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장애인 55분 만에 한글을 깨우치다

  • 등록 2023.07.11 12:0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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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으’ 소리는 혀가 앞니에 붙였다 떼면서 내는 소리
[공학박사의 한글 이야기 23]

[우리문화신문=신부용 전 kAIST 교수]  

 

“시각장애인이 쓰면 세계가 쓴다”

 

전번 이야기에서 ‘한글20’을 전 세계 시각장애인이 사용하는 글자로 만들자고 했습니다. 모든 나라에서 자기네 점자 대신 ‘한글20’을 사용하게 되면 당연히 그 나라 일반인도 따라 배우게 될 것이며 ‘한글20’은 전 세계 공통의 보조적인 문자로 발전할 것입니다.

 

이는 놀랄 일도 아닙니다. 인간의 말은 모두 소리로 표현되는데 세종대왕은 그 소리를 표기할 수 있는 글자를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마치 녹음기처럼 어떤 소리나 표현하므로 언어에 상관없이 그 발음을 한글로 쓸 수 있다는 것입니다. 글쓴이가 시각장애인을 대상으로 삼은 이유는 이들은 자기 언어의 문자가 어떻게 생겼는지를 몰라 한글을 선입견 없이 받아들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마치 백지에 그림을 그리는 것과 같다고 하겠습니다.

 

천리길도 한 걸음부터라 했습니다. 한글이 세계 모든 언어를 기록하게 된다면 그것은 실로 엄청난 일이 되겠지만 그 시작은 시각장애인에게 한글을 가르쳐주는 일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이 때문에 저는 직접 시각장애인을 만나 한글을 가르쳐 보았습니다. 이미 첫 번째 이야기에서 대강 언급하였지만, 더욱 자세히 설명하여 널리 참고가 되도록 하고자 합니다.

 

시각장애인의 대부분은 후천적으로 병이나 사고로 시각을 잃었기 때문에 글자를 좀 알고 있습니다. 한글을 전연 모르는 선천적 시각장애인을 찾고자 장애인 교육과정이 있는 특수 대학을 찾아가 한 사람의 전맹(선천적 장애가 있는 사람)을 소개받고 3시간 안에 한글을 가르칠 수 있도록 양해를 얻었습니다. 그러나 1시간도 다 안 걸려 자기 이름을 쓸 수 있었습니다.

 

‘그으’ 소리 나는 글자

 

우리는 서로를 소개하고 마주 앉았습니다. 그는 이름이 윤환이라고 하는 대학 2학년생이었습니다. 나는 윤환 군에게 말했습니다. “소리라는 것은 무엇이든 떨려서 나는 것이다. 기타 소리는 기타 줄을 튕겨 떨게 함으로써 나는 것이다. ‘그으’ 소리를 내 보아라. 그리고 입 안 어떤 부위가 떨어 소리가 나는지 느껴 보아라.” 그러자 그는 “입 안쪽 목구멍의 윗부분이 떨리는 것 같다”라고 하였고 나는 “그 떨리는 부분이 어떻게 생겼냐? 평평하냐? 수직이냐? 아니면 이처럼 굽어 있느냐?” 하며 내 손을 펴기도 하고 구부려가며 만져보도록 했습니다.

 

그는 안쪽으로 구부린 모양을 선택했으며 나는 그 모양을 종이에 그려보라고 했습니다. 그가 그린 것을 보고 말했습니다. “네가 그린 이 모양이 바로 ‘그으’ 소리를 표기하는 글자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부담을 주지 않으려고 글자 이름은 말해주지 않고 그저 ‘그으’ 소리를 내는 글자라고만 했습니다.

 

 

 

‘느으’, ‘드으’, ‘르으’ 소리 나는 글자

 

다음에 ‘느으’ 소리는 혀가 앞니에 붙였다 떼면서 내는 소리인데 그때 혀 모양이 어떠냐고 물어보았고, ‘드으’ 소리는 ‘느으’소리를 내던 혀가 입천장에 닿으면서 나는 소리인데 입천장을 상징하는 작대기를 하나 그어보라 하였습니다. ‘르으’ 소리는 ‘느으’나 ‘드으’소리를 내던 혀가 앞니와 붙지 않고 떨리는 소리인데 이 떠는 모양을 이렇게 표현한다고 하며 그의 손을 잡고 ‘ㄹ’ 모양을 그려 보였습니다. 그러고는 이들 3글자는 혀가 움직여 나는 소리로 혓소리라고 하는 것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리고 차례로 다시 한번 그려보라고 하며 복습시켰습니다.

