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침략의 간웅(奸雄)을 처단한 안중근 영화 '영웅'

2023.03.01 10:26:11

가슴 뛰게 한 정성화ㆍ김고은ㆍ나문희 열연을 보다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끝없이 펼쳐진 흰 설원으로 뚜벅뚜벅 걸어가는 한 남자, 그가 선 자리에 11명의 동지가 다가온다. 그들은 품에서 단도(短刀)를 꺼내 비장한 모습으로 함께 무명지를 자른다. 붉은 피가 흰눈 위에 낭자하게 흐르고, 11명의 동지에 둘러싸인 한 남자가 태극기 위에 ‘大韓獨立’이라는 네 글자를 새겨넣는다. 이는 안중근 의사의 일대기를 그린 뮤지컬영화 ‘영웅’의 첫 장면이다.

 

 

안중근 의사의 일대기 가운데 특히 침략의 원흉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하기까지의 1년 동안을 중심으로 그려진 '영웅'은 뮤지컬이 가미된 영화다. 뮤지컬영화에 익숙지 않은 탓에 각 스토리마다 끼어드는 뮤지컬이 다소 생소하게 느껴졌지만, 영화를 끝까지 다 보고 난 느낌은 “통쾌하고 시원했다”라는 소감이다.

 

보통 영화라면 상영 시간 내내 화면과 대사로 이어져 긴박감이 없이 전개될 때는 다소 지루하고 졸음이 몰려오기도 하지만 ‘영웅’에서는 오히려 그러한 부분을 뮤지컬이 보완해주고 있어 톡톡히 제 역할을 해주었다는 느낌이다. 특히, 독립군의 정보원 역할을 맡은 설희(김고은 배우)가 이토 히로부미에게 접근해 펼치는 뮤지컬은 명성황후의 한을 제대로 풀어내는 듯하여 가슴이 후련했다.

 

이처럼 솔로 뮤지컬도 영화의 몰입도를 키워주었지만, 안중근 의사가 사형을 선고받고 있을 때 법정에서는 함께했던 동지들이, 법정 밖에서 수많은 동포가 몰려와 ‘누가 죄인인가?’라는 처절한 노래를 부르는 장면도 가슴 찡하게 하는 대목이었다. 설희 역처럼 혼자서, 또는 이토 히로부미 처단을 위해 모인 몇 명의 동지 그룹, 더 나아가 일제에 저항하는 대규모 동포들의 모습 등 적재적소에 적용된 뮤지컬은 ‘뮤지컬’이 갖는 한계와 ‘영화’가 갖는 한계를 서로 보완해주고 있어 상영 시간 120분 내내 ‘지루한 줄 모르고’ 영화를 즐겼다.

 

사실 영화광도 아닌데다가 유명하다는 영화조차도 상영 시간 내내 한두 번은 깜박 졸기가 일쑤였던 나에게 이번 뮤지컬영화 ‘영웅’은 단 한 번도 졸지 않고 본 몇 안 되는 영화 가운데 하나였다. 물론, 안중근이라는 국보급 독립투사의 이야기이기에 긴장감을 늦출 수 없었던 점도 있었다.

 

한가지 보탠다면 몇 해 전 안중근 의사의 거사 현장을 답사한 것도 이번 뮤지컬영화 ‘영웅’의 짜임새를 더욱 세밀하게 관찰하게 한 요소임은 틀림없다.

 

푸른하늘 대낮에 벽력소리 진동하니

6대주(大州)의 많은 사람들 가슴이 뛰놀았다.

영웅 한번 성내니 간웅(奸雄)이 거꾸러졌네

독립만세 세 번 부르니 우리조국 살았다.

 

이는 대한민국임시정부 법무총장을 지낸 독립운동가 신규식(申圭植) 선생이 안중근 의사 의거에 관해 쓴 시다. ‘영웅 한번 성내니 간웅(奸雄)이 거꾸러졌다’라는 표현이야말로 영웅 안중근을 묘사한 그 어떤 말보다 공감 가는 말이다.

 

 

뮤지컬영화 ‘영웅’의 절정은 이토 히로부미가 조선을 침략하고 불법 무도한 일을 저질러 동양평화를 교란한 사실 등 15개의 죄상을 낱낱이 들어 꾸짖은 안중근 의사의 절규 장면일 것이다. 15개 조항을 보자.

 

1. 대한의 국모 명성황후를 시해한 죄

2. 대한의 황제를 폭력으로 폐위시킨 죄

3. 을사늑약과 정미늑약을 강제로 체결케 한 죄

4. 무고한 대한 사람들을 대량 학살한 죄

5. 조선의 토지와 광산과 산림을 빼앗은 죄

6. 제일은행권 화폐를 강제로 쓰게 한 죄

7. 보호를 핑계로 대한의 군대를 강제로 무장 해제시킨 죄

​8. 교과서를 빼앗아 불태우고 교육하지 못하게 죄

9. 조선인들의 외교권을 빼앗고 유학을 금지한 죄

10. 신문사를 강제로 문 닫게 하고 언론을 장악한 죄

11. 대한의 사법권을 강제로 장악 유린한 죄

12. 정권을 폭력으로 빼앗고 대한의 독립을 파괴한 죄

13. 대한제국이 일본인의 보호를 받고자 원한다고 거짓말을 퍼뜨리며 세계인을 농락한 죄

14. 현재 대한이 태평 무사한 것처럼 일왕을 속이고 밖으로는 세계 사람들을 모두 속인 죄

15. 동양의 평화를 철저히 파괴한 천인공노의 죄

 

윤제균 감독의 ‘영웅’은 고향을 떠나온 대한제국 의병대장 안중근 역의 정성화를 비롯하여 김고은, 나문희, 조재윤, 배정남, 이현우, 박진주 등 세대를 뛰어넘는 실력파 배우진이 출연하며, 1909년도 블라디보스토크의 생생한 풍경과 1800년대 후반부터 1900년대 초반의 건축물이 고스란히 보존된 라트비아 로케이션을 통해 실감 나게 그려내고 있다.

 

오늘 독립의 함성이 온나라를 뒤흔들었던 104돌 3·1절을 맞아, 한 편의 영화 ‘영웅’을 통해 겨레의 영원한 독립투사 안중근의 삶을 되돌아보는 것도 뜻깊을 것이다.

 

 

이윤옥 기자 59yoo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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