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한시사 합작시 69. 천애(天涯)

  • 등록 2026.04.12 11:3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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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천애(天涯)

 

 

   벗이 없다면 하늘 끝도 없고 (돌)

   믿음이 없으면 땅끝도 없네 (달)

   세월의 끝동에 저민 다정함 (빛)

   장흥엔 지기가 지켜 있구려 (심)

                                    ... 24.12.19.불한시사 합작시

 

 

 

'천애(天涯'는 문자 그대로 하늘 끝, 곧 세상의 끝을 뜻하나, 단순한 공간의 극한이 아니라 인간 존재의 고독과 교유(交遊)의 깊이를 함께 드러내는 상징적 개념이다. 중국 해남도(海南島) 남단 바닷가의 거대한 암석에 새겨진 ‘천애(天涯)’ 두 글자는, 예로부터 세상의 끝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마음의 끝을 만난다는 뜻을 품고 전해진다. 그 아래에 후인이 더한 네 글자 ‘해활천공(海闊天空)’은, 비록 땅끝이라도 마음이 열리면 세계 또한 넓어진다는 해석을 덧붙인다.

 

이 ‘천애’의 정서는 등왕각의 시인 당나라 왕발(王勃)의 시 "송두소부지임촉주(送杜少府之任蜀州"에 나오는 구절, “해내존지기 천애약비린(海內存知己 天涯若比隣)” 곧 “천하에 지기가 있으면 하늘 끝도 이웃과 같다”라는 구절에서 더욱 깊어진다. 이 구절은 필자의 서예 스승 소전 손재형 선생께서도 즐겨 쓰시던 시귀(詩句)로, 글과 마음,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를 초월하는 심물합일의 교감을 상징한다.

 

송나라의 대문호 소동파(蘇東坡, 1037~1101)는 정치적 유배로 생애 세 번째 귀양지인 해남도 해구(海口) 일대에 이르게 된다. 당시 해남은 ‘천애해각(天涯海角)’이라 불릴 만큼 문명 세계의 끝으로 여겨진 땅이었다. 그러나 그는 이곳에서 좌절하지 않고, 오히려 자연과 더불어 시를 짓고 글을 쓰며 학문을 이어갔다. 그의 문장은 유배지에서 더욱 원숙해졌고, 시서화(詩書畫)의 경지는 오히려 이 ‘천애’에서 완성의 빛을 띠었다. 곧 천애는 단순한 유배의 공간이 아니라, 외적 단절 속에서 내적 우주가 열리는 장소였다.

 

조선 말엽의 대서예가 추사 김정희(秋史 金正喜, 1786~1856) 역시 제주도 대정으로 유배되어, 그곳에서 오랜 세월을 보낸다. 제주 역시 조선시대에는 사실상의 ‘천애’였다. 그러나 추사는 이곳에서 좌절하기보다 오히려 자신의 서법을 완성하여, 이른바 추사체(秋史體)라는 독자적 경지를 열었다. 그의 글씨와 시문은 유배 이전보다 더욱 간결하고 깊어졌으며, 이는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정신의 정련(精鍊)을 통해 이루어진 것이었다. 소동파와 추사를 함께 보면, 두 사람 모두 천애라는 공간에서 오히려 예술과 정신의 정점을 이룬다는 공통점이 드러난다.

 

이러한 전통은 오늘날에도 이어진다. 전남 강진을 이웃한 장흥 사자산 기슭에 터를 잡고, 스스로 토굴을 파며 조각과 시서화를 병행하는 초암 강대철의 삶은, 과거의 유배와는 달리 자발적 선택에 의한 ‘천애의 삶’이라 할 수 있다. 그는 세속의 중심에서 벗어나 자연 속에서 작업하며, 흙을 다듬고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는 가운데 자신만의 심물(心物)의 세계를 구축하고 있다. 이는 소동파와 추사와 마찬가지로, 장소의 변방성이 곧 정신의 중심성으로 전환되는 과정이며, 시대와 공간을 초월해 세 인물이 하나의 맥락으로 이어짐을 보여준다. (해남행 도중 북경에서 라석)

 

불한시사(弗寒詩社)는 문경의 불한티산방에서 만나는 시벗들의 모임이다. 여러 해 전부터 카톡을 주고받으며 화답시(和答詩)와 합작시(合作詩)를 써 왔다. 합작시의 형식은 손말틀(휴대폰) 화면에 맞도록 1행에 11자씩 기승전결의 모두 4행 44자로 정착되었다. 디지털 시대의 새로운 정형시운동으로 싯구를 주고받던 옛선비들의 전통을 잇고 있다.

 

 

김영조 기자 pine996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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