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 사랑에 평생을 바친 김종택 교수의 '겨울나무'

2022.03.22 12:42:01

아림 김종택 제3시집 <겨울나무>

[우리문화신문= 이윤옥 기자]  아림 김종택 시인의 제3시집 《겨울나무》를 받아들고 아직 이른 봄밤을 밝히고 있다. 

 

“우리말 가운데서 가장 듣기 좋은 예쁜 말 하나를 고르라면 나는 망설임 없이 ‘봄’을 말하겠다. 말할 때 입술을 꽃봉오리처럼 쫑긋 내밀며 다문 모습도 예쁘지만, 그 소리도 너무 아름답기 때문이다.”라고 한 김종택 시인! 그가 좋아하는 말이 ‘봄’이듯 좋아하는 계절도 ‘봄’이 아닐까 싶다. 그런데 시집 제목은 왜 《겨울나무》일까?

 

시인은 말한다. “시집 제목을 ‘겨울나무’라 했는데 추위에 떨고 선 겨울나무는 온갖 고난을 딛고 긴 세월 굳게 살아온 한 여인의 일생이기도 하고, 다른 한 편으로는 뒤돌아본 나 자신의 삶이기도 하다.”고 말이다.

 

염색한 군용 사지 스봉은 단벌

몇 해 지나면 탈색되어 갈색이 드러나는데

여름이면 땀에 젖어

바짓가랑이 곳곳에 소금이 맺혔었지  - 멋진 대학생’ 가운데서 -

 

가난하고 배고픈 시절을 겪어서일까? 김 시인의 메밀 막국수집 풍경은 한 편의 수채화 같다. 

 

지하철 목동역 8번 출구 안골목에

다온 메밀 막국수집 있다

막국수 맛도 좋지만

다온이라는 이름이 너무 좋아

나는 그 집에 자주 간다

정답기도 하고 예쁘기도 한 그 이름

다온, 다온 메밀 막국수집

 

비빔국수 한 그릇에

강냉이 동동주 한 병 시키면

이미 나는 혼자가 아니다  - ‘다온 메밀 막국수집’ 가운데서 -

 

‘다온 메밀 막국수집’ 에서 느껴지는 것은 김 시인이 천상 국어학자라는 사실이다. 숨길 수 없는 직업병 같은 것, 국어 곧 우리말을 사랑하고 있다는 게 그대로 민낯처럼 드러나는 대목이다.

 

저녁밥을 먹었지만 얼큰한 비빔국수 한 그릇에 강냉이 동동주 한 병이 있다면 더없이 행복할 것 같은 봄밤이다. 거기에 동동주 한 병을 나눠 마실 대선배 김 시인과 함께라면 들어가던 시도 다시 나올 것만 같다. 시를 써야 한다. 명색이 ‘시인’이랍시고 부탁 받아 둔 시가 두어 편인데 좀처럼 실마리가 잡히질 않는다. 김종택 시인이라면 나처럼 이렇게 ‘시를 위한 시’를 쓰기 위해 발버둥 치지는 않았으리라.

 

 

그의 시어들은 하나같이 구름에 달 가듯이, 앞산 계곡 시냇물이 졸졸졸 막힘없이 흐르듯 유연하다. 그런 그도 ‘시인’이 아니라고 고백한다. 

 

시집을 두 권이나 내었으니

누가 나를 시인이라 해도

할 말은 없다

(가운데 줄임)

그런데 세상에는

시인이라는 이름을 걸고

무슨 대단한 영예인양 우쭐거리며

괴기한 짓거리를 하는 사람이 있다

가엾고 가엾을 뿐이다.  - ‘시인’ 가운데서 -

 

그러면서 별것도 아닌 사람들이 ‘시인’이라는 이름 하나 새겨 들고 행세 꽤 하고 있다고 질책한다. 아니 질책을 넘어 ‘괴기한 짓거리’라고까지 면박을 준다. 되돌아보니 나 자신, 여기서 자유로울 수 있나 싶다.  부끄럽다.

 

김종택 시인을 나는 ‘회장님’이라고 부른다. 여기서 ‘회장님’이란 무슨 재벌가의 회장님이 아니고 한글학회 회장으로 재직할 때부터의 인연으로 그렇게 부르고 있다. 김종택 회장님은 세상이 다 아는 것처럼 ‘우리말글살이’를 위해 평생을 바치신 분이다. 국어학자인 김 회장님께서 각별히 일본어 전공자인 필자를 귀여워(?)해 주시는 데는 ‘우리말 속에 들어있는 일본말 찌꺼기’ 작업을 꾸준히 하고 있는 점을 높이 샀기 때문인듯 하다.

