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창가곡, 달 꽃을 피우다

  • 등록 2026.04.14 11:2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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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하(月荷)의 노래를 이어가는 제자들의 무대
[서한범 교수의 우리음악 이야기 779]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2026 방영일 국악상>의 수상자인 정순임 명창에 관한 이야기를 하였다. 판소리 <흥보가>의 예능보유자로 해당 종목의 전승 및 공연 활동을 해 오며 판소리와 함께 외길 인생을 살아온 명창이란 이야기, 『한국전통음악학회』의 미국 UCLA《Korean Music Symposium, -한국음악 심포지엄》이라든가, 중국의 연변예술대학과의 《전통음악 실연(實演)교류회》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왔다고 이야기했다.

 

또 그는 권위보다는, 순수함을 지닌 다정한 이웃, 누구나 좋아하는 친절한 할머니 같은 분이었지만, 무대에 오르면, 그 부드러우면서도 맑고, 높은 목소리, 구수하면서도 자연스러운 사설 처리, 다양한 연기(발림) 등으로 청중을 감동의 도가니로 몰아넣는 마술사로 변한다고 썼다.

 

그뿐만 아니라 연습으로 다져진 그의 소리는 일상의 소녀가 지니고 있던 순수하고 진솔한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 우러나오는 소리여서 그 울림의 반향(反響)도 크고, 아름답게 되돌아오기에 ‘그가 얼마나 판소리를 사랑하며 남다른 태도나 열정을 지니고 살아온 소리꾼이었는가?’ 하는 점을 알게 한다는 이야기, 그 소리의 울림이 그의 고장, <경주>에서부터 시작되어 한반도 전 지역으로 널리 널리 확산하기를 기대한다는 덕담도 덧붙였다.

 

이번 주에는 가곡의 이야기로 이어간다.

 

얼마 전, 김월하(月荷-본명 김덕순-金德順) 선생의 30주기(週忌)를 맞이하여 “학(鶴)이 머물던 자리”라는 제하의 《월하문화재단》이 주최한 추모음악회가 국립국악원 예악당 무대에서 성대하게 열리기도 했고, 관련하여 크고 작은 행사들이 여기저기에서 열려 마치, 월하 여사가 환생한 분위기를 연출하기도 했었는데, 한번 떠난 명인이 돌아올 수 있겠는가! 대신 그의 아름다운 여창가곡은 명인이 직접 키워 낸 제자들의 마음속에서 더욱 예쁜 꽃을 피우며 되살아나고 있기에 매우 다행이라는 생각에 잠기게 된다.

 

그래서 이 난에서는 많은 제자들을 남겨두고, 떠난 명인의 제자들이 꾸민 가곡의 무대, “가곡, 달 꽃을 피우다”와 관련된 발표회 이야기를 시작해 보기로 한다.

 

지난해, 12월, 몹시 추웠던 어느 날 밤이었다. 서울, 서초동 《국립국악원》 공연장에서는 여창(女唱) 가곡(歌曲)의 중진들이 모여 그들의 영원한 스승, 김월하 선생으로부터 배워 익힌, 여창가곡을 불러주었다.

 

 

전반부에서는 제자들이 한 사람씩 차례로 나와서 1곡씩을 선택하여 부른 다음, 후반부에서는 그들이 지도해 온 제자들, 곧 손녀 제자들과 함께 또 다른 1곡을 공개적으로 발표하는 형식이었다.

다소 이색적이긴 했지만, 김월하 명인의 제자들이 뜻을 같이해서 “가곡, 달 꽃을 피우다”라는 감동의 무대를 펼친 것은 매우 의미 있는 무대라는 점에서 화제가 되었다.

 

‘<달 꽃>이라는 말이 친근하면서도 어떤 꽃인가?’ 하는 상상이 멈추는 순간, 얼핏, 선생의 아호가 월하(月荷)이기에 이날의 표제도 그렇게 상상 속의 아름다운 꽃을 그리고 있는 듯 보였다.

 

<월하>라는 아호에서 ‘하(荷)’는 풀을 나타내는 초(艸)와 음으로 인하여 소리쳐 꾸짖음을 나타내는 何(어찌 하)가 합쳐진 합성 글자인데, 중국에서는 '연꽃'이라는 의미를 지닌 글자며 우리말에서는 하와이(荷蛙伊)의 한자(漢字)음이라든가, 또는 인하(仁荷)대와 같은 이름에서도 이 ‘하(荷)’라는 글자를 쓰고 있다.

 

타고난 아름다운 음색과 그 위에 자신만의 피나는 노력으로 일구어낸 월하의 여창가곡은 아직도 많은 이들의 가슴속에 살아 있는, 아마도 영원히 살아있을 노래라 할 것이다. 특히 “월하 이전에 월하 없고, 월하 이후에 월하 없다”라는 이 한마디는 그의 존재를 가장 확실하고 분명하게 자리매김하는 명언이 아닐 수 없다.

 

누구의 접근도 허락되지 않았던 월하 명인만의 아름다운 음색과 가락은 오롯이 그의 제자들 마음속에 곱게 이어지고 있어 이날 발표회장은 이미 만석이었다. 가곡 발표회장이 감상자들로 인해 입장이 어렵다는 예는 그렇게 자주 일어나는 일은 아니다.

 

 

월하 명인은 1973년, 국가 중요무형문화재 <가곡>의 예능보유자로 인정을 받았고, 수많은 제자를 지도해 오면서 여창가곡의 아름다움을 세상에 남기고 떠난 여류 가객인데, 월하의 이수자는 14명으로 소개되고 있다. 그들의 면면을 보면, 당일 발표 무대에 섰던 김영기, 이승윤, 변진심, 조일하, 황숙경, 강권순, 김윤서 등 7인과 김은희, 송윤희, 신운희, 최자영, 한자이, 경덕명, 이정화 등등이다.

 

이들이 바로, 한국의 여창가곡을 이끌어 오고 있는 중견 및 정상급 명인이라는 사실은 새삼스럽게 소개하지 않아도 잘 알려진 사실이다.

 

가곡은 전통 성악곡 가운데 그 조직과 규모가 방대하고, 예술성이 뛰어난 전문가의 음악으로 꼽히고 있는 노래다. 앞으로 이 연재에서는 당일, 무대 위에서 스승을 기리며 불러준 여창 가창자들의 활동 상황을 비롯해 그들이 부른 악곡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사설 내용이나 그 노래들이 생겨난 배경 등도 간단하게 말해 볼 것이다.

 

또한, 이 난에서는 가곡만이 지닌 독특한 형식미(形式美)라든가, 음조직에 따른 유려한 선율선의 특징, 장단이나 창법, 노래와 반주악기들과의 조화, 그리고 전승과 관련한 이야기도 곁들여 보도록 하겠다.

(다음 주에 계속)

 

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suhilkwa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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