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을 퍼담아 내님 손톱을 담그다

2021.06.19 11:26:41

[우리문화신문과 함께 하는 시마을 64]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노 을

 

                       - 백성일

 

       서녘 하늘 붉게

       이글거리는 노을

       아무도 모르게

       한 바가지 퍼담아

       늦은 저녁나절

       울타리 물주는 내님

       손톱을 슬쩍 담갔더니

       봉숭아 꽃물

       붉게 물들었네

 

 

 

 

우리 겨레의 풍속 가운데 입하와 소만 무렵에 있었던 것으로는 ‘봉숭아 물들이기’가 있었다. 《동국세시기》에 보면 "계집애들과 어린애들이 봉숭아를 따다가 백반에 섞어 짓찧어서 손톱에 물을 들인다."라는 기록이 있을 정도다. 봉숭아꽃이 피면 꽃과 잎을 섞어 찧은 다음 백반과 소금을 넣어 이것을 손톱에 얹고 호박잎, 피마자잎 또는 헝겊으로 감아 손톱에 붉은 물을 들인다. 이 풍속은 붉은색이 사악함을 물리친다는 데서 유래하였다. 첫눈이 내릴 때까지 손톱에 봉숭아물이 남아 있으면 첫사랑을 만나게 된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요즈음도 소만 무렵 손톱에 봉숭아물을 들이고 첫사랑을 기다리는 사람이 있을까?

 

노을에 대해 조병화 시인은 ‘해는 온종일 스스로의 열로 온 하늘을 핏빛으로 물들여놓고’라고 했고, 김규동 시인은 ‘노을은 신이 나서 붉은 물감을 함부로 칠하며 북을 치고 농부들같이 춤을 춘다’라고 했으며, 김광균 시인은 ‘보랏빛 색지 위에 마구 칠한 한 다발 장미’라고 노래했다.

 

그런데 여기 백성일 시인은 그의 시 <노을>에서 굳이 봉숭아까지 동원하지도 않고, 스스로의 열, 붉은 물감, 보랏빛 색지도 내놓지 않는다. 그저 ‘서녘 하늘 붉게 이글거리는 노을’을 아무도 모르게 퍼담아 울타리 물주는 내님 손톱을 슬쩍 담갔단다. 붉게 물든 내님의 손톱, 봉숭아물보다 더 아름다운 빛깔이려니... 그리고 그 물은 내님의 가슴 속에 담겨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것이려니...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김영조>

 

 

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pine996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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