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류의 시조새 ‘조선 BTS’

2022.01.07 11:57:26

K-콘텐츠 저력의 뿌리는 집단지성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한국국학진흥원(원장 정종섭)은 지난 1일, “조선시대 BTS”라는 주제로 스토리테마파크 웹진 담(談) 2022년 1월호를 펴냈다. 지구촌 돌림병으로 혼란한 시기에도 성공적으로 치른 방탄소년단(BTS)의 미국 공연은 보랏빛으로 물든 LA는 물론 공연장 사상 첫 매진 기록을 세웠다. 또한 K-콘텐츠로 불리는 K-게임 ‘도깨비’, K-웹드라마 ‘킹덤’과 ‘오징어게임’은 세계의 문화를 이끌고 있다.

 

이번 웹진에서는 조선시대 선인 가운데 자랑스러운 우리의 문화특사 곧, 세계에 원조 한류로 이름을 날렸던 선인들의 일화를 소개하고자 한다.

 

튼튼한 국경과 열린 지갑에서 찾아온 문화 황금기

 

강유현 작가의 [발견된 “높은 문화의 힘”]에서는 문화의 황금기는 생활을 풍족하게 하는 여유로운 마음과 지갑에서 비롯된다는 원리를 조선시대 속 작품과 작가들을 통하여 설명한다.

 

역사적으로 문화가 꽃피어 그 향기를 멀리 퍼뜨린 순간들은 르네상스의 경우 금융을 바탕으로 한 피렌체의 경제력 위에서, ‘벨 에포크’는 산업혁명으로 형성된 막대한 자본 위에서, 미국의 ‘광란의 20년대’와 일본의 ‘다이쇼 로망’은 제1차 세계대전으로부터 비롯한 호황 위에 피어났다. 생활이 풍족해진 사람들은 상류층이 누리는 예술 후원과 작품 구매에 뛰어들게 되고, 후원자가 많아지면 예술가들은 더 많은 작품을 창작하게 되므로 신규 예술가들도 늘어난다.

 

18세기 조선에서도 양란 이후의 경제발전에 힘입은 문예문화가 부흥하여 겸재 정선과 단원 김홍도 등 독자적인 화풍을 구사하는 화가들이 등장하였다. 그 배경에는 도화서에 대한 왕실의 관심과 자본을 축적한 특정 계층의 골동서화 취미의 확산이 있었다. 당대 중국 문인들의 취미와도 맞아떨어져 그림이 중국에서 유명해졌고 그림을 구하려고 애썼기에 많이 그려졌다. 오늘날 정선의 그림이 많이 남아있는 까닭이기도 하다.

 

17세기에 통신사 수행 화원으로 갔던 김명국은 조선보다 일본에서 더 많은 인기가 있었다. 당대 일본에서는 달마도와 같은 선승화가 유행 중이었다. 김명국의 화풍이 당시 경향에 딱 들어맞아 일본인들이 글씨와 그림을 청하기 위해 구름같이 모여들었다. 김명국은 사후 반세기나 지난 18세기가 되어서야 조선에서 재평가받았다. 김명국에 대한 재평가도 다양한 취향이 존중받을 만한 여유가 생겼기에 이루어질 수 있었다.

 

 

그러나 김명국이 일본에 갔던 그 시기 아리타[有田]에서는 임진왜란 때 납치된 조선인 도공 이삼평이 도자기를 굽고 있었다. 일본의 국익 창출에 큰 공을 세운 이삼평은 죽은 뒤 도조(陶祖)로 모셔졌고, 가마를 만든 지 300년이 된 1916년에 기념비를 세우고 도조제를 지낼 정도로 추앙받았다. 같은 해 조선에서는 고려자기의 아름다움에 반한 이토 히로부미를 비롯한 자기 애호가들은 도굴하여 소유하거나, 조선인 스스로 도굴을 직업 삼았고 해당 작품들은 팔려나갔다. 침략을 막을 수 있는 군사력을 갖추지 못한다면 “높은 문화의 힘”은 그저 약탈의 대상일 뿐이다.

