만 해도 활쏘기를 자신이 직접 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해본적이 없을 뿐더러 집 근처에 있는 국궁장을 지나다니면서도 거기는 ‘나이 든 어르신이나 남성들의 전유물’ 쯤으로 여겨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살짜쿵 활쏘기》 책의 속살을 들여다보면서 ‘나도 활을 시작해보고 싶다’라는 생각이 스멀스멀 들었다.
김경준 작가의 《살짜쿵 활쏘기》를 읽으면서 그가 역사인식과 전통에 대한 나름의 확고한 철학을 지닌 젊은이라는 것을 새삼 느꼈다. 두가지 점을 든다면 첫째는 활쏘기라는 낱말에 대한 그의 시선이다.
“궁도(弓道)라는 단어는 일제강점기 이후 정착된 일본식 표현이다. 과거 문헌을 살펴보면 궁도라는 단어는 일제강점기 이전까지는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전통적으로 우리 선조들은 사예(射藝), 사후(射帿), 궁술(弓術) 등으로 활쏘기를 표현해 왔다면서 구태여 한자어를 쓴다면 궁도(弓道)보다는 국궁(國弓)이 낫고 더 좋은 것은 우리말 ‘활쏘기’가 바람직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일제강점기 당시 우리 전통 활쏘기의 명맥을 보존하기 위해 조직된 단체 이름도<조선궁술연구회>였고, 독립운동가이자 한글학자였던 이중화(2013, 애족장 추서)의 활쏘기 교본 이름도 《조선의 궁술》이었음을 상기시키고 있는 점이다.
-4장 우리말, 활터 이야기 (일제 쇠말뚝을 연상케하는 ‘궁도’ 153쪽-
다른 한 가지는 그가 단순한 활쏘기의 ‘궁술(弓術)’을 뛰어넘어 삶에 대한 진지한 깨달음을 익혀가고 있다는 점이다. 김경준 작가는 《삼국지(三國志)》의 위나라 학자 동우(董遇)의 예를 들어 제자들이 "공부할 시간이 없다"고 핑계를 대자, 학문을 닦는 데는 '세 가지 남는 시간(여유)'만 있어도 충분하다고 한 고사를 좋아한다고 했다.
겨울(冬者歲之餘): 한 해의 농사가 끝나고 남는 시간.
밤(夜者日之餘): 하루의 일과를 마치고 잠들기 전 남는 시간.
비 오는 날(陰雨者時之餘): 비가 와서 바깥일을 할 수 없는 때 남는 시간
- 5장 활쏘기가 주는 깨달음(대기만성을 배우다) 189쪽 -
김 작가가 활을 만지기 시작한 것은 대학 3학년이던 2013년, 그리고 본격적으로 활쏘기에 몰입한 것은 4년 전 일이다. 그는 초몰기 곧 1순(5발)을 모두 과녁에 맞히는 일을 2년만에 이뤘다고 했다. 느린편이다. 그리고 이후에도 실력이 늘지 않아 ‘한때는 그만둘까’를 고민하기도 했다. 하지만 실력이란 반복적인 훈련에 있는 것임을 깨닫게 된다. 곧 대기만성(大器晩成)의 진정한 뜻을 이해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 얼마나 훌륭한 일이던가! 요즘 젊은이든 중장년이든 즉각적인 보상과 '한탕'을 쫓는 '숏폼' 형태의 성공에 매몰되어가는 사람들이 늘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 타인과 끊임없이 견주며 조급함을 느끼고, 깊이 있는 내공을 쌓기보다 당장 화려한 결과물을 보여줘야 한다는 압박감에 쉽게 무력감을 느끼는 사람들도 눈에 많이 띈다.
취미로 선택한 “활쏘기”에서 삶의 완급을 이해하고 탄탄한 자기 철학이 내재된 미래를 가꿔가는 30대의 김경준 작가! 한국인 특히 젊은이들이 ‘국궁’이 지닌 무한한 에너지와 가능성을 이 책을 통해 얻길 바라는 마음으로 책장을 덮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