 

마침 필자는 《한글 새소식》 (595호, 2022년 3월호)에 ‘진정한 독립, 우리말 속 일본말 청산해야’라는 제목의 글을 실었는데 이 글을 읽은 김 회장님께서 며칠 전 전화를 손수 걸어오셨다.

“아이쿠 회장님, 죄송합니다. 한 번 찾아 뵈어야하는데 코로나19 때문에...죄송합니다.”

정말 코로나 때문에 2년 반 넘게 뵙질 못했다. 회장님은 다짜고짜로 “이 선생, 주소 좀 불러주소, 시집 한 권 냈는데 보내줄테니. ” 하신다.

 

집 주소가 긴데다가 전화상으로 불러드리는 게 예의가 아닌 듯하여 “회장님 전화 마치고 나서 문자로 적어 드릴게요” 했더니 대뜸 “그만 불러라, 지금 적을 테니. 나는 문자고 뭐고 모른다. 얼른 불러라”라고 하시는 통에 불러드렸고, 그리고 김 회장님의 제3시집 《겨울나무》가 곧바로 도착했다.

 

시집을 받아들고 보니 앙상한 가지의 겨울나무 표지가 시야에 꽂힌다. 더욱 놀라운 장면은 그 겨울나무 앞에 서있는 모자(母子) 모습이다. 북풍한설을 온몸으로 받아내고 있는 여인은 필시 김종택 시인의 어머니일지 모르겠다. 일제강점기에 태어나 성장했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온갖 풍상’은 그들을 고단한 삶의 나락으로 떨어뜨렸음 직하다. 그런데도 그들은 꿋꿋하게 그 시절을 살아냈다.

 

그래서일까? 김 시인의 정서는 예사롭지 않다. ‘해물탕을 끓이며’에서 나는 그걸 느꼈다. 그건 아무나 갖지 못하는 ‘연민’이며 뭇 생명에 대한 '외경심'이다. 아무나 흉내 내지 못하는 정서라고나 할까?

 

(앞줄임)

철갑을 자랑하며

세월을 음미하던 대합조개 꼬막들

 

축지법에 분신술을 자랑하며

개펄을 누비던 낙지들이

적벽강에 빠져 아우성치고 있다

 

무서운 불의 심판 앞에서

병법이 무엇이며

무장이 무엇이랴

 

모든 것이 부질없어

함께 부둥켜안고

지금 부글부글 끓고 있다.

 

어떻게 해물탕을 끓이면서 이러한 생각을 가질 수 있단 말인가! 김종택 시인의 시에 대한 느낌을 이창동(영화감독, 전 문화체육부장관) 감독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김종택 선생님의 시는 솔직하고 담백합니다. 아주 쉽고 자연스럽게 쓰인 시들입니다. 제가 만든 영화 <시>에 등장하는 시인 김용택 씨는 ‘시를 쓰는 게 어려운 것이 아니라 시를 쓰겠다고 마음먹는 것이 어렵다고 합니다. 그런 점에서 김종택 선생님의 시들은 마치 맑은 물에 구름이 비치듯이, 고운 모래밭에 바람이 지나간 흔적이 남듯이, 시 쓰는 마음이 남긴 시들입니다. 주변의 나무, 풀꽃, 귀뚜라미를 보고도 삶의 이치를 느끼는 마음입니다. 외로움과 늙음을 받아들이면서 지나간 시간과 삶에 대해 질문하는 마음입니다. 늘 쓰는 우리말 하나하나에 깃든 숨은 의미를 찾는 마음입니다.”

 

나도 이창동 감독의 말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아버지가 마흔다섯에 돌아가시고

형이 마흔일곱

큰아버지가 스물일곱

종형이 스무 살에 가셨는데

여든에 토를 달고 살아 있으니

놀랍구나, 이게 내 나이인가  – “나이” 가운데서 -

 

“이 선생, 내가 말이여 올해 여든다섯이여, 여든다섯...”

“아직 젊으신데요?"

 

여든이 넘어서도 왕성한 필력을 자랑하시는 김종택 시인께서 건강한 모습으로 제4시집, 제5시집을 내시길 빈다. 코로나19가 좀 누그러들면 김종택 시인과 함께 목동역 8번 출구에 있는 메밀 막국수집에 가서 강냉이 동동주 한 잔 마셔야겠다.

 

 

이윤옥 기자 59yoo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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