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용 해시계 ‘일영원구(日影圓球)’ 공개

2022.08.18 11:42:17

문화재청, 지난 3월 미국 경매를 통해 환수, 국립고궁박물관 특별전 통해

[우리문화신문=한성훈 기자]  문화재청(청장 최응천)은 지난 3월 미국 경매를 통해 매입한 <일영원구(日影圓球)>를 8월 18일 아침 10시 국립고궁박물관(관장 김인규)에서 언론에 공개하고, 기존에 열리고 있던 환수문화재 특별전 ‘나라 밖 문화재의 여정(7.7~9.25)’을 통해 19일부터 일반에 공개한다.

※ 일영원구– 재질: 동, 철 / 크기: 높이 23.8cm, 구체 지름 11.2cm

 

 

‘일영원구’는 지금까지 학계에 알려진 적 없는 희귀 유물로, 나라 밖 반출 경위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애초 소장자이던 일본 주둔 미군장교가 죽은 뒤 유족으로부터 유물을 입수한 개인 소장가가 경매에 내놓은 것으로 알려졌다. 문화재청과 국외소재문화재재단(사무총장 김계식)은 지난해 말 해당 유물의 경매 출품 정보를 입수한 이후 면밀한 조사와 문헌 검토 등을 거쳐 지난 3월 미국의 한 경매에서 이 유물을 낙찰받아 국내로 들여오는 데 성공했다.

 

▲ 국내에서 처음 확인된 공 모양의 휴대용 해시계라는 점, ▲ 전통 과학기술의 계승ㆍ발전상을 보여주는 작품이라는 점, ▲ 새겨진 글씨나 낙관을 통해 제작자와 제작 시기를 파악할 수 있다는 점에서 역사적ㆍ과학사적 값어치가 높게 평가된다.

 

먼저, 공 반쪽의 형태로 태양의 그림자를 통해 시계를 확인하는 영침(影針)이 고정되어 있어 오로지 한 지역에서만 시간을 측정할 수 있었던 조선시대의 일반적인 해시계 ‘앙부일구(仰釜日晷)’와 달리, ‘일영원구’는 둥근 공 모양인 원구(圓球)의 형태로 두 개의 반구가 맞물려 각종 장치를 조정하면서, 어느 지역에서나 시간을 측정할 수 있도록 제작되어 당시 과학기술의 발전 수준을 보여주는 중요한 유물이다.

* 영침(影針): 해그림자를 만들기 위한 뾰족한 막대

 

전문가 검토에 따르면 ‘일영원구’로 시간을 측정하기 위해서는 ▲ 먼저 다림줄(사진 2, 3)*로 수평을 맞추고, ▲ 나침반으로 방위를 측정하여 북쪽을 향하게 한 뒤, ▲ 위도조절장치(추정, 사진 4)를 통해 위도를 조정하고, ▲횡량(사진 5)에 비추는 태양의 그림자가 홈으로 들어가게 하여 현재의 시간을 알 수 있었던 것으로 파악된다.

* 다림줄: 수평이나 수직을 헤아려보기 위해 추를 달아 늘어뜨리는 줄로, 현재는 유실된 것으로 보여지나 CT 촬영으로 흔적 확인

 

 

 

한쪽 반구에는 12지(十二支)가 새겨진 글씨와 96칸의 세로선으로 시각을 표시하였는데, 이는 하루를 12시 96각(刻, 15분)으로 표기한 조선 후기의 시각법을 따른 것이다. 또한 정오(正午) 표시 아래에는 둥근 구멍(시보창[時報窓], 사진 6)이 있어, 해의 움직임에 따라 다른 쪽의 반구를 움직이면, 이 창에 12지의 시간 표시(시패[時牌])가 나타나 시간을 확인할 수 있다.*

* ‘일영원구’의 시보창에 표시되는 시패는 모두 9개로, 12지 가운데 해(亥)ㆍ자(子)ㆍ축(丑)이 표시되지 않음. 해시계는 해가 떠 있는 시간 동안만 쓸 수 있기 때문에, 해가 뜨지 않는 시간인 해시(21시〜23시), 자시(23시〜01시), 축시(01시〜03시)는 표시하지 않은 것으로 추정됨.

 

 

국보로 지정된 자격루와 혼천시계에서도 12지로 시간을 나타내는 시보(時報) 장치를 둔 사실로 미루어보아 조선의 과학기술을 계승하는 한편, 외국과의 교류가 늘어나던 상황 속에서 다른 나라에서도 쓸 수 있도록 새로이 고안된 유물로 추정된다.

 

이 밖에도 원구에 새겨진 선과 명문의 정확한 용도, 구체적인 작동 원리 등 새로운 유물사ㆍ과학사적 내용들은 향후 추가 조사와 연구를 통해서 밝혀나갈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일영원구’는 제작 시기와 제작자를 알 수 있는 과학유물이라는 점에서도 중요하다. 한쪽의 반구에는 ‘대조선 개국 499년 경인년 7월 상순에 새로 제작하였다(大朝鮮開國四百九十九年庚寅七月上澣新製)’라고 새겨진 글씨와 함께, ‘상직현 인(尙稷鉉印)’이 새겨져 있어, 1890년 7월 상직현이라는 인물에 의해 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사진 9). 《고종실록》과 《승정원일기》에 따르면 상직현(尙稷鉉, 생몰년 미상)은 고종 때 활동한 무관으로 주로 총어영(摠禦營) 별장(別將)과 별군직(別軍職) 등에 임명되어 국왕의 호위와 궁궐 및 도성의 방어를 담당했던 것으로 확인된다.

* 총어영(摠禦營): 고종 때 설치된 군영(軍營)의 하나로 임금 호위와 궁궐 및 도성 방어를 담당함

* 별장(別將): 조선시대에 각 영(營)ㆍ청(廳)에 소속되어 있던 군관

* 별군직(別軍職): 조선시대 후기 암금의 신변 보호를 담당한 관직

 

또한 유물이 제작된 시기인 조선후기의 주조 기법과 은입사 기법 등의 장식 요소가 더해진 점도 주목된다. 네 개의 꽃잎 형태로 제작된 받침에는 용, 항해 중인 배 그리고 ‘일월(日月)’이 상감되어 있어(사진 7), 향후 금속공예 등 다양한 방면의 연구에 활용될 것으로 기대된다.

* 주조(鑄造): 녹인 쇠붙이를 거푸집에 부어 물건을 만듦

* 상감(象嵌): 금속ㆍ도자기 등의 표면에 여러 가지 무늬를 파서 그 속에 금은(金銀) 등을 넣어 채우는 기술. 또는 그 작품.

 

 

 

‘일영원구’는 8월 19일부터 국립고궁박물관 “나라 밖 문화재의 여정”(2022. 7. 7.∼9. 25.) 특별 전시를 통해, 앞서 지난달 환수되어 공개된 조선 왕실 유물 ‘보록’과 함께 국민에게 공개될 예정이며, 추후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연구ㆍ전시 등에 폭넓게 활용될 예정이다. 이번 환수는 문화재청의 적극적인 행정 지원과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의 축적된 경험, 관계자 네트워크, 전문가와의 긴밀한 협업을 바탕으로 성사될 수 있었다.

 

 

한성훈 기자 sol119@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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