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급한 시대에 느린 음악 ‘수제천’을 듣다

  • 등록 2023.04.07 12:2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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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국악원 정악단의 <정악사색(正樂四色ㆍ思索)> 공연 열려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메트로놈으로 측정하기조차 힘들어 인간의 일상적인 감각을 크게 초월해 있다는 음악, 처음 듣는 사람들은 곡의 느린 속도에 우선 놀라게 된다는 것이  ‘수제천’이다. 프랑스 파리 사람들은 이 음악에 기립박수를 쳤다는데 정작 한국인들은 그 이름조차도 들어보지 못했다는 ‘수제천’을 2023년 봄밤에 들을 수 있었다. 국립국악원(원장 김영운)은 정악단(예술감독대행 이건회)의 올해 정기공연으로 어제 4월 6일(목) 저녁 7시 30분, 국립국악원 예악당에서 전 국립국악원 연구실장 송지원의 해설로 <정악사색(正樂四色ㆍ思索)>을 선보였다.

 

국립국악원 정악단은 우리 선조들의 철학과 이념이 담긴 ‘바른 음악’인 정악(正樂)의 멋을 관객들에게 전하기 위해 정악의 백미로 꼽히는 대표작품을 공연한 것이다. 웅장하고 화려한 가락으로 나라 밖에서도 천상의 소리와 같다는 평을 받은 궁중음악 ‘수제천’, 남녀가 함께 부르는 유일한 이중창인 가곡 ‘태평가’, 선비들의 풍류음악 ‘영산회상’, 화사하고 흥청거리는 듯한 느낌을 주는 ‘해령’ 등 모두 4곡을 구성하였다.

 

맨 먼저 연주한 ‘수제천(壽齊天)’은 “빗가락정읍”이라고도 부르는 노래 정읍사를 조선 중기 이후 노래는 없어지고 관악 합주 형태로 남아 있는 음악이다. 직접 연주한 것으로는 처음 듣는 나는 막이 오르면서 흥분으로 들뜨기 시작했다. ‘수제천’을 듣는 내내 귀에 잘 들어오는 것은 주선율 피리 소리였다. 그 작은 악기들에서 들려오는 ‘앵앵앵’하는 소리는 예악당을 꽉 메우고 남는 것은 물론 공연이 끝난 뒤에도 그 잔향이 오래도록 남았다. 모든 국악에 반주악기로 쓰이는 장구는 단 한 대로도 ‘수제천’에서 전혀 위축됨이 없이 담백한 소리를 내 강력한 인상을 준다.

 

 

빠른 것에 익숙한 그리고 호흡이 짧은 이 시대에 조급하게 사는 우리에게 ‘수제천’이 가르쳐주는 것은 무엇일까 곰곰이 생각해본다. 그렇게 느릿한 음악에도 아무도 긴장을 늦추는 사람이 없다. 다만, 음악의 끝을 알리는 집박 소리에 깜짝 놀랄 뿐이다.

 

이어서 정가 홍창남 수석 외 5인의 가객이 함께 부르는 가곡 ‘태평가’가 예악당을 아우른다. 가곡은 남창가곡과 여창가곡을 따로 연주하지만, 남창과 여창이 유일하게 함께 노래하는 ‘태평가’는 남성과 여성의 음역대가 한 옥타브 차이가 나 그로 인한 자연스러운 화음이 아름답다. 특히 이번 연주에서는 남녀 가객 각 1인이 부르는 전통과는 다르게 남녀 가객 각 3인의 구성으로 색다른 시도를 해 더욱 깊이 있는 느낌을 주었다.

 

 

 

다음으로 조선시대 문인들의 공동체적 음악이라는 ‘영산회상’이다. 원래 ‘영산회상’은 ‘상령산-중령산-세령산-가락덜이-삼현도드리-하현도드리-염불도드리-타령-군악’의 9곡을 연주하는데 전체 50분가량이 걸리게 되어 이번 연주는 곡마다 주요 가락을 짧게 구성해 20분가량으로 줄였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연주한 곡은 ‘해령(解令)’이다. ‘해령’은 세종 때 만들어진 백성과 함께한다는 ‘여민락(與民樂)’을 풀어서 연주한다는 의미다. ‘해령’은 집박 외 43인의 연주단이 함께하는 웅장한 음악이다. 이 ‘해령’의 연주로 세종 때 연주했던 여민락의 후광이 60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빛을 발하고 있음을 증명하고 있다. 송지원 헤설자는 청중이 세종의 백성과 함께라는 뜻을 가슴에 담고 가길 바란다고 말한다.

 

 

 

이날 공연은 일반인들에겐 어렵다는 정악임에도 예악당 좌석이 거의 빈틈이 없다. 특히 수업의 연장으로 참여했다는 30여 명의 국립전통예술고등학교 학생들은 공연 내내 꼼짝하지 않고 지켜보았다. 또 30여 명의 외국인 청중이 함께해 더욱 빛나는 자리가 되었다.

 

이날 용인에서 왔다는 청중 정수인(57) 씨는 “정악 공연을 쉽게 볼 수 없는데 이번에 국립국악원 정악단이 정악의 대표곡을 해설과 함께 연주해주어 기쁜 마음으로 찾아왔다. 특히 외국인들도 좋아한다는 ‘수제천’을 제대로 감상할 수 있어서 정말 좋았다. 메트로놈도 제대로 측정할 수 없다는 느린 음악 ‘수제천’을 들으면서 나는 어떻게 세상을 살아야 하는지 생각해보았다.”라고 말했다.

 

그런가 하면 체코에서 여행을 왔다는 한 부부는 “무척이나 아름다웠고 또 놀라웠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경험하는 음악이었고, 인상이 깊어 기억에 오래 남을 것 같다.”, “막이 올랐을 때 화려한 의상이 눈길을 사로잡았고, 왕실의 음악이라고 하니 특별한 순간에 초대받은 기분이었다.”라는 소감을 얘기해주었다.

 

2023년 계묘년 봄밤 우리는 선조들의 철학과 이념이 담긴 ‘바른 음악’인 정악(正樂)의 멋을 한껏 만끽할 수 있었다. 이 공연을 보며 더 많은 정악 공연이 열리고 더 많은 청중이 객석을 가득 차길 비손하는 마음이었다.

 

 

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pine996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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