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나라를 위해 끝내 목숨을 바친 조선의 마지막 선비 면암 최익현 선생의 삶과 정신이 무대 위에서 되살아났습니다. 충청남도 청양군은 지난해 11월 창작 뮤지컬 <마지막 선비 – 면암 최익현>을 선보였는데 이 작품은 의병정신의 뿌리를 조명하는 작품이었습니다. 그런데 최익현 선생에게 돋보이는 것 가운데는 ‘지부상소’가 있습니다. ‘지부상소(持斧上疏)’는 지닐 ‘지(持)’ 자에 도끼 ‘부(斧)’ 자를 쓰는데 곧 도끼를 옆에 놓고, 상소를 올린다는 것입니다.
이는 신하로서 내가 올리는 상소가 부당하고 받아들일 수 없다면 이 도끼로 나의 목을 치라는 것이어서 폭군이라도 부담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지부상소는 고려시대 충선왕의 실정을 지적하는 우탁 선생의 상소로부터 시작합니다. 그 뒤 조선 중기 수렴청정을 하며 실권을 휘두르던 문정왕후를 궁중의 한낱 과부로 깎아내린 남명 조식의 상소, 조선 말기 병자수호조약에 반대해 올린 면암 최익현 선생의 상소까지 목숨을 건 상소들이 있었습니다.
그뿐만이 아니라 조선시대 임금에게 가장 격렬한 그리고 용기 있는 상소문을 올린 이는 헌종 때 겨우 열다섯 살이었던 기생 초월(楚月)을 들 수 있습니다. 자신의 미욱한 남편부터 시작하여 권세가의 살찌는 곳간, 갓난아이에게까지 물리는 병역세는 물론 임금의 주색(酒色)에 이르기까지 낱낱이 고하고 “엎드려 원하오니 신을 죄주는 게 타당하다면 수레에 신의 팔다리를 매어 찢어 죽이는 차열(車裂)형에 처하고 종로 큰길 위에 조리돌린 뒤 서소문 밖에서 능지처참하여 만 사람의 혼이 돌아보지 않게 하소서.”라고 외쳤습니다. ‘12.3 내란’ 때 '지부상소’를 올리는 이가 있었다면 계엄은 불발되었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