 

청나라 사신의 넋을 빼놓는 산대연희 일본인들이 감탄하는 마상재

 

 

이문영 작가는 [정생의 연희일기]에서 양줏골 훈장인 정생이 세달 동안 천자문을 가르쳤던 오명하가 과거 급제하여 금의환향하면서 열린 유가(遊街, 과거 급제자가 하는 거리 행진)를 구경하면서 펼쳐지는 이야기가 풍속화를 보듯이 생생하다. 유가에는 광대 무리인 걸립패와 기생들이 연주도 하고 재주도 부리며 흥을 돋우는데, 공을 공중에 돌리는 농환과 기생들의 검무, 버나잡이가 대나무 막대로 대접을 돌리는 등 흥겨운 분위기에 어름사니가 부채를 펼쳐 들고 장대 위에 올라 동아줄 위로 발을 옮기며 청나라 사신 앞에서 펼치는 산대연희에서 넋을 놓고 본다고 본인들의 자랑을 늘어놓자 술에 취한 박선달이 흥을 깬다.

 

박선달은 본인이 마상재(馬上才)로 일본에 가서 기를 죽였다며 이 정도는 되어야 국위를 떨친 것이라며 걸립패를 깎아 내렸다. 어름사니는 박선달의 말을 조목조목 반박하기 시작한다.

 

마상재는 최고 우수 군관이 하는데 ‘선달(무과에 급제한 자)’이라고 불린다는 것과 최근 간 통신사에는 마상재를 할 군관이 동행하지 않았고, 영묘(영조) 때인 갑신년(1764)에 일본에 갔었다며 그렇다면 60년 전 이야기인데 그때 박선달은 젖먹이였다고 동아줄 위에서 곡예를 선보이며 진실을 까발린다. 이처럼 계속 회자될 정도로 유명한 조선통신사의 마상재는 말을 타고 재주를 부리는 무술로 정조가 편찬한 《무예도보통지》에도 실렸다. 서커스단을 흔히 곡마단(曲馬團)이라고 불렀는데, 그 이름의 유래도 마상재에서 왔을 정도로 그 곡예는 일본인들도 감탄해 마지않았다.

 

고국으로 돌아갈 날만 기다리는 포로들의 자긍심, 조선통신사 행렬

 

서은경 작가의 [조선의 얼굴]에서는 임진왜란 때 일본으로 납치된 포로의 후손인 홍호연의 이야기를 각색하여 웹툰으로 소개한다. 납치되어 무장으로 지내는 관점에서 조선통신사 행렬을 보며 조선의 문화 수준에 자긍심을 가지면서, 언젠가 반드시 고향으로 돌아가겠다는 조선인의 고통스러운 다짐을 나타냈다. 조선은 임진왜란 뒤 일본에 납치된 조선인을 돌아오게 하고 그 외 중요 요구 조건을 전하기 위해 조선통신사를 일본으로 200년 동안 보냈고, 일본은 융숭한 대접을 해주며 200년 동안 두 나라는 평화로웠다.

 

 

중국의 종잇값을 치솟게 한 16세기 알파걸 허난설헌

 

시나리오 작가 홍윤정은 [미디어로 본 역사 이야기-내 손에 쥔 것이 의외로 휴지가 아닐지 몰라]에서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넷플릭스의 드라마 <오징어 게임>, <지옥> 등이 어디서도 보지 못한 기상천외한 이야기는 아니나 오히려 누구나 생각해보았음 직한 소재를, 익숙한 방식으로 풀어내되, 한국적 특수성을 ‘나, 지금, 여기’의 상황으로 조금 비틀어 발전시키는 힘이야말로 좋은 콘텐츠를 만드는 결정적인 능력이라고 이야기한다.

 

K-콘텐츠, K-컬처가 세계를 사로잡은 건 근래의 일이지만 16세기 알파걸(다방면에 남학생보다 더 뛰어난 능력을 발휘하는 여학생) 허난설헌(許蘭雪軒, 1563~1589)이 남긴 일화도 별다르지 않았다. 허난설헌은 여성이면서도 ‘난설헌’이라는 호와 ‘경번(景樊)’이라는 자를 갖게 된 집안 환경에서 자랐지만, 혼인 이후 그 인생이 달라졌다.