 

‘므으’, ‘브으’ 소리 나는 글자

 

‘므으’ 소리는 두 입술을 한데 모아야 하는데 이 모양을 이렇게 표현한다고 하며 그의 손을 잡고 ‘ㅁ’ 자를 그려 보였습니다. 그리고 ‘브으’ 소리를 내 보라 하고 ‘므으’와 무엇이 같고 무엇이 다르냐고 물었습니다. 그는 입 모양은 같은데 소리가 조금 세게 나온다고 했습니다. 나는 소리가 셀 뿐만 아니라 약간 폭발하는 것 같지 않냐고 물었고 그는 그렇다고 했습니다.

 

이렇게 바람이 약간 폭발하여 빠져나오는 모양을 ‘므으’ 자 양쪽에 뿔이 달린 모양으로 표현한다고 하며 한 번 그려보라 하였습니다. 그리고 나서는 ‘프’ 라고 말해 보라 했습니다. 이것은 ‘브으’가 더 세계 폭발하는 소리인데 이것은 나중에 얘기하자 했습니다. ‘ㅍ’은 ‘한글20’ 기본 글자가 아니기 때문이었습니다.

 

‘스으’, ‘즈으’ 소리 나는 글자

 

‘그으’와 ‘느으, 드으, 르으’와 ‘므으’, ‘브으’ 등 6글자를 복습해 보고 다음은 ‘스으’로 갔습니다. ‘스으’는 윗니에 혀를 비스듬히 대고 바람을 빠져나가도록 하는 글자라 하고 그 관계를 한 번 그려보라 했습니다. 잘 안되면 모양을 가르쳐 주기도 했습니다. 다음에 ‘즈으’ 까지 가르쳐 주고 기본 자음이 10개 가운데 우선 이 8개만 복습해 보자 하였습니다.

 

‘으’, ‘흐’ 소리 나는 글자

 

이제 ‘으’와 ‘흐으’ 두 개가 남았다고 했습니다. ‘으’는 혀나 이 등 입 안의 부위는 그대로 놔두고 목구멍으로 숨을 내면서 내는 소리라 했습니다. 숨을 가만히 내쉬면 ‘으’, 좀 강하게 쏴주면 ‘흐으’가 된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처음 배운 ‘그으‘는 목구멍을 좀 닫았다 열어 내는 소리라 이 셋을 구멍소리 한다는 것을 알려 줬습니다. 그리하여 기본 자음 10개를 모두 가르쳐줬습니다.

 

된소리와 거센소리

 

된소리는 예사소리를 강하게 혹은 억지로 내는 소리로 ㄲ, ㄸ, ㅆ, ㅉ이 있으며 글자는 겹쳐 쓴다는 것을 가르쳐줬습니다. 그리고 거센소리 ㅋ, ㅊ, ㅌ, ㅍ은 모두 ㄱ, ㅈ, ㄷ, ㅂ 소리를 ’흐으‘ 소리 내듯 한다고 했습니다. 예를 들어 ㅋ(크으)는 ’그으‘와 ’흐으‘를 합하면 된다고 했습니다.

 

음절 만들기

 

이제 모음을 설명해 줄 차례인데 이보다 먼저 음절이 무엇인지를 알려 줬습니다. 예를 들어 ’나‘라는 소리는 하나의 음절인데 ‘느으’소리와 ‘아’소리가 합쳐서 난다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아’가 모음입니다. 모음은 자음을 품어 소리를 만드는 글자라 했습니다. ‘난’이란 음절은 ‘나’라는 음절에 밭침 ‘ㄴ’이 붙어 모음이 전후에 아들을 품고 있음을 보인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자음의 자(子)는 아들자이고 모음의 모(母)는 어미 모자라 했습니다.

 

이제 모음이 어떻게 생기는지를 가르쳐줄 차례입니다. 이 얘기는 다음에 계속하겠습니다.

 

 

신부용 전 kAIST 교수 bytshi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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