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 큰어미 타령

2022.12.16 12:00:59

[우리문화신문=이달균 시인]  

 

     영감아,

     나도 엄연히

     입술 붉은 꽃이요

     술청에서 장마당에서

     꽃 본 듯 희롱해 보소

     지천엔 분분한 꽃잎

     벌나비는 희희낙락

 

     월향인 듯 매향인 듯

     눈길 한 번 주어보소

 

세상 수컷이란 다 요렇코롬 변죽인가? 장인 사위도 쑥떡쑥떡 앞서거니 뒤서거니 기방출입이라더니, 열녀문 홍살문에 이름은 좋다만은 기생질에 처첩 살림 아이고 내 팔자야! 들병이도 방물년도 뽀얀 분단장에 찡긋 눈짓이면 은근슬쩍 지분대는 내 서방 바람끼 감당키 어려워라. 나도 한때는 눈부셨거니, 연지 곤지 찍고 초례청에 섰을 때는 천지간 눈발에도 향기 그윽하였으니, 오호라! 그 지엄한 법도가 날 가두네. 남녀가 유별하고 칠거지악 엄존하니 눈멀고 귀 먼 삼 년에 벙어리 석삼 년이 뉘집 똥개 신세던가.

 

     진사댁 친정 가문에

     똥칠할까 참아 왔소

 

     홧김에 서방질이라 맞바람 피워 볼까

     벌나비야 남정네야 꽃 지고 저무는 봄날

     나 홀로 지지도 못해 속절없이 서러워라

 

     누구 없소? 화급한

     그림자로 담 넘어와

 

     쿵떡쿵 마주 찧는

     방아방아 양다리방아

 

     물 철철 휘감아 도는

     물레방아 퉁방아

 

     한밤을 삭신 저리

     아리고 쑤시도록

 

     좌삼삼 우삼삼

     휘몰아 좌우삼삼

 

     부랑한 치한이라도

     어울려 볼까

     훠 얼 훨

 

 

 

 

< 해설 >

 

이제 하소연은 한술 더 떠 인생 타령으로 번져간다. 내 비록 지금은 나이 들고 살도 빠져 수세미 같은 얼굴에 몰골 이리 사나워져도 나도 엄연히 여자요, 한때는 입술 붉은 꽃이었다. 젊은 어느 날 장터에 나가면 힐끗힐끗 남정네들 꽃 본 듯 희롱하는 눈길도 주곤 했다.

 

여자가 가장 빛나는 날은 시집가는 날이 아닌가. “연지 곤지 찍고 초례청에 섰을 때는 천지간 눈발에도 향기 그윽하였다.” 시집와 남자의 세계 알고 보니, 저들끼리는 장인 사위 할 것 없이 쉬쉬해가며 기방 출입도 같이하는가 보더라.

 

그렇다고 맞바람 피울 수 없으니 어찌할꼬. 진사댁 딸로 살았으니 어찌 그 지엄한 법도를 모른 척 할 수 있으랴. “남녀가 유별하고 칠거지악 엄존하니 눈멀고 귀 먼 삼 년에 벙어리 석삼 년이 뉘집 똥개 신세던가.”

 

나도 마음만이라도 누굴 만나 “쿵떡쿵 마주 찧는 / 방아방아 양다리방아”, “좌삼삼 우삼삼 / 휘몰아 좌우삼삼” “부랑한 치한이라도 / 어울려 볼까” 하노라.

 

이정보의 “간밤에 자고 간 그놈”이란 사설시조가 있다. 그 시조 한 수가 여기에 딱 어울릴 만 하다.

 

간밤에 자고 간 그놈 아마도 못 잊어라

와야(瓦冶) 놈의 아들인지 진흙에 뽐내듯이 사공놈의

성영(成怜)인지 사앗대로 찌르듯이 두더지 영식(令息, 자식)인지

곳곳이 뒤지듯이 평생에 처음이오 흉중에도 야릇해라

전후에 나도 무던히 겪었으되 참말로 간밤 그눔은 차마 못 잊을까 하노라

 

어느 여인의 목소리로 읊은 것인데, 간밤에 자고 간 그놈에 관한 절절한 회고다. 와야는 기와굽는 이를 말하는데, 황토 찰지게 반죽하듯 애무하는 모습을 말하고, 사공놈의 성영은 삿대질이 가관이고, 두더지 영식은 여기저기 마구 뒤적이는, 아아 황홀경으로 이끄는 놈과의 하룻밤을 노래한다. 아무리 진사댁 딸이라 해도, 저리 바람기 많은 남편과 살아보니, 어쩌랴 그런 하룻밤을 상상이나마 해 보는 것이렷다.

 

 

이달균 시인 moon150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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