 

스물일곱의 나이에 삶을 마감하면서 동생 허균에게 자신의 시를 모두 태워버리라는 유언을 남겼지만 차마 누이의 인생이나 마찬가지였던 시를 세상에서 지워버릴 수 없었던 허균은 외우고 있던 누이의 시를 다시 베껴 써 《난설헌집》이란 책으로 묶어 세상에 내놓는다. 허균은 이 책을 중국 사신인 주지번에게 주었고, 그녀의 시는 명나라에까지 알려졌다. 《난설헌집》의 인기 때문에 당시 중국의 종잇값이 높아진다는 말이 있을 정도였고, 일본에서 역시 출간되어 많은 사람에게 읽히고 인용되었다.

 

작가는 만약 중국과 일본에서 《난설헌집》을 높이 평가하지 않았다면 현대의 우리는 난설헌을 지금만큼이라도 생각할까 하는 의문을 남긴다. 한류는 외부의 누구로부터 평가받기 이전에 우리의 역량을 믿고, 우리가 만족할 수 있는 최선의 것을 만들어 가는 데서 시작한다. 그것은 멀리 있지 않고 이제껏 내 손에 쥐고 있던 것이 휴지가 아니라, 보석일지 모른다고 이야기를 마친다.

 

 

 

또한, 이번 호에서는 <제2회 전통 기록문화 활용 영화 시나리오 공모전> 대상 수상자인 시나리오 [금주시대]의 임찬익 작가 인터뷰를 만나볼 수 있다. 재위 50년이 넘는 기간 동안, 강력한 금주령을 시행한 영조의 기록에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강명관 교수의 책 《조선의 뒷골목 풍경》에서 금주령에 관한 것을 읽은 후 ‘금주령을 오랫동안 시행할 동안 본인과 같은 애주가들은 어떻게 지냈을까’라고 생각해 본 것이 집필의 계기였다고 한다.

 

영조는 형조 별제 이지량에게 비밀리에 술을 만들어 파는 최대 밀주 조직의 뒷배를 잡으라고 명한다. 이지량은 비밀음주단속기구 불촉단(不觸團)을 구성해 절로 위장하여 술을 제조해 파는 밀주 조직 뒤에 있는 좌의정 홍인한을 찾는다. 이처럼 공무원이 결탁한 불법조직을 묘사하고, 마시는 술의 종류가 탁주냐 청주냐에 따라 표현한 신분의 고하, 지물전ㆍ서점ㆍ절에서 국법을 어기고 술장사하는 모습을 묘사함으로써 돌림병이 퍼진 동안 술집 영업을 제한해도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영업을 이어나가는 현대의 모습들을 투영했다.

 

작가는 본 작품을 통해 관객들이 적당히 마시면 분위기를 살리고 사람을 기쁘게도 하지만 과하면 사람을 헤치기도 하고 평생 후회할 일도 만드는 ‘술이란 물질의 딜레마’에 대해 생각할 수 있었으면 한다는 소감을 밝혔다.

 

[스토리이슈]에서는 한국국학진흥원에서는 학생들에게 ‘한국의 유교책판’의 값어치와 중요성을 알리기 위해 진행했던 <한국의 유교책판 체험 연수 프로그램>을 소개한다. 2015년 세계기록문화유산에 오른 ‘유교책판(儒敎冊版, Confucian Printing Woodblocks in Korea)’은 조선시대에 718종의 서책을 간행하기 위해 판각한 나무 책판이다. 필사로는 지식을 전파하기에 한계가 있으므로 더 널리 발자취를 후대에 전하고자 노력했던 한국 지식인의 500년 역사가 담긴 조선시대 집단지성의 모습이라고 볼 수 있다.

 

이번 호 웹진 편집장을 맡은 공병훈 교수는 “방탄소년단과 웹툰, 웹소설이 전 세계에 확산할 수 있었던 저력의 뿌리는 집단지성”에서 찾을 수 있다고 하며 “조선시대 학문과 출판에서 문중과 학맥, 서원과 지역 사회의 네트워크”와 “선비와 학생들이 함께 즐기고 공감한 학문과 무예, 시와 음악과 그림”에 대한 오랜 역사 속에서 이어져 왔다고 말한다. “우리의 집단지성 유전자가 본격적으로 새로운 봄을 준비하고 있다”라는 소감을 밝혔다.

 

한국국학진흥원에서 2011년부터 운영하는 스토리테마파크(http://story.ugyonet)에는 조선시대 일기류 250권을 기반으로 한 6,710건의 창작 소재가 구축되어 있으며, 검색 서비스를 지원하고 있다.

 

 

김영조 기자 pine